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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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시집을 읽지만 한동안 뜸했다. 어제 하루종일 날이 흐리더니 오늘은 제법 춥다. 온종일 거리를 쏘다니다 돌아온 이가 길바닥엔 은행이 떨궈놓은 흔적이 폭탄처럼 늘어졌다고 푸념했다. 별 일 없는, 그래서 서러운 한 해가 하루처럼 가고 있다. 무상한 시간을 관조하는 9월의 저녁, 열어놓은 창가 곁에서 읽기 좋을 시집 한 권을 만났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한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의 세사르 바예호는 어쩌면 익숙치 않은 시인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이에게 세사르 바예호는 "무한한 애틋함[une infinie tendresse]-La Vie d'Adèle"으로 새겨질 만한 20세기 현대시의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절판 이후로 그의 시집에 목말랐을 많은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온 이 시선집은 독특한 감각으로 눈길을 끌고 마침내 독자를 사로잡는다.

 

 시는 마치 소설처럼, 혹은 한 편의 일대기를 담아낸 흑백 필름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과 밀접하게 얽매인 시어들 속에서, 때로 치열하게 때로 깊은 구렁 안으로 파고들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시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삶과 한 시대의 민낯이 산산이 부딪혀오는 충격을 안으며 이 "불행한 만찬"을 "데려와달라고 한 적이 없는" "눈물의 계곡"에서 "언제까지 여기 있"도록 머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세사르 바예호는 시를 통해 내면과 정신 안의 관념을 스치고 지나가는 인생의 찰나를 잡아채고, 삶 그 자체에 뛰어들어 날 것의 속살을 헤집어 드러낸다. 그리하여 다소 낯설고 이국적인 감각들 사이에서 가슴 깊숙이 내려앉는 영혼의 공명을 발견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낮고 어두운 구석구석을 감싸 지나는 시인의 애틋한 시선이 느껴진다. 인생이 싫었던 냉소가 아닌 연민으로.

 

 몇 편의 시들을 마음닿는 대로 소리내어 읽다가 그가 들려주려 했던 운율에 결코 닿지 못함을 좌절하기도 했다. 외국의 시를 접할 때마다 의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옮긴이의 책머리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번역된 시 감상에 한계를 느낀다. 짧은 생각이지만, 원문과 번역본, 원어 음성으로 시를 녹음한 QR코드가 함께 있다면 감상의 영역이 폭넓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쓰여진 모든 언어로 시를 감상할 수 없기에 늘 목마름으로 요구되었던 원문으로의 감상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학습 교재에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원문 감상이 필요한 시집에도 도입된다면 좋을 것 같다. 때로 어떤 시들은 소리내어 낭송되는 그 방식으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서도 "아에이오우의 아픔"이 특히나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마음에 드는 시들을 한두편 감상과 함께 옮겨내어 볼까 생각해봤지만, 한권에 하나씩 읽어 모두가 내면에 켜켜이 쌓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 바예호의 시를 옮겼을 당시는 IMF로 위축된 사회 정서를 고려하여 표제로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가 선택되었던 것에 비해, 지금 새로이 개정증보판을 내며 선택된 표제작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인 것이다. 약 20년 사이의 간극에서 얼어붙은 사회 안에서도 희망을 말하던 시집이 어쩌다 이제는 인생조차 싫은 날을 읊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 예리하게도,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 나의 어제, 혹은 오늘,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르는 인생이 싫었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변화된 흐름을 잘 따라간 세련됨으로 감상 욕구를 자극하는 소장할만한 시집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감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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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7-11-05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담아만 두고 아직 손을 못대고 있는 책입니다. 가을이 다 가는데 어쩌지요~~ 표제에 대한 지적은 테일님이 맥락을 제대로 짚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아도 지금으로서는 바뀐 표제가 더 맘이 끌리네요~~

테일 2017-11-08 19:1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가을을 지나오는 동안 오히려 더 책을 덜 읽은 것 같습니다. 시월은 특히 더 그랬네요. 게으름을 피웠다기 보다는... 가을을 타는가 봅니다. 낯선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짬을 내셔서 한 번 읽어보시길... 11월까지는 가을이니까요. ^^..
 
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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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소위 명문 대학을 졸업한 약 절반의 인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란 질문으로 시작된 한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다. 그 절반의 인재들은 여자였다. 오래된 졸업 앨범에서 찾아낸 그들의 현재를 한명씩 찾아보니 대부분의 경력은 단절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어 있거나, 전공과 무관한 소일거리를 겸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뜨거웠던 젊은 시절 사회를 일구는 주역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오른 남자 동기들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르다. 물론 시대가 변하기 전이기 때문에 더 전형적인 삶의 형태를 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많은 것들을 배운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왜 여성의 능력은 평가절하되는 것일까? 왜 여성은 선택을 해야 하고,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저자 신미남의 신간 '여자의 미래'를 통해 여자의 일과 삶에 대한 통찰을 살펴보고자 책을 읽었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포기하면 분명 편안해진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고통스러울 때 아이를 택하는 편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삼이다. 하지만 이때 희생한 내 인생을 보상받을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옳은 길도 없고 틀린 길도 없다. 내가 옳다고 믿고 선택한 길이 나의 길일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여자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 앞에서 한 번은 독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p.174 제4장 전문가"

 

 아직 시대가 다를 때, 자신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성공한 저자의 글 구석구석에서 그간 지나온 고된 여정이 느껴진다.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살펴주지 못했지만 함께하지 못한 10년보다 인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60년을 바라보며 더욱 가까워지려 노력한다는 내용을 보고, 어린아이를 두고 직장생활을 계속해나가야겠다 선택할때 죄책감만 갖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보고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얼마 전 티비에서 한 여자 방송인이 이 문제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자, 외국인 패널이 그녀에게 "당신이 남자라면 그런 고민을 하겠느냐"고 되묻는 장면을 봤다. 다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의 직업군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에서 저자가 말하는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기대되었다.

 

 읽으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표현들에 새삼 지난 직장 생활이 어땠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생각도 다소 굳어있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 어머니 세대의 집안살림에 비해 자신은 1/10밖에 안되는 수고를 들인다고 하며 자신의 며느리 세대에서는 지금의 1/10도 안되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은 어땠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세대에서, 특히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에서 집안일을 며느리의 몫으로 정해두고 있는 부분은 불만스러웠다. 실용되지도 않은 홈봇이나 사물인터넷이 집안일을 도울 것을 예상하면서도 남편과의 가사분담에 대한 언급은 없다니. 저자의 삶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넓게 유익한 책으로 전달되기 위해 이런 젠더 감수성도 고려된 내용이 더 있었다면 좋겠다.

 

 또 다른 부분은 일터에서 만난 여직원들에 대한 사례들을 꼽은 내용이 아쉬웠다. 대부분은 능력이 충분하면서도 여성적 성향 때문에 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꾼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담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뢰'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여직원들의 말을 옮기는 태도를 지적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내 몰래 급여 통장을 이중으로 나눠달라 요구한 남직원의 행동을 부모에게 용돈을 주려고 하는 갸륵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물론 회사의 일과 개인적인 일의 구분을 두고 신뢰를 따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신뢰라는 것이 공사를 나누어 판단될 수 있는 일일까. 이 남직원의 행동도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는 일일 뿐더러, 무엇보다 사회 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사내에서 말 옮기는 건 남녀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도 공주에서 무수리가 된 공대 재학 시절에 경험했던 부분임을 책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를 여성적 특성으로 대표하여 유형을 정해놓은 부분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성들이 스스로 가정 경제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가정 내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기에도 스스로 경제력을 지니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결혼은 오랜 시간 상대방과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하는 기나긴 행진이다. 어느 한쪽이 으레 어려운 일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같이 꾸려나가야 든든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여성들도 우리 자신을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여성의 자연스러운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p. 276 제6장 삶"

 

 저자가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만큼 일을 선택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와 자부심이 큰 내용이다. 여성의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고, 반대로 가정을 선택했다고 해서 가정내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어느 쪽이든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 표현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차고 강한 어조의 글이라 시원스럽게 읽히는 한편,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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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사업하는가 - 사람도 사업도 다시 태어나는 기본의 힘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지영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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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번 강조하건대, 나는 모든 판단의 기준을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가'라는 질문에 둔다. 바로 이 '인간으로서'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내 사업에 무엇이 좋은가도 아니고, 하물며 나 개인에게 무엇이 좋은가도 아니다. 어느 기업, 한 개인을 향한 이해득실을 넘어, 누가 보아도 공명정대하기에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업사고 할만한 바른 행동을 관철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것은 교세라에서 나를 비롯한 전 직원에게 가장 근본적인 행동 규범이 되었다. -p.195"

 

 왜 사업하는가에 대한 답보다는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가, 사업의 근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업에 성공하였고, 또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을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성공했으며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을 가진 사람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남보다 성공했으며 더 가진 이유는 부정한 방법을 썼거나, 타인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댓가를 가로챘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왜 사업하는가'를 읽으며 사업과 사업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현시대의 기업들과 그를 이끄는 책임/관리자들의 양상을 떠올린다.

 

 청소 용역자들에게 돌아갈 명절 선물조차 중간에서 가로챈 관리자, 계약직에게 성과를 강요해서 실적만 올리고 단 한명의 정직원 전환없이 모두 퇴사시킨 회사 방침, 자사 제품을 밀어내기 하고 갑질하는 대기업, 그리고 상한 재료를 헐값에 사들여 유통시켜 마진을 남기는 업체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 사건들은 충격적이면서도 만연한 문제였다. 마치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것처럼 지켜야 할 가치를 훼손하고 조롱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돈을 번다며 사업을 하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볼 때 '갓'을 붙여 열광하게 된다. 이들도 모든 면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나마 덜,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는 이유로 인정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물질만능의 배금주의에 익숙해진 현대사회에서 재화를 좇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흠이 아닐 정도로 당연한 욕망이다. 하지만 시작이 그러하였더라도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와 본인의 뜻 또한 달라져야 한다. 점차 대중들의 의식이 향상되고 사회의 구조와 흐름에 대해 순응적인 자세로 머물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요구와 검열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사업에 뜻을 두었다면 다소 뜬구름잡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 신간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제껏 단 하나만을 바라보고 성공을 꿈꿨다면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사업하는가'는 가장 근본적인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사업가의 자세가 된다. 그는 매순간 "경영을 할 때 모든 판단에 앞서 '인간으로서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지켜나가며 노력 -p.38"함을 강조한다. 마치 유치원에서 배울법한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부분도 있다. 혹자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사업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조성과 혁신적 개발에 대한 노력없이, 이 정도의 도덕성과 사람에게로 향하는 자세가 없는 자질로 사업을 하고, 사람을 쓰면 바로 지금같은 문제들이 터져나오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업가, 경영인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읽어볼 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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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알파 : 리더를 깨우는 리더
대니엘 할런 지음, 김미란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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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당신은 효과적으로 비전을 계획으로 바꿀 줄 아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와우! -p.288 8장 구체적으로 계획하라" 

 

 독서가에는 몇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유형이라기 보다는 취향의 문제에 가까운데 우리가 간단하게는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하고, 깊게는 사회적 문제로 부먹과 찍먹을 나누듯이, 독서에도 자기계발서를 선호하는 유형과 불호하는 유형이 극명하게 갈린다. 둘 다 후자인 입장이지만, 비즈 페이퍼에서 나온 신간 '리더를 깨우는 리더 뉴알파'에 대해서는 그런 선입견 없이 읽어보려 노력했다. 어떤 내용인가 한번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몇해전 반짝 사용됐던 '알파걸'의 알파라는 단어는 들어봤어도 '뉴알파'라는 주용어가 다소 생소할텐데, 이 용어에 대해 궁금하다면 관심을 갖고 읽어보길 권한다.

 

 일을 하면서 대부분 수평적인 업무 관계를 표방하고 서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좀 더 경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직적 관계가 생기게 된다. 사회는 능력 위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구성하는 조직이다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때로는 업무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일을 하고 연차가 쌓이다보면 결국은 누군가의 위에서 일하게 된다. 그럼 이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상사의 모습이 나에게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뒤에서 욕먹는 나쁜/무능력한 리더는 되고 싶지 않다. 밑에서 구를 때는 먼 곳에서 관망하듯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가득한데, 막상 위에서 누군가를 끌고 가려니 사람 다루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체감하게 된다.

 

 '뉴알파'는 언젠가는 리더의 자리에 속할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쉽게 말해 밑에서 구를 때는 몰랐던 위에서 굴리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덜 욕먹고 더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는 '리더'가 되도록 조언해주는 내용이다.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진짜 독자에게 시키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테스트 해보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표를 만들고, 멘토에게 메일을 보낼 미션을 내주고, 작은 선행을 실천해보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어떤 놀라운 일이 있어났는지"를 묻는다. 혹 얻은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실천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무한 긍정을 보인다. 요구되는 사항들을 다 실천해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실천을 지시하고 있다. 뭔가를 시작할 때 계획을 짜거나 꼼꼼히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만족할만한 구성이다.

 

 동시에 여기서 드러나는 자기계발서의 큰 단점 중 하나는 다소 과장된 감수성이다. 이 역시 외국의 저서를 옮겨오면서 생기는 문제인데, 책 초반의 "뉴알파 리더십 프로그램 서약서"라는 구성에서부터 소위 오그라듦을 체험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외웠던 걸스카우트 선서 같은 느낌이었다. 또 하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개복치같은 멘탈', '쿠크다스 심장' ,'귀차니스트' 같은 말들이 널리 사용되는 것처럼 리더라는 자리가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이 책을 선택할텐데, 그들이 실제적으로 행동에 옮기기 어려운 주문들이 너무나 쉽게 많이 **하라! 고 써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스스로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하길 기대하며 이 책을 선택했다면 이런 문제들에 좌절하지 말고 도전해보자고 마음먹길 바란다.

 

 자기계발서와 친하지 않지만, '뉴알파'는 나름 유쾌했다.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무모하리만큼 도전적이었던 자세가 외려 유쾌함을 불러일으켰다. 무기력하다가도 이렇게 많은 일을 의미를 찾으려 애쓰며 시도하자는데, 나도 뭔가 내가 원하는 새로운 일을 하나쯤 실천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굳이 책 내용을 따르지 않아도 누구나 아홉달 쯤 전에 올해는 이런걸 한 번 해봐야지 싶었던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울한 경고를 남기며 계기삼아 무엇이든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권해보고 싶어진다. 41쪽에 뉴알파 액션이라는 목록이 있는데, 책을 읽어본다면 그 중 두번째 액션을 나에게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 권장사항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나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 -p.113 2장 당신의 인간관계를 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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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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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름은 지나가버렸다. 야속하게도 절기 입추가 지나자마자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사라져 갑자기 찾아온 가을의 선뜩함에 어리둥절한지도 벌써 한달은 지났다.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프루스트와 함께하도록 권장하려 했던 이 사악한 책은 그만 여름을 놓치고 말았다. 어쩌면 여름휴가를 몽땅 독서에 잃어버릴 리 없을 것을 알아채고 부러 가을을 맞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모든 유용한 것들이 그러하듯, 이 책도 그만큼의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정복하길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다시 시작하면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주말을 포함해 약 4박 5일간의 여름휴가 동안 가능할 생각만큼의 일이었다면 이미 실패한 적 없었을 일을.   

 

 아, 프루스트. 그의 이 만연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그 이상의 큰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분량이 많은데다가 이어지는 흐름이 순차적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에서 표현했듯 " "불행한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면 중병이 들거나 한쪽 다리가 부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가 한 이 말"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위해 시도하였다 무참히 패배한 독서가들 중 하나로서, 약 5년 전 즈음에 한 출판사에서 새로이 출간한 것을 두 권 정도 읽다가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접했는데, 읽기 까다로와 몇 문장을 되새기듯 반복해서 읽게 만들면서도 계속 다음 문장으로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문체가 매력적이었던 인상이 남아있다.

 

 책세상의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상세하고 면밀히 분석한 총 여덟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책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독서가들의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줄만한 책이다. 이는 각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그리고 예술로 대표된다. 이 테마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루는 기본 골자를 파악하도록 보조하면서 작품 면면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어 독자들의 사유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벅찬데, 한 권 분량의 책이 하나 더 권장됨에 좌절할지 모르지만, 사실 중간에 첨부되어 실린 책의 분량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을 덜어도 될 것이다. 더 솔직하자면,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읽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철학들과 관련된 테마와 예술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어려움을 느꼈던 시간과 등장인물에 대한 테마에서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어려웠던가 갈피를 잡도록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심취해서 읽은 부분은 사랑 테마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은 공감대와 큰 관심을 갖는 주제이기도 한 이 테마는 소제목 단락들마저도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는데, "혹은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음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또는 우리가 붙잡은 사람이 상상했던 것과는 퍽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랑이란 없다. -p.132 제 4장 사랑 1 독자의 초상" 과 "그러므로 질투는 사람 자체보다 우리가 체험했다고 믿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의심을 나타낸다. -p.161 제 4장 사랑 4 질투"의 부분들이 깊이 공감되었다.

 

 첫머리에 로베르 프루스트가 한 말이 특히나 공감되는 것은 얼마 전 토지를 두고도 병상이나 옥중에서 완독할 수 있는 작품으로 표현했던 한 티비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가지는 의미 또한 비슷하고, 완독에 실패했다는 결과도 같아 개인적으로 연관하여 떠올리곤 한다. 때문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한 편, 완독만이 독서의 형태는 아니라는 것 또한 동시에 생각한다. 완독하지 못한 책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는 것은 즐거움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니. 다만 각 부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읽는 이를 이끄는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해석과 감상을 고정시키는 한계도 보인다. 물론 모든 길 잃은 독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기 위한 선의는 분명히 드러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어렵다면 가을을 맞아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으로 대체하여 시작해본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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