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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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순전히 이 책의 저자가 배우 정애리이기 때문이었다. 정애리 배우는 오랫동안 연기활동을 해와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특히 젊은층에게는 '인간 담터'로 불리며 담터 브랜드 장수모델, 담터의 상징으로 알려져있다. (담터 단호박 마차 추천합니다. 진짜 맛있..) 그가 가진 따뜻한 이미지와 또 밈화된 친근함으로 인해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의 내용은 어떨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추운 날씨니까 따뜻한 내용을 담은 글을 읽게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기대이상으로 밝고 가벼운 분위기의 글이었다. 나누는 삶, 봉사하는 마음에 대한 내용이 길게 이어져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으니 일상에 감사하고 희망을 바라보는 내용이 많았다. 사진도 풍경뿐아니라 강아지 사진이나 치과 진료 카드, 옥수수, 종이배, 김밥 같이 소소한 것들이 많고, 짧은 호흡의 글로 마치 그날그날의 혹은 어느 순간의 감상을 담은 일기같은 글들을 모아놓았다. 곁들여지는 사진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은 책이라 차 한잔 타놓은 여유로운 시간에 아무 부담없이 읽기 좋았다. 심각하거나 어두운 내용이 아니라 읽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중간중간 시도 한편씩 만나볼 수 있고,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도 진솔하게 들어있어서 배우 정애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요즘 감성과는 좀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50대 이상의 여성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에세이가 될 것 같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볼 때는 맡는 배역 때문인지 글을 읽을 때보다 더 차가운 이미지가 컸는데, 소녀같은 감성이 엿보이는 글로 만나니 읽을수록 친근한 느낌이 들어 내적 친분을 쌓게 되었다. 앞으로 담터로 또 새로운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다.

 

 여성잡지나 샘터같은 잡지를 읽지 않은지 좀 오래되어서 맞는지 모르겠는데,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이란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가끔 들춰보던 엄마잡지에서 봤던 옛 감성 같기도 하고, 어쩜 아직도 이런 시선의 글을 쓰실 수 있었을까 싶기도한 면이 있었다. 싸이월드가 망한 이후로 이런 감성 촉촉한 글은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난 기분이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책이라 책을 다 읽고나면 엄마 읽으시라고 권해드려야겠다는 마음먹었다. 내용도 그렇고 분량이 짤막해서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읽기 편해하실 것 같다.

 

 젊은 독자라면 엄마에게 따뜻한 차와 함께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을 선물하고, 요런 감성 촉촉한 글에 목말랐던 독자라면 스스로에게 한 권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감정소모가 적다고 해야할까 '무해한' 스트레스가 없는 컨텐츠를 부러 찾아읽곤 하는데, 정애리의 이 신간에서 무해하며 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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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릇 -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이즈미 마사토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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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학 입문서'라고 해서 자기계발서 느낌이 많이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설 형식이라 술술 읽혔다. '교양 소설'이라니, 왜 이런 내용은 이야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재밌고 읽기 편할까.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소설도 읽고 자기계발서의 정보도 얻는 느낌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읽어보길 바란다. 스스로를 조커라고 소개하는 노인과 사업에 실패해 음료수 하나 사먹을 돈 없는 고토의 만남이 알고보면 전형적인 흐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형식으로나마 읽기를 편하게 해줬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재밌게 읽었다.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오르고 아내와는 이혼한 고토는 딸 아이코의 수술을 앞두고도 병원에 찾아가지 않고 실의에 빠져있다. 자판기 앞에서 돈이 부족해하는 고토에게 선뜻 돈 백원을 빌려주는 노인은 그에게 자꾸만 선문답같은 말을 건넨다. 돈 백원을 빌려주며 고개를 숙여보라고 말하는 노인을 보자 얼마 전 인터넷으로 본 개그맨의 유튜브 내용이 떠올랐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 오는지 보는 것이었는데 통화를 하던 개그맨 중 한명이 대뜸 짖어보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돈이 참 무섭지. 
 
 묘한 카리스마를 가진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고토는, 그리고 독자들은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 
 
 "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지 모르겠네만, 돈은 일종의 에너지야. 열을 내뿜고 있지. 그런데 사람들마다 적합한 최적의 온도는 전부 달라. 에너지가 너무 적으면 차가워서 불편하지만, 너무 많아도 지나치게 뜨거워서 화상을 입고 말지. "...중략...그러나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분별력이 생기면 누구나 쉽게 돈을 다룰 수 있다고 착각해. 분별력과 돈을 다루는 건 별개인데 말이지.(42) "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게 되면 또는 신용카드를 처음 만들고 난 다음에 겉잡을 수 없이 소비가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욜로나 플렉스라는 말이 절약보다 더 많이 보이는 요즘이라 이 조언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읽으면서 솔직히는 뜨거워서 그대로 전소되어도 좋으니 너무 많아봤으면 좋겠다. 돈이 없어서 못쓰지 있으면 못쓸리 없다, 너무 많으면 돈을 다루는 능력같은 것은 생각안하고 써도 될텐데,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런 옹졸한 생각이 드는 내 '부자의 그릇'은 어떤 크기일까.  
 
 고토가 크림주먹밥 사업을 하다 실패했기 때문에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능력이 따로 있지 않으면 인생 2막은 퇴직금을 자본으로 한 창업...이 될테니 미리 읽어 준비한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거기에 준비없이 돈을 더 얻으려다 평정심을 잃어 실패한 고토의 이야기를 통해 과열된 주식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투자자들에게도 평정심을 일깨워줄만한 내용이다. '돈의 본질을 깨달아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사이좋게 공생하는 힘(222)'을 갈고 닦아봅시다. 
 
 요즘처럼 적극적으로 돈을 다루는 힘이 필요한 때에 어떤 시선으로 돈을 바라볼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이었다. 돈과 재테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들리는 말은 많은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잠시 시간을 내서 '부자의 그릇'을 읽어보자.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는 것이니 부담없이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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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의 유전자 - 회사 위에 존재하는 자들의 비밀
제갈현열.강대준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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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가 바로 옆에 있다.

당신이 어제보다 더 나은 존재로 날아오를 수 있는 순간이. (120) "

 

C레벨, C유전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뭘까?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그리던 미래를 거머쥘 수 있다는 한국형 자수성가 '개천용'도 이제는 멸종위기를 넘어 더이상 나지 않는다고 하는 요즘이다. '사다리를 걷어차고 C레벨로 도약'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을까? 그 사다리 한 번 타보겠다고 매달려있다가 사다리랑 같이 나가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로 경제활동은 얼어붙어있는데 코스피는 3천을 넘었다. 개미들은 동학운동도 하고 서학운동도 하느라 바쁘다. 적당히 직장에서 월급받아 생활하면 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와 월급으로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여긴다.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 하다못해 로또만이 답이다.

 

 하지만 책은 " 매일 아침 화장실에 몰래 앉아 주식 시세 창을 바라보는 것은,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말하는 이름 모를 투자 상품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의 마음만 어지럽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순간순간이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자산, 시간을 갉아먹는다.(81) " 고 한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살길이라고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그쪽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책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사실 달라진 호칭 문화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직급을 없애고 수평적 호칭문화를 도입하고 애자일 조직 문화를 추구하는 한 회사의 시도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는데 기대효과의 열에 다섯 이상은 정말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C의 유전자가 주장하는 내용들도 열에 다섯 이상은 남는 것 아닐까.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성 마저도 불안정한 마당에 책을 한 권 읽고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책에 나오는 C를 포함한 용어들. CEO, CMO, CCO, CHRO, CFO, CTO, COO 같이 C의 세계는 아무리 들어도 드라마 속 30대 초반 본부장같이 멀고 멀다. 그런데 책은 당신 안에 잠들어 있는 C의 유전자를 깨우면 '야 너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이거 또 엄한 얘기하는거 아닌가 싶었다. 회사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을 원하지만 주인이 되려는 직원을 원하지는 않는 것 아닌가? 애초부터 나랑은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아닐까 의심하다가 최근에 읽었던 책 한 권의 내용이 떠올랐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라는 책과 용어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 명함만 내세우고, 오직 회사 이름으로만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하며 살다 보면 결코 그 명함을 넘어서지 못한다.(164) "는 내용처럼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부속화 시키지 말고 그 분야의 전문적 인재가 되어 직업인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C의 유전자'의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꼭 임원에 해당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길러 "자신의 분야에서 최종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표(51)"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기를 조언한다. 그러니 처음 느꼈던 불신은 점차 사라지고, 자신의 미래를 목표의식을 갖고 구성해나가야 한다는 '밥벌이'의 평범하지만 중요한 기본기를 강조하는 조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금 엉뚱한 내용이지만 " 이제부터 당신이 이직을 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연봉 상승이나 직급 상승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직을 할 때 세가지 정도의 조건을 고려해왔다. 직급과 연봉, 그리고 사람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조직은 C레벨을 중심으로 개편될 것이다.(138) " 이 부분을 읽고 생각이 전환된 부분도 있지만 이직을 할 때 고려해온 세가지 조건 중 하나에 위치/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의외의 사실에 놀랐다. 사람은 이직을 결심하게 하는 조건 아니었던가.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이 이런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관료적으로 경직된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면 우선은 그래도 계속 다니면서 커리어를 쌓아뒀다가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난 뒤 도약을 준비하길 바란다. 

 

 처음의 기대보다 흥미롭게 읽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문득 놀라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이 '일'이라는 것을 남은 인생의 대부분, 거의 평생을 계속해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대 수명이 더 늘어남에 따라 정년도 늦춰질 것이다. 어떻게 일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자신을 어떤 자리로 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맨 마지막 부분에 있는 311쪽의 C지표지수 5개를 미리 체크해보고, 다시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읽고 난 다음에 다시 한 번 5개의 항목을 체크한 뒤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읽기 전의 자신의 생각과 이 책을 읽은 후 생각을 정리하고 난 다음 변화된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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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호한 행복 -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결한 철학 연습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방진이 옮김 / 다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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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둘리기 쉬운 사람을 위한 생존 철학'이라니. 솔직히 2장의 첫 내용부터 이를 마음으로부터 섬기고 행할 수 있는 자는 곧 부처이니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철학이 이성과 금욕을 중시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단계가 높았다. 요즘 서점을 장악한 말랑한 책들의 위로 속에서 한껏 보살핌 받은 탓일까 모든 일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단호한 어조에 부담과 반발심이 울컥 일어났다. 사람답게 욕망하고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지, 수행자의 삶을 살겠다는게 아니라구요! 어디를 향해있는지 알 수 없는 화를 삭히며 책을 덮어두고는 쿨타임을 가졌다. 왜 화가 나지? 솔직히 틀린 말은 없었는데 왜 전부 반박하고 싶지?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그 안에 내가 휘둘리던 것들이 있었다. 사는게 다 이렇지 하고 포장해서 넘기고 싶었는데 굳이 그 포장을 들춰내려고 하니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을 좀 내려놓고 읽기로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반성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집착을 조금 내려놓아야지 생각도 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자기 자신과 주변의 관계 같은 것을 곱씹다보면 우울이 오기 쉽다고 했다. " 욕구와 관심의 방향을 돌리면 행복과 평안을 얻을 수 있(54) "다는 말을 앞에 두고 내 앞에 놓았던 욕구와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해보았다. 그중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노력이나 강요도 소용없으며, 무엇보다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잘못이나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왜 내 뜻대로 안되지하고 욕심부리는 것, 그때 내가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하고 후회하는 것에서만 벗어나도 정신건강에 한결 도움이 되겠다. 물론 실천이 어렵겠지만.

 

 " 우주는 우리의 편도, 적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주는 그저 무심한 채로 흘러갑니다.(78) " 처음에는 책에서 자꾸 '우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언제는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빼앗긴 돈도, 잃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주의 연결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과관계(106) "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야 우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온 세상이지만 우주야말로 한없이 광활한 공간 안에 작고 창백한 푸른점,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아닌가. 읽다보니 우주라는 말의 쓰임이 운명이나 팔자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됐다. 요즘 불교 경전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그런지 읽을수록 불교 교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느껴졌다.

 

 " 우리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중략... 사람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55) " 끝까지 이 부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간관계의 거리가, 그리고 유한함이 정말 어렵고 힘들다. 특히 이 주제는 반복해서 나오는데, 컵이 언젠가는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95)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오래 입어 낡아버린 아끼던 옷도 버리려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하물며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이라니. 이를 " 우주에게서 빌린 사람이었고 우주가 다시 데리고 간 것(69)" 으로 여기기는 어렵다. 앞으로 더 마음을 비우고 성숙해지면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른 내용들보다는 조금 가볍지만 그래도 유용한 조언을 하나 소개한다. "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처신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남들을 의식하기보다 혼자 조용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중략... 결심했나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고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140) " SNS 줄이라는 말을 돌려서 표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방금 먹은 저녁밥이 뭐였는지도 실시간으로 수시로 공유하고 알리는 사회고, 자기 표현이 미덕인 세상이라 교육받고 자랐지만 과잉된 전시에 피로를 느끼고 오히려 삶의 중심을 잃게 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알리지 않고 행동하라,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따라 살라는 조언은 언제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철학 이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은 가볍게 훑어 읽었고 2부, 3부 특히 2부의 내용을 여러번 읽었다. 읽어 넘기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근간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해가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딱딱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비움과 채움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자신에게 너그러운 치유계 에세이들을 읽었다면, 가끔 이런 단호함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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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22-03-1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렇게 긴글을 그리고 이렇게 남들이 보는 곳에 적으신 걸 보면 남의 시선을 신경쓰시는 분 같네요.

오라오라 2022-03-12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꽃이 집니다. 그런 자연의 순리가 글에서 말씀하신 부분인 거 같네요. 불교에선 제행무상,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받아들이기 쉽건 어렵건 이건 세상의 순리라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벚꽃이 예쁜거겠죠.
 
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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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픽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도전이 궁금했다. 문예 계간지라니. 곤궁한 인맥 때문일까 문예지와 계간지를 혹은 그 둘 모두라 할지라도 찾아 읽는 사람을 본 적이 그리 없다. 더 솔직히는 책 읽는 사람마저도 보기 어렵다. 책을 읽는 것이 내밀한 취미생활이 되어버렸는지 인터넷에서는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데 실생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은 미용실에서도 핸드폰을 하지 잡지는 잘 안읽는다. 우리는 하루씩 '읽기'와 멀어지고 있는데, 어쩌면 그 안에서도 확고한 취향이 존재하는가 싶은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서사 중심의 문학잡지!라는 기조를 내세워 창간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에픽이 어떤 색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에픽의 필진들과 그들의 글을 보면서 불현듯 21세기에 되살아난 살롱문화를 떠올렸다. 에픽은 아마 기획자들이 꿈꾸는 살롱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 살롱에 초대받은 자들이 자유롭게 각자가 가진 교양과 지식, 재능을 펼쳐내보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조금 낯설고 또 흥미로웠다. 어떤 글이든 그렇겠지만 에픽 안에서 만난 글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래서 확신의 수요가 있을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사교모임의 장을 열고자 한 느낌이다. 에픽이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게 될 것인지, 협업과 기획으로 분야를 넘나드는 플랫폼이 될 것인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모든 텍스트는 문학이다'라는 문구가 강렬한 이 문예지를 읽으며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평소 다른 분야의 글들보다는 소설 읽는 것을 가장 편하게 느끼는데 에픽 안에서는 오히려 논픽션 쪽의 글이 더욱 흥미로웠다. 몰랐는데 나 르포 좋아하네. 여성 노숙인의 이야기를 다룬 구술생애사 최현숙의 글이나 응급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남궁인의 글이 가장 인상깊은 꼭지였다. 솔직히 이 두 글의 방향성이 어떠하리라고 예상한 정도의 범위안에 있다는 점('여성' 노숙인의 현실을 통해 여성주의 담론으로 확장되는, 응급실 근무의 어려움, 사명감 그리고 노동자들의 처우 같은)은 아쉽지만, 그래도 매번 타인의 삶 - 그것도 쉽게 경험해보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건너볼 수 있다는 것은 매번 흥미를 끈다.

 

 그렇다고 해서 픽션이 마냥 열세였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글의 강렬함이야 제목부터 남다른 김홍의 '이인제의 나라'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아니 애초에 왜 '이인제'일까. 개인적인 감상이야 어찌되었든 암튼 이 제목을 이인제씨가 좋아합니다. '이인제의 나라'라니 정치인에게는 정치 인생의 꿈같은 제목 아닌가. 그리고 필진 중 가장 익숙하고 반가운 이름이었던 황정은 작가의 글도 기대되었었다. 공교롭게도 '기담'에서 " 남자는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현관 안쪽으로 안쪽으로 뒷걸음질하면서 알고 있다고, 아이가 많이 뛴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저도 아이를 혼내고는 있는데요, 그래도 생각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 게요...... 이 이상 아이를 컨트롤하려면 때리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뭐라고요? 제가 아이를 때릴 수밖에 없어요.(320) "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과 폭력 모두를 내포하고 있는 내용에 깜짝 놀랐다.  

 

 에픽을 처음 읽어본 나로서는 확실히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요즘 사람들이 유료회원으로 가입한다던 살롱문화 같은 것인가 싶기도 했고, 새로운 문예계간지의 등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첫만남으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창간호와 그 다음호에 들이는 각오가 흔들림없이 이 다음 에픽에서도 유지된다면. 우리에게 이것이 부재했고, 이것이 필요했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면 앞으로도 에픽의 계절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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