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쿡은 잡스의 유산을 보전하며 '내 안의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붓고자' 노력하겠지만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실로 그는 지금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p.41) "

 

 상대적인 것일 수 있어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젊은 감성과는 동떨어진 편이다. 갤럭시말고는 핸드폰을 써본 적이 없고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언젠가 지인이 자신의 주요 고객층은 아이폰 유저였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한 경영인의 인터뷰를 본 내용을 얘기한 적 있었다. 아이폰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감성'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고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흐름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머 그럼 갤럭시 유저는 뭐 감성이 없나' 하고 한마디했지만, 확실히 아이폰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감성'이란 것이 있긴 있나보다. 젊음, 유행, 인싸같은 수식어를 단. 쨌든, 잡스의 죽음 이후 여전히 잘 나가지만 - 아이폰의 전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터라 '팀 쿡'에 대한 책이 궁금했다.

 

 다른 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물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이지만 잘 알려진 유명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애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잡스가 애플에 미치는 영향, 그 자체로 애플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존재감이 그의 죽음과 함께 팀 쿡에게로 승계되는 계승적 구도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잡스가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인물이 바로 그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애플을 이끌어가게 되었을 때, 그가 느꼈을 부담이 과연 어땠을까. 전에는 쉽게 새로 나온 제품의 디자인이나 반응에 기대 '애플은 전보다 못해졌어'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빈자리를 채워 운영할 결단을 내리고 지금껏 보여준 행보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잡스의 죽음 이후에 몰아닥친 상황이 이어질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팀 쿡의 어린시절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가 참가했던 몇몇 활동들은 비즈니스적 면모가 두각을 나타냈음을 보여주는 예시로 쓰였고, 앨라배마에서 겪었던 인종차별 사건들, 게이인 성 지향성 등은 그가 요즘 시대에 맞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주는 점으로 정리되었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초반 부분은 전형적인 전기물의 양식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심심하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자소서를 쓸 때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라'같은 상투적 표현이 지양되지만 막상 쓰려면 그런 표현들이 절로 나오는 실수를 여기서도 범한 것이다.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팀 쿡에 대해서는 6장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책에서는 잡스 이후 팀 쿡이 선보인 첫 프레젠테이션에서 느꼈을 대중의 실망감까지도 잡스가 보여줬던 흥미로운 애플 제품발표회의 전형을 깨버린 것으로 표현된다. 다만 읽다보면 애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팀 쿡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름없음이 보인다. IBM과의 파트너쉽이 가져온 영향, 애플워치의 등장 같은 기업 연혁이 팀 쿡과 불가분의 것이지만 그를 말하는 게 될 수 있을까. 10장에서 나오는 커밍아웃 부분에서 이런 갈증이 조금 해소되는 듯 싶다가 그가 가진 소수와 다양성에 대한 열린 태도가 여성인력고용 같은 카테고리와 엮이면서 기승전애플로 돌아간다.

 

 다만 컴퓨터 산업의 줄기를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팀 쿡의 여정이 보여주는 이 산업 흐름이 꽤 흥미로울 것이다. 문과라서 어떤 부분들은 좀 전문적인 내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이런 흐름이었구나 하고 읽어 지나간 부분도 있었다. 잘 모르더라도 IBM, 컴팩, IE,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델, 게이트웨이 같은 들어본 적 있는 이름들이 나와서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겠다 싶었다.

 

 팀 쿡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잡스의 이야기도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간혹 팀 쿡을 극대화하기 위해 잡스를 좀 쳐낸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p.146,171,182,187,244,391) 팀 쿡만의 장점을 드러내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잡스를 다룬 책에서는 반대되는 방식을 썼겠지 비교해보고 싶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을 가진게 있었나 한시간을 찾아봤다. 결국 못 찾았다.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안보이는지 아쉬웠다. 독서의 끝이 엉망이 된 책장 정리라는 과업을 남기고 말았다. 조잡함을 경멸했던 잡스와 과도한 재고를 증오했던 쿡의 체제를 따라 영원히 고통받는 갤럭시 유저는 책장 정리를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때부터였다. 서로 대립해도 좋았고, 얽히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이서백의 인생에서는 역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며 서로를 잊는 게 제일 좋으리라. (p.293) "

 

 로맨스소설 같은 류의 웹소설은 더이상 읽지 않으려 했었다. 때는 2천년대 초반. 다음카페라는 인터넷의 장이 열리고 그 안에서 웹소설 광풍을 일으킨 희대의 명작들이 등장하였다. 그 이름만 들어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각자 '이강순 내가 니 별이다' '다음에 태어나면 내 누나 하지마' '은성아'를 외치며 오열하게 만들었던 작가 '귀여니'의 작품을 비롯해서 여러 '인소'들을 읽으며 폐인이 되었던 흑역사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분서갱유를 치뤄낸 뒤로 그때는 인터넷 소설이었지만 지금은 웹소설이라 불리는 장르에 다시는 발들이지 않겠다고 다짐까지는 아니어도 생각은 했었던 것이다. '잠중록'을 무작정 같은 선상에 놓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뉘앙스를 풍기기만 해도 읽지 않고 넘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글자 뒤에 점하나씩 붙여놓기만해도 자판위의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험난했던 시절도 지나가고, 이제는 인소의 추억도 수치심을 즐기는 길티플레져의 한 종류로 받아들일만큼 성숙해진 뒤라 묻어둔 봉인을 깨고 '잠중록'을 읽기로 해본다. 웹소설이지만 괜.찮.다.구.요. 써보니까 아직 덜 괜찮은 것도 같다.

 

 '잠중록'이 중국 소설이라 처음엔 읽기 어색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조금 해봤다. 게다가 사극이라 당나라, 장안, *형 같은 지명, 호칭이나 시대 설정에 적응하기 어려우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읽다가 인소 읽기 전에는 무협 읽었던 전력을 떠올리며 나는 그럴 일이 없겠구나하고 걱정을 넣어두었다. 장르소설 취향을 꽁꽁 봉인해두었더니 내 전력이 어땠는지 진짜로 잊어버릴 뻔 했다.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황제의 딸'도 본방사수하면서 봤다.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진입장벽 걱정말고 소문난 잔치에 뭐 먹을 것 있나 빨리 찾아오는 것이 좋겠다. 뭐든 빨리 파는 사람이 떡밥도 많이 챙기는 법이다. 작정하고 여주인공이 남장 여자부터 시작하는 소설이니 '커피 프린스' 인생 드라마로 모셔두고 재방마다 채널 고정하는 분들도 오.시.라.구.요. 점찍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로맨스 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왜 나오는 것은 온통 살인사건 뿐인걸까. 여주 황재하가 영민하고 아주 예쁜 것은 아니나 눈이 맑아 시선을 사로잡는 미인인 것은 알겠고, 남주인 이서백이 비상한 기억력에 유능하고 옷도 잘 입는데다가 냉한 미남자인 것도 알겠는데 둘이 붙어서 티격태격 설레이는 것보다 고난만 가득한 여주 인생에 여기저기 살인사건만 묻어나는 것이 둘 중 하나는 김전일이고 하나는 코난인가보다 싶다. 다만 사건을 어찌 해결하는지는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추리방법이라, 읽으면서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기는 커녕 빨리 설명 안해주면 내가 범인이 되어버릴 것 같은 궁금증만 불러일으킨다. 시대적 배경 탓인지 의외로 동기나 자백은 현대의 그것보다는 슴슴하다. 추리 장르물 안 읽어본 사람도 이정도의 사건 묘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추리물로는 뤼패니앵 쪽이었던 과거도 떠올랐다.

 

 이건 뭐 장르물의 총집합 선물셋트가 아닌가. 이 중에 니 마음에 드는 코드 하나쯤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람이 진짜 돈 벌려고 작정을 한건지 책안에 시대물, 남장여자, 추리, 로맨스까지 죄다 들여놓았다. 대기업의 경계없는 사업 확장으로 소비자가 오예하는 상황이 '잠중록' 안에서도 펼쳐진다. 아이스크림도 31가지 중에 골라먹는 마당에 책 한 권 안에서 장르파는 사람들이 죄다 빠져 읽을만한 탄탄한 줄기를 가지고서, 본인 분야 골라먹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니. 안그래도 글자라면 전단지에 인쇄해놓은 오탈자도 챙겨읽는 활자 매니아들에게 환영받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웹소설 안보겠다 피해왔지만 확실히 재미있고 몰입도 높은 책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다소 고전적인 로맨스 부분의 기본 설정이 좀 아쉽지만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고전적인 설정만큼 치명적인 매력도 없으니까.  

 

 1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정작 황재하가 처한 상황을 풀 실마리의 끝에도 다가가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주인공들의 만남과 주변에 얽힌 문제부터 풀어나가면서 아직 제대로 된 내용이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로맨스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그저 가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생소한 감정을 조금씩 의식하는 단계일 뿐이다. 때문에 이서백에 비해 신분도 낮고 상황도 좋지 않은 황재하는 발로 채이고 돈도 없고 쫄쫄 굶어가며 열심히 굴려지고 있다. 둘 사이가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황재하를 홀대하는 이서백이 나중에 얼마나 바뀌게 될지 기대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자고로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후회도 좀 하고 나중에 되서야 쩔쩔매는 맛이 있어야 하니까. 지금은 다소 느려서 답답하다고 생각되지만 앞으로의 흐름이 기대된다.  

 

 또 하나 '잠중록'이 가진 매력은 황재하의 인물 설정이다.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고 능력까지 좋은 여자주인공이다. 돈이 없으면 돈이 없어서 못살겠다 할 말도 하고, 똑똑한 탓에 처세도 잘 해낸다. 남자주인공의 도움으로 요행히 곤경에서 구해지는 타입이 아니라 스스로 기어나오는 틈에 지옥에 빠진 남자주인공도 같이 건져올릴만한 능력있는 인물이라 마음에 들었다. 바보같이 엉뚱한 행동으로 읽는 사람을 대리 수치심에 빠지게 하는 일도 없다. 다만 황재하가 활약하는 동안 이서백의 비중이 적고, 때때로 소꿉친구인 우선을 애틋하게 떠올리는 일이 있어 남자주인공의 존재가 아직은 희미하다는 점이 신경쓰인다. 하지만 이 점도 남은 3권의 분량이 전개되면서 기대해볼만한 흐름일 것 같다. 거기에 한 권에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니 남은 이야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금 내손에 1권밖에 없다는 것. 자고로 먹을 때와 읽을 때는 흐름 끊기면 안된다는게 강같은 진리인 것을 책은 전 4권으로 되어 있는데 내 손안에는 1권밖에 없고, 3권과 4권은 물려 출.간.예.정.이니 두루미 초대해놓고 접시에 스프 깔아주는 것 같은 이 감질남은 거의 고문도구와 다름없다. 월화드라마 중독되면 주말도 빨리 지나가서 월요일 되길 바라는 성격의 사람들은 나머지 분량 출간 기다리다 눈에 핏발서고 혼자 앓다앓다 오히려 탈덕을 감행할지도 모르니 조심하길. 이럴 줄 모르고 그냥 읽은 나는 내 현생을 망치러 온 나의 웹소설, 절차밟아 고소들어갑니다. 나와 같은 성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경고하는데 하나씩 하나씩 사뒀다가 4권까지 나오면 한꺼번에 읽기를 추천한다. 스포일러 조심하시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림 온 - 두뇌 스트레칭 감성 일러스트북
상하이 탱고 지음 / 오브제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림온"은 이질적인 책이다. 우선 처음 책을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생각과는 달라서 '우와'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책에 기대해본 적 없는 독특한 촉감. 반사되지 않는 까만 표지에 숨겨진 의외의 촉감이 좋아서 몇번이나 만져보다 책을 가지고 외출하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괜히 표지가 상해 이 완벽한 촉감이 깨질까봐 걱정됐다. 거기에 상하이 탱고라는 저자의 이름, 두뇌 스트레칭 감성 일러스트북이라는 알 수 없는 수식도 '이 책 뭐지?'싶은 궁금증을 자극했다.

 

 책은 아무런 말없이 오직 그림으로 보여준다. 종이가 가득차도록 설명을 달아놓은 것도, 다채로운 색감도 없이 그저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분명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창 밖의 달밤을 바라보는 고양이가 만들어내는 단어나(15), 고래택시 (166), 사랑이 꿰어진 화살을 꼬치구이 굽듯이 잘 굽고 있는 천사의 모습(258)같은 소소한 웃음이 묻어나는 요란하지 않은 그림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로 초대되는 듯하다.

 

 그림에 대한 이런 재주도, 아이디어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번뜩이는 빛을 품은 재주도 없어 보는 동안 부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특히나 단순한 선으로 힘을 빼고 그려낸 듯한 장면이 어렵지 않게 정확한 메세지로 전달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내가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설명하려고 했을때 어떤 식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떠올리니 작가의 센스가 더욱 탁월하게 느껴졌다. 겉부터 속까지 재미있는 이 책을 한권쯤 소장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2010년부터 그린 1600여점의 그림 중에서 꿈과 관련된 작품을 추려 담아낸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위트를 담은 일러스트집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꿈의 세계를 재구성'해내어 독자에게 다가가는 책이라고 하니 웃으며 가볍게 넘겼던 책장을 다시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올리는, 혹은 실제로 경험한 꿈의 세계는 어떤가 생각해보고 비교해보니 저자가 갖고 있는 유연하고 다정한 세계가 더 인상깊게 다가왔다.

 

 어릴적부터 '꼬마 니콜라'를 읽으며 접했던 장자크 상페의 그림들을 좋아해서 전시도 다녀왔었던 적이 있는데, '드림온'을 보며 비슷한 호감을 느꼈다. 상페의 삽화에 매력을 느꼈거나, 이런 느낌의 작품들이 전달해주는 메세지를 좋아한다면 꼭 책을 찾아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둔감력이란 무엇일까. 일본 사람들은 **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듯 하다. 둔감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둔감함에도 근육처럼 단련해서 키울 수 있는 힘과 지수가 있으려나? 무엇보다 둔감력이란 것이 어떤 의미와 필요가 있을까 생소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못마땅한 말은 여자력이란 말이었다. 여성스러움이라고 해얄지 하는 표현인데, 여기서 평가되는 여성스러움의 항목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얼마나 갖추었나로 반영되는 개념인 것 같았다. 사람 구색 맞춰서 살기도 힘든 세상에 굳이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여자력 지수를 평가하다니. 둔감력이란 말도 사실은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평가항목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금 의심하며 읽었다. 둔감력을 신경써야 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둔감함을 의식하기 위해 더 신경이 예민해지는 역효과를 맞는것을 아닐까, 하고.

 

 저자는 줄곧 둔감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강조한다. " 보통 '둔감하다'는 말에는 좋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p.23 " 로 시작해서 " 이렇듯 둔감하다는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p.24 " 로 마무리되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둔감하다거나 예민하다는 말을 어느 한쪽의 의미로 사용한다기보단 자신의 성향을 표현하는데 보통으로 쓰는 말이라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보통 우리가 '난 좀 둔감한 편이라' 라고 말하거나 '난 예민한 부분이 있어' 라고 할 때는 그것들이 흠이라고 생각해서 밝힌다기 보다는 난 좀 그런 편/성향이야 라고 표현하는 정도이다. '둔감에 나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이렇게 좋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저자로 인해 둔감함이 부정적 의미를 공연히 받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는 표현이나 시선이 좀 불만스럽게 다가왔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니 이런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이 둔감한 편이기 때문에 나오는 반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둔감함이 왜 부정적으로 해석됐어야 하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여러 불안요소들을 깊게 생각하는 일이 왜 불필요한 것처럼 표현되지? 하고 의문을 가질뿐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책은 나같은 둔감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라 예민해서 자신의 예민함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을 상담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듯 하다. 둔감한 상대방 때문에 속이 타봤을 사람이나, 앞일을 걱정하고 변수를 고민하다 기회를 놓쳐버린 적 있는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는데, 카운슬러 활동을 한 저자의 이력을 떠올리며 이해해보려 생각하니 분명 이런 문제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만났고,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담은 책을 쓴 것이구나 싶어졌다. 예전에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가 살이 많이 빠졌길래 체중조절을 했나 싶었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고민되는 문제들을 결정하기 전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여서 살이 저절로 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자신도 너무 힘들어서 안그러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친구에게 위로와 걱정을 해주었지만 성향상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을 왜 밤새 걱정했을까 잘 이해가 안됐었다. 218에서 221쪽의 내용이 그때 그 친구의 상황과 매우 흡사했는데 아마 그에게 필요한 위로와 조언이 이 책에 담겨있나보다.  

 

 나에게 덜 집중하고, 타인에게 덜 둔감하기 위해서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편이라 책에서 조언하는 내용이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 남을 이해하는데에 더 도움이 된 내용이었다. 앞으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좀 더 이해하고, 공감이 담긴 위로와 조언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센서티브'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그 책을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둔감력 수업'을 읽으며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려운 책이 아니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라고 띠지를 둘러 알리고 싶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그 자체로 사람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미술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떤 것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압도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벽 앞에 놓여진 것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앞에서 이 책 안에서 만나게 될 내용도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렬하고 세련된 외양안에 대하기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었다.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인데 미술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이다. 알려는 주는데 독자를 향해 아는 척은 하지 않는 톤앤매너도 매력적이다.

 

 처음 대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 책의 판형이 우리가 머리속으로 책을 떠올렸을때 연상될 법한 표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을 끈다. 이 한권의 책 안에 미술가 30인의 삶과 작품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두께까지도 평범하다니. 30명이라니, 말이 30명이지 300쪽도 되지 않는 책안에 주목할만한 작품까지 실어서 그들을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책을 떠올리는 머리속은 도떼기 시장처럼 번잡하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커튼콜 뒤에서 호명되는 개성넘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간결하다. 이들을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려 애썼다는 티가 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깊게 들어가기엔 너무 깊고, 살짝만 파기엔 뭐가 뭔지 감도 안오는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명료한 정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안에 기본적이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는 인물과 만날 경우엔 이 책에서의 만남이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버스 운전 기사님들이 맞은편에 오는 같은 회사 차량에 짧은 손인사만을 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다른책으로의 환승이 필수다.

 

 아마 대학 교양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간다면 좋을듯한 느낌이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할일이 없다면 이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길. 중고교 미술교과서에서 주관식 문제 정답 정도로 출제 될만큼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서 재회한 낯익은 인물들은 다 대학 강의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 대표작 정도만 눈에 익히고 들어가도 '니들은 대체 000도 모르고 뭐하다 대학 들어왔냐'는 핀잔은 안듣게 될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만 단점은 합격 발표 들을 때 쯤 너무 할 것도 놀 것도 많아서 할일 없어서 이 책을 사 읽는 젊은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일까.

 

 30명이나 되는 미술가에 대해 훑어보려니 컨베이어 돌리는 것처럼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초심자를 위해 나온 접근하기 좋은 배리어 프리 한국 현대 미술사 책이니 감사하고 읽을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컨베이어는 너무하니 회전초밥집의 레일 보듯이 다음 작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으로 읽도록 하자. 신기하게도 더 오래된 시대의 인물들은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때때로 미술관을 찾아간다 했는데도 참 무심했다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 이제라도 눈도장을 찍어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다.

 

 추천하는 대상으로 예술 문외한의 대학생을 꼽았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다채로우려면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가 정도는 있어야겠다. 없는 것보다 본새나고 좋지 않은가. 백남준 작가도 싱거운 인생을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p.194)" 예술을 했단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나혜석을 좋아하면 조금 더 간단해질 일이다. 나혜석 한 사람만 관심을 두면 좋아하는 작가도 미술가도 한번에 생긴다.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상의 친구 구본웅을 좋아해도 괜찮을 일. 한시라도 젊을때 미리미리 교양서로 읽어둡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