'프랑스사  | 맥세계사편찬위원회 저/최옥영 역'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나폴레옹 3세(1853) By Mayer & Pierson


[네이버 지식백과] 나폴레옹 3세 [Napoleon III, Louis-Napoléon Bonaparte] - 나폴레옹의 후계자로 프랑스 제2제정을 수립하다 (인물세계사, 함규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5921&cid=59014&categoryId=59014


'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박종철출판사)'에 '루이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칼 맑스)이 실려 있다.




쿠데타 이후 루이 나폴레옹은 곧바로 군주제를 세운 것이 아니라 공화국을 차츰차츰 제국으로 바꾸어 나갔다.

나폴레옹 3세는 전제독재의 권력을 원 없이 휘둘러 댔으며 국가기관이라는 곳은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그에게 충성하는 근위 기병대를 만들고 군대와 경찰, 헌병을 크게 확충했다. 게다가 비밀경찰과 헌병감시관, 평민을 이용해 그의 통치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발견되면 심판 없이 즉시 체포하도록 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치적 성격의 클럽을 모두 폐쇄했으며 단체 구성과 집회를 금지했다.

나폴레옹 3세는 군경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했고 전력을 다해 노동 운동의 기세를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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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어려운 오늘 밤 떠오른 이 인물은 선거로 대통령이 된 후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프랑스사'(맥세계사편찬위원회 저/최옥영 역)의 '4장 나폴레옹 제정과 공화정'으로부터 옮긴다.

Napoleon III of France, Charles-Louis Napoleon Bonaparte - Carte de Visite Photo


루이 보나파르트와 제2제정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18400105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조카로 한때 7월 왕정을 반대하다 감옥에 갇혔고 나중에 탈옥했다가 2월 혁명이 발발하자 파리로 돌아왔다.

헌법에 따라 그의 임기는 1852년 5월에 만기가 되며 그전에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그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시기를 12월 2일로 잡았다. 그날은 나폴레옹 시대 아우스터리츠 전투 기념일이었다. 당일 새벽, 그는 신속하게 군대를 보내 입법의회 소재지를 점거했고 공화파와 질서당의 지도자를 체포했다. 아침이 되어 거리로 나온 파리 시민은 긴장한 경찰들과 공고를 보고서야 쿠데타가 일어난 것을 알았다. 산발적인 항의도 있었지만 루이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루이 나폴레옹의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체포되지 않으면 추방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위대한 문호 빅토르 위고도 추방당해 국외에서 19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 8. 나폴레옹 제2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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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에 올라온 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가 말았는데 - 어느 순간 역겨움을 참지 못하여 - 다시 틀었다. 이번에는 참고 끝까지 다 봐야지.


그리고 사진전 소식. 


[46년 역사 예화랑 창덕궁점 열어…개관전은 임응식 사진전] https://www.yna.co.kr/view/AKR20241107152400005?input=1179m 내년 1월 24일까지.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국 현대사’…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09938&ref=D 올해 12월 30일까지.




사진: UnsplashRyoo Geo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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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노름꾼'(이재필 옮김)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사진: UnsplashWesley Tingey






[그런데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홀로 타향에 와서 친척들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오늘은 뭘 좀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는 판에 마지막 남은, 정말로 마지막 남은 굴덴을 걸 때 드는 그런 느낌 말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런 예감을 좋아했고 그 심리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경험의 긴장을 좋아했다. 그가 타향에서 마지막 남은 굴덴을 잃었을 때 그의 목을 짓눌렀던 것은 어떤 경련이었을까? 공포의 경련, 절망의 경련 아니면 걷잡을 수 없는 쾌감의 경련? - 『노름꾼』과 두 번째 결혼, 외국에서의 생활_작품 평론(꼰스딴찐 모출스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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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115646 작년 오늘의 포스트에 이어,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이재필 역, 열린책들)으로부터.


내용 감상과 별개로 아래 발췌글 속 '러시아'에 '한국'을 대입해 보자. 그건 그렇고, 왜 부끄러움은 보는 자들의 몫인가. 추태를 부린 자들이 엄연히 따로 있는데 말이다.

Gamblers, 1852 - Pavel Fedotov - WikiArt.org






화자는 〈러시아의 추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러시아인들은 그 재능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형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 문제는 바로 형식에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풍부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혼돈이 가라앉으면 과연 러시아의 질서와 조화가 창조될 수 있을까? 러시아의 〈긍정적이고 훌륭한 인간〉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이러한 생각과 함께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다음 소설 『백치』의 테마로 나아간다. - 『노름꾼』과 두 번째 결혼, 외국에서의 생활‘(꼰스딴찐 모출스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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