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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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책이 아니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라고 띠지를 둘러 알리고 싶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그 자체로 사람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미술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떤 것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압도되어 감탄이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벽 앞에 놓여진 것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앞에서 이 책 안에서 만나게 될 내용도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렬하고 세련된 외양안에 대하기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쉽게 읽었다.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인데 미술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이다. 알려는 주는데 독자를 향해 아는 척은 하지 않는 톤앤매너도 매력적이다.

 

 처음 대하기 어려웠던 마음이 사라지니 이 책의 판형이 우리가 머리속으로 책을 떠올렸을때 연상될 법한 표준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을 끈다. 이 한권의 책 안에 미술가 30인의 삶과 작품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두께까지도 평범하다니. 30명이라니, 말이 30명이지 300쪽도 되지 않는 책안에 주목할만한 작품까지 실어서 그들을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책을 떠올리는 머리속은 도떼기 시장처럼 번잡하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커튼콜 뒤에서 호명되는 개성넘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순서를 기다리며 간결하다. 이들을 한권에 담아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려 애썼다는 티가 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책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깊게 들어가기엔 너무 깊고, 살짝만 파기엔 뭐가 뭔지 감도 안오는 미술사와 미술가에 대한 명료한 정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안에 기본적이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름이라도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는 인물과 만날 경우엔 이 책에서의 만남이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버스 운전 기사님들이 맞은편에 오는 같은 회사 차량에 짧은 손인사만을 표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다른책으로의 환승이 필수다.

 

 아마 대학 교양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어간다면 좋을듯한 느낌이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할일이 없다면 이 책을 사서 한번 읽어보길. 중고교 미술교과서에서 주관식 문제 정답 정도로 출제 될만큼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닌 경우에는 여기서 재회한 낯익은 인물들은 다 대학 강의에서 처음 그 이름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함께 실린 대표작 정도만 눈에 익히고 들어가도 '니들은 대체 000도 모르고 뭐하다 대학 들어왔냐'는 핀잔은 안듣게 될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만 단점은 합격 발표 들을 때 쯤 너무 할 것도 놀 것도 많아서 할일 없어서 이 책을 사 읽는 젊은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일까.

 

 30명이나 되는 미술가에 대해 훑어보려니 컨베이어 돌리는 것처럼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초심자를 위해 나온 접근하기 좋은 배리어 프리 한국 현대 미술사 책이니 감사하고 읽을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컨베이어는 너무하니 회전초밥집의 레일 보듯이 다음 작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으로 읽도록 하자. 신기하게도 더 오래된 시대의 인물들은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80년대 이후로 들어서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때때로 미술관을 찾아간다 했는데도 참 무심했다 싶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 이제라도 눈도장을 찍어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다.

 

 추천하는 대상으로 예술 문외한의 대학생을 꼽았지만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다채로우려면 좋아하는 작가와 미술가 정도는 있어야겠다. 없는 것보다 본새나고 좋지 않은가. 백남준 작가도 싱거운 인생을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p.194)" 예술을 했단다. 개인적 추천으로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나혜석을 좋아하면 조금 더 간단해질 일이다. 나혜석 한 사람만 관심을 두면 좋아하는 작가도 미술가도 한번에 생긴다. 아니면 작가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상의 친구 구본웅을 좋아해도 괜찮을 일. 한시라도 젊을때 미리미리 교양서로 읽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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