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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이미 여름은 지나가버렸다. 야속하게도 절기 입추가 지나자마자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사라져 갑자기 찾아온 가을의 선뜩함에 어리둥절한지도 벌써 한달은 지났다.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프루스트와 함께하도록 권장하려 했던 이 사악한 책은 그만 여름을 놓치고 말았다. 어쩌면 여름휴가를 몽땅 독서에 잃어버릴 리 없을 것을 알아채고 부러 가을을 맞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모든 유용한 것들이 그러하듯, 이 책도 그만큼의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정복하길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다시 시작하면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주말을 포함해 약 4박 5일간의 여름휴가 동안 가능할 생각만큼의 일이었다면 이미 실패한 적 없었을 일을.
아, 프루스트. 그의 이 만연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그 이상의 큰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분량이 많은데다가 이어지는 흐름이 순차적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에서 표현했듯 " "불행한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면 중병이 들거나 한쪽 다리가 부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가 한 이 말"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위해 시도하였다 무참히 패배한 독서가들 중 하나로서, 약 5년 전 즈음에 한 출판사에서 새로이 출간한 것을 두 권 정도 읽다가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접했는데, 읽기 까다로와 몇 문장을 되새기듯 반복해서 읽게 만들면서도 계속 다음 문장으로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문체가 매력적이었던 인상이 남아있다.
책세상의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상세하고 면밀히 분석한 총 여덟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책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독서가들의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줄만한 책이다. 이는 각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그리고 예술로 대표된다. 이 테마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루는 기본 골자를 파악하도록 보조하면서 작품 면면의 의미로까지 확장되어 독자들의 사유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벅찬데, 한 권 분량의 책이 하나 더 권장됨에 좌절할지 모르지만, 사실 중간에 첨부되어 실린 책의 분량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을 덜어도 될 것이다. 더 솔직하자면,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읽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철학들과 관련된 테마와 예술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어려움을 느꼈던 시간과 등장인물에 대한 테마에서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어려웠던가 갈피를 잡도록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심취해서 읽은 부분은 사랑 테마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은 공감대와 큰 관심을 갖는 주제이기도 한 이 테마는 소제목 단락들마저도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는데, "혹은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음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또는 우리가 붙잡은 사람이 상상했던 것과는 퍽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랑이란 없다. -p.132 제 4장 사랑 1 독자의 초상" 과 "그러므로 질투는 사람 자체보다 우리가 체험했다고 믿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의심을 나타낸다. -p.161 제 4장 사랑 4 질투"의 부분들이 깊이 공감되었다.
첫머리에 로베르 프루스트가 한 말이 특히나 공감되는 것은 얼마 전 토지를 두고도 병상이나 옥중에서 완독할 수 있는 작품으로 표현했던 한 티비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가지는 의미 또한 비슷하고, 완독에 실패했다는 결과도 같아 개인적으로 연관하여 떠올리곤 한다. 때문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한 편, 완독만이 독서의 형태는 아니라는 것 또한 동시에 생각한다. 완독하지 못한 책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는 것은 즐거움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니. 다만 각 부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읽는 이를 이끄는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해석과 감상을 고정시키는 한계도 보인다. 물론 모든 길 잃은 독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기 위한 선의는 분명히 드러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어렵다면 가을을 맞아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으로 대체하여 시작해본다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