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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문도 - 제1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94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생각지도 못한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호기심 잔뜩 부풀리며 네 살의 아들 손을 잡고 들어선 시상식장.
문학상 시상식에서 또 한번 생각지도 못하 상황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 두 분이 함께 하셨다.
활기차야 할 시상식장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대상 수상작 <델문도>의 최상희 작가는 수상 소감 중 이렇게 운을 떼었다.
'작가로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글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고통을 통감했다.
<델문도 Del Mundo> '세상 어딘가'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어딘가에서 있을 법한 소년기 아이들의 생을 다룬 아홉 편의 이야기.
아홉 편의 작품은 '삶' 즉 '인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아홉 가지 인생을 담아낸다.
기존에 접했던 청소년 문학은 일상 속의 추억이나 갈등, 학교 문제, 또래관계, 부모와의 갈등, 모험 등의 소재가 다수이다.
<델문도>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색깔로 소년기들의 생을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신선함과 낯섦을 선사한다.
<붕대를 한 남자>는 호주에 살고 있는 '이안'이 더운 날, 물 한잔을 부탁하며 자신의 집에 들어선 '붕대를 한 남자'의 고백을
들으며 생과 사의 서늘함을 깨닫는다. 남자가 떠난 후, 이안은 좋아하던 공기총을 뒤뜰 쓰레기통에 버린다. 두 번째 이야기
<노 프라블럼>은 릭샤를 끌며 겨우 살아가는 '아룬'의 사랑 이야기다. 릭샤로 한국에서 온 '유진'의 등하교를 전담하며 푼돈을
버는 아룬은 어느날 유진의 거래로 함께 영화를 보고, 갠지스강에서 소원과 나이를 물으며 짧은 데이트로 서로 다른 삶을
알아차린다. 열여섯의 릭샤꾼은 열여섯의 소녀에게 '예스 마담, 노 프라블럼 마담'이라고 반복하는 일상을 산다.
<내기>는 아빠와 단둘이 떠난 제주도 여행을 추억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여행 중에 '금지어'를 말하면 상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임 규칙 속에 이들 부자는 아빠의 죽음이 임박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페이퍼 컷>은 엄마때문에 홀로 해외여행 길에 오른
고2의 '나'는 옆좌석에 앉게 된 뚱뚱한 여자와 공항 로비 의자에서 재회하며 색다른 삶을 만나게 된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나와 언어장애인 그녀는 메모로 이야기를 나눈다. 비공식 대회에서 '페이퍼 컷'을 하기 위해 런던에 왔다는 그녀는 나의
이야기 만으로 '페이퍼 컷'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들었다.
첫 작품 <붕대를 한 남자>를 읽으며, 몰입도가 좋았다. 그러나 덮고 싶었다. 어둡고, 질척한 삶의 바닥과 정면하고 싶지 않았기에
<델문도>를 방치하고 싶었다. 청소년문학이 주는 '희망'이라는 상징성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작가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다른 삶을 투영하여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지? 마지막 작품을 덮으며, 그래도 '희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에 안도했다.
기억에 대한 소재를 다룬 <missing>과 <기적 소리>는 참 뭉클했다. 술과 난폭한 아버지, 가난에 찌든 엄마 속에 어느날
공원에서 따라나선 낯선 할머니를 통해 따뜻함을 맛본 주인공 아더. 아버지의 지방 발령으로 잦은 이사를 다니며 기억이
상실된 나에게 어느날 같은 반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기억의 오류였다. <필름> 작품은 여행자와
사진을 통해 여행을 감상하는 자의 시선이 독특하다. 한 여학생이 맡겨둔 여행 사진을 한 장씩 훑어보는 '나'는 또 다른
여행의 경험을 가져본다. <무대륙의 소년>에는 여행객이 도착하면 구걸하거나 꽃을 팔기 위해 뛰어다는 아이들 모습이
투영된다. '물의 도시'에 살고 있는 '나'에겐 친구 '안젤로' 뿐이다. 함께 살았던 엄마도 떠나고, 곰팡이 나는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나'는 친구 '안젤로'에게까지 절연 당한다. <시튀스테쿰>은 수도원에 버려진 에밀의 이야기다. 그림 그리기
를 몹시 좋아하고,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는 수사 루이엘이다. 'Sit vis tecum'은 에밀과 루이엘의 암호이다.
수도원에서 만난 기숙사 친구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 에밀은 신성함에 반항하며 한번도 나가본 적 없는 수도원 너머의
세상으로 떠난다. 루이엘과 에밀은 낮은 목소리로 'Sit vis tecum 너에게 힘이 깃들기를'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델문도>를 읽으며, 여행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한국, 이탈리아, 호주, 인도, 영국 등의 소년들의 삶, 삶과 둘러싼 사연을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였다. 독자로서 사연 하나하나에 울컥하기도, 침울해서 덮고 싶은 마음이 더 했지만,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겪거나,
견디어 내야하는 삶의 이야는 분명하다. 그것이 소년기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시상식 날, 함께했던 우리들은 아이들의 죽음에 침통했다. <델문도> '세상 어딘가'라는 서명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의 저편으로 간 아이들의 사연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Sit vis tecum'.
문학의 힘이란 그런게 아닐까. 위태한 인생에서 그래도 살아 남는 존재의 힘을 부여하는 것.
'세상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 힘이 깃들기를.... Sit vis tec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