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인문학 - 처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고전 입문서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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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심보감과 인문학이 함께 놓인 책이 얼마나 고루할까 싶은 염려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밝혀두는데, 읽기에 좋다. 물론 고전이기 때문에 얼핏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인 것 같고 한자로 되어 있어 읽기에 편하지 않고 지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전하는 내용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본다,하면 오래된 것이라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으로 놓치기에는 아깝다. 혹 논어나 사기보다 가벼운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깊이는 얕지 않고,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읽기에 더 좋을 것 같다. 
 
 읽기 전에는 명심보감을 읽어본 적도 없고 알고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면 익숙한 듯한 내용도 있다. 아마 사람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가 시대를 관통하여 전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면 나에게도 착한점이 있는지 찾아보고, 다른 사람의 악행을 보면 나에게도 악한점이 있는지 살펴보라. 이와 같이 한다면 바야흐로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183) " 는 내용을 여러번 읽었다. 아마 요즘 가장 신경쓰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읽기 때문이리라.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박하게 행동하지 않는지 일부러라도 신경쓰려한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한 내용도 있다. "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바꾸어 섬기지 않는다(212) " 내용 자체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을 뿐더러 문제를 삼으려면 걸리는 부분이 있겠지만, 대충 의리를 지키며 사는게 좋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책을 덮기 전 "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283) " 는 마지막 주제를 읽으며 명심보감 안의 내용도 갈무리하면 좋겠다. 이 마지막 주제가 요즘 관심있는 불교철학과 비슷한 면이 있어 이또한 인상깊게 남았다. 
 
 책은 4부로 성찰하는 삶, 지혜로운 삶, 실천하는 삶,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삶에 대하여 분류되어 있다. 각부는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30개 가까이 되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별로 3~4쪽 되는 분량으로 읽기 좋을만큼 짤막하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관심있는 주제부터 찾아 읽어도 좋겠다. 마음이 어지러울때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값어치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 때 인문학을 찾아보게 된다. 가끔 서점에 가보면 인문학 책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아마 이같은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다산의 신간을 통해 전에는 아마 읽어보려 하지 않았을 명심보감을 읽게 되어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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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미래 “좋은 삶”
김인회 지음 / 준평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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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라니, 이 말이 다소 고루하게 느껴진다. 요즘 세상에, 라는 말이 어쩐지 따라붙는 느낌이다. 뉴스를 보다보면 누가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을 신경쓰고 있는가 싶어진다. 그래서 이럴 때 일수록 윤리에 대해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또 사람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목차를 살펴봐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 어려울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불쑥 드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도 든다. 정신을 살찌우는 독서가 될 것 같아 욕심이 드는 책이다. 소개글을 읽으며 어렵지만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사회와 사람들에게서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던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마땅한 것을 당연하게 읽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못했는데, '혐오범죄를 예(88)'로 든 내용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그런데 대뜸 혐오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88)" 는 문장부터 공감을 사기 어려웠다. 꼬투리를 잡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혐오범죄 양상을 보면 '대뜸'이라는 표현이 사용될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고 있고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까지 있는 마당에 원론적인 얘기만이 제대로 된 해결법인양 내세우는 것은 다소 실망스럽다. 또한 이 책에서도 SNS의 단점들에 대해 만나게 되리라 생각지 못했던 탓에 ,또 이제는 SNS가 메일을 사용하는 것처럼 정보의 공유와 교류에 있어서 너무나 필수적인 요소가 된 탓에 SNS를 경계하는 내용도 아쉬웠다.

 

 솔직히 책의 내용이 고루한 부분이 있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익숙하고 밀접한 내용이 많아 키워드에 끌리듯 조금씩 조금씩 더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초연결사회(228), 착한 소비(254), 인구감소(297) 같은 키워드가 윤리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을지 충분히 관심을 끌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4장에서 '직업과 윤리'를 다루며 의료윤리에 대한 내용을 관심있게 읽었다. 의료계가 요즘 한창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직업군이기도 하고, 수술실 CCTV와 의료면허 관련된 사안으로 생각이 복잡했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비록 책의 내용에서는 원했던 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직업윤리에 꼽힌 직업군으로 다각도로 의료/법조 윤리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윤리란 무엇인가를 다룬 2장의 내용, 특히 5단계 자비와 사랑(107) 내용도 원래 궁금했고 알고 싶었던 핵심내용과 더불어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불교윤리도 함께 언급되어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다. 하지만 추천한다면 4장의 내용을 가장 흥미롭게 읽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다소 망설여진다면 4장의 내용을 읽어보고 정해봐도 좋겠다. 혹은 전부를 완독하지 않더라도 4장의 내용만이라도 읽어본다면 요즘 현대사회에서 윤리라는 덕목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충분히 나름의 의미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읽기 전에는 '윤리의 미래'가 삼부작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란 것을 몰랐는데 순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라면 첫 책 '정의의 미래' 부터 시작하라는 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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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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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은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나는 연옥에 빠졌다. 대체 무슨 죄를 지어 이곳으로 내몰린 것일까? (17) "

 

 제목과 표지 모두 독특한 책이다. 일곱번 죽는다는 것도 알쏭달쏭하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체스 말이 하나 놓여져 있는 듯한 표지도 인상적이다. 장르를 따지자면 SF미스터리일까? SF고딕? 지금은 책으로 만나지만 아마 곧 영화로도 제작되지 않을까 싶을만한 소재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첫 소설이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저자가 읽어온 소설의 작가들이 애거스 크리스티나 스티븐 킹이라는 것만 봐도 독자를 확 끌어당겨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만한 야심작인 것 같아 기대됐다.

 

 이 두터운 책은 혼란으로 시작된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전해주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해받은 독자는 서둘러 작가가 깔아놓은 조각들을 주워모으려 한다. 전달해주는 정보를 가지고 반전에 휩쓸리지 않고 한걸음 앞서 나가는 독자가 되고싶다는 오기가 생긴다. 서배스천이 애나라는 이름을 떠올리듯이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는 작가가 걸어온 게임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문장은 다소 올드하다고 느껴지지만 순식간에 소설안에 독자의 자리를 만드는 능숙함이 제법 흥미롭다.

 

 " 한때 나와 호스트들 사이에 버티고 있던 장벽은 거의 완전히 허물어졌다. 래시턴의 삶과 내 삶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431) "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호스트들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을 두고 '라쇼몽'을 떠올렸는데, 각자의 입장과 시선이 가리키는 바가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포함해서 몸의 주인과 비숍이 동화되는 점들은 또 이와 달리 독특했다. 시간을 넘나들고 몸이 뒤바뀌는 과정 동안 한걸음 앞서 나가려다가 오히려 전개를 따라잡기에 바빴다. 두권으로 충분히 나눠질만한 분량을 한권으로 묶은 것이 흐름이 끊기지 말라는 배려처럼 느껴진다. 책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에이든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겠지 싶을때도 아직 뭐가 더 남아있었던거야? 싶은 관문을 남긴다.

 

 빨리 비밀을 다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는데 성향에 따라서는 내용이 복잡하니만큼 인물들을 기록하고 꼼꼼히 따져보느라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게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의 본성과 정의라는 오래된 가치가 심어져있는 주제의식도, 고딕 분위기도 약간은 고루하지만 개성있게 봤다. 이미 출간된 후속작도 곧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데뷔작에 이어 또 한번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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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의 섬진 산책
공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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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의아했다. 물론 안다. 솔직히말해서 '공지영'이란 이름은 유명세와, 또 그만큼의 구설도 따라붙는다. 삶이 녹록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지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명. 그런데 그가, 그마저, 자신을 '빚더미에 오른 7년 동안의 경력 단절녀'라고 부른다. 행복은 상대적인것인가. 행복이란 뭘까. 어찌되었든, 스스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런 것이다. 비움을 얘기하는 사람이 겉에서보면 풀소유를 향유하고 있더라도, 비교하자하면 끝도 없을테니까. 비난의 말을 하나 더 얹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 처음엔 그렇게 어리둥절했다는 것이다. 
 
 달콤한 말에 또 속게되는건 아닐까 살짝 날선 눈으로 책을 읽다가 이상하게도 어느 한 부분에서 마음을 조금 열었다. H의 방문에 대한 얘기였다. 그녀에게 해준 모든 말들을 '그러네'하고 무감히 바라봤다. 그게 진짜 위로가 될까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욕조에 물을 받아 그녀에게 반신욕을 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는 부분이 좋았다. 위로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구나. 이렇게까지 폼나지 않을지라도 나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아무리 좋은 위로의 말들을 읽었어도 혼자 반신욕을 할 시간을 준 그 위로법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공감할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몸과 음식에 관한 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집을 관리하기 위해 청소업체의 힘을 빌리고, 혼자하는 식사도 남을 대접하듯 스스로를 대접하라는 말은 요즘 흔하게 접하는 생활팁으로 읽어넘길 수 있었는데 체중과 식욕, 부담감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하게 많이 공감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이던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머리로는 잘 아는데 오랫동안 학습되다시피 한 사회의 가치, 기준 같은 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쯤되면 그건 사회만의 기준도 아니다. 정말 책에 쓴대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이제는!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을까? 
 
 그 뒤로도 계속 시선에서 벗어나 얽매였던 스스로를 깨고 또 다시 사랑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이 중요할까, 그렇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외모에 대한 말이 어떤 방식이든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단호히 칭찬을 거절할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문득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식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은지 비슷비슷한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여전히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겠어도 그래도 나만 이런 게 아니란 생각에 안도했다.
 
 부모님과의 이야기 중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저자에게 한 말이 이제는 마음에 사무쳤다. 이미 자식과의 이별을 각오했다는 말. 지난 만남을 마지막 추억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앞으로 다른 시간을 함께 쌓을 수도 있다는 것(205). 언젠가 모든 사람들과의 이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종종 대는 요즘의 나에게는 작은 충격이자 괴로움이었다. 정말 하루라도 더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을까,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분명 후회하겠지 싶다. 어릴 때는 몰랐던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는 것이 싫다. 
 
 그리고 나이먹는 것이 싫은 또 하나의 이유, 늙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또다른 친구 S의 고민과 더불어 곁들여진다. 저자가 11살 차이의 연하 남과 연애하기를 그만둔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유명한 미드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떠올랐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동안 집착처럼 사랑했던 남자에게 먼저 이별을 고하는 '사만다'의 모습! 연하의 상대가 자신보다 그보다 더 어린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그때 그의 머리에 스쳤을 생각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기란 매순간 어렵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지만 공지영의 화법으로 또 그만큼의 경험치를 가지고 풀어내는 것들을 읽어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너무 차갑고, 지나쳤고 어떤 것들은 판에 박히고, 식상하다 생각했지만 이런 부정적인 반발을 끌어올만큼 솔직했으리라.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읽는다면 여러모로 공감할 것이 많겠다. 그리고 딱 저자만큼 더 살아보고 다시 읽어봐야지 싶었다. 그때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려나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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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이 병은 아니잖아요?
이지아 지음 / 델피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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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대범하고 쿨한 사람은 아닌데, 양심에 손을 얻고 소심한 쪽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 때로 자신의 소심함을 무기로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어서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칭하는 사람을 조심하는 편이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이를테면, '나 소심해서 상처 잘 받으니까 나한테는 조심해줘'라거나 '난 소심해서 그런거 못하겠어 니가 해주면 안될까?'같은 말을 하는 경우를 만날 때였다. '소심이 병은 아니잖아요?'를 오히려 되물어주고 싶은 소심들이었다. 책에서도 그런 소심함을 만나게 되면 어쩌지 싶었는데, 의외로 이런 소심함이라면 나도 사실은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될만한 내용이었다. 
 
 처음으로 공감하고 심지어 너무 공감해서 부끄럽고 웃겼던 이야기가 '5만9천원 짜리 필통' 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이 존재하고 때로 어떤 상품은 내 기준을 아주 많이 웃도는 가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것이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지 못할 때에도 그게 가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이 연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 다른 색이 있으면 딱 좋을텐데 라고 하거나 작은 부분을 찝어 이 부분이 좀 아쉽네 라고 하거나 예쁘긴한데 비슷한게 있어서 같은 말들을 괜히 해보고는 눈앞에 찍힌 놀랄만한 가격을 속으로 삼킨다. 그런데 너무 비싸서 못사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쓴물을 삼키며 5만9천원 짜리 필통을 두개나 사게 된 이야기는 공감되고 웃기고 민망한 소심함이라 처음의 경계를 내려놓고 책을 읽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하나, '아줌마' 소리를 들은 순간에 대한 경험을 담은 이야기는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의 묘한 타격. 아줌마라는 말이 왜 충격과 무례로 느껴지는지 설명하기는 복잡하고 어려운데 나는 그 말을 무려 스무살적에 들은 적이 있어서 저자가 황급히 붙여놓은 " 변명해보자면, 사정이 생겨 겨우 한 달 일하고 그만뒀지만 한 달 동안 아줌마 소리를 들은 건 그때 딱 한 번이었다. 나름 아줌마 소리 들을 정도로 생기지는 않았다고 착각 또는 자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그 손님과 같이 왔던 일행이 "야, 어딜 봐서 아줌마냐"라고 내 마음을 대변해주기는 했다(43) " 는 글들이 웃프게 다가왔다. 아줌마가 대체 뭐길래. 아줌마 소릴 들을 정도로 생긴 것은 대체 무엇이고. 
 
 읽으면서 점점 소심이 뭘까, 이런게 소심이라면 우린 다 소심한 것 아닐까 싶은 평범한 이야기들을 만나기도 했고 '아, 이 사람은 이런 것도 고민스럽게 생각하는구나'싶게 다른 부분들도 있었다. 싸운 친구와 대형마트에서 마주친 이야기(78)나 생리현상에 대한 고민(127), 스타벅스를 싫어한다는 고백(186)같은 것들이 그랬다. 스타벅스에 대한 고백은 요즘 서브웨이에서 주문하기 같은 것들로도 종종 공감을 얻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먹는데 진심이 나는 맛있는 걸 맛있게 먹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알아보고 그것도 안되면 물어보는 편이라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안타까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어머니와의 문제 상황(84)과 시댁에 안가고 싶다는 고백(99)를 책으로 써낸 것은 소심으로 볼 수 없는 대범함이라서 놀랐다. 
 
 책 말미에 작가 자신도 자신이 소심한가 아닌가 모르겠다고 해서 웃으며 책장을 덮었다. 거기다 마음속에 남은 뒷끝마저 탈탈 털어놓은 짧은 편지들도 구차하고 소소한 면모가 솔직해서 웃겼다. 끝내는 나쁜말 못하겠어서 맺힌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풀어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소심하긴 한가보다. 아닌가? 사람에게는 분명 여러가지 면모가 있으니, 평소 내가 소심한건 아닐까 혹은 소심해서 고민이라는 걱정이 있다면 이 자기 긍정학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위안을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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