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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자기결정권 연습
정정엽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것(8)" 이 당황스러웠다. 그걸로 만족감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저자의 단언은 어쩐지 당연하고 조촐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자잘한 고민들이 저 당연한 것들로 해결될 수 있다고? 정색하여 굳어진 얼굴을 풀고 생각해보니 우선 끼니가 불규칙하다. 수면 패턴이 망가지는 바람에 지난 밤을 꼬박 새웠다. 덕분에 책을 한 권 읽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오늘 하루종일 밤샌자에게서 때로 풍겨나오는 광기를 내뿜으며 미뤄둔 일들을 뜻밖으로 해치웠다. 그리고 이제 막 좀 쉬어보려고 하는데, 문득 지난 밤에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 참이다. 무거운 머리와 뻐근한 눈, 굳은 어깨, 쓰린 속 같은 것들이 당연한 세가지를 다 무시한 자에게 찾아왔다. 피로와 카페인이 만나 쥐어짜낸 생명력이 갈수록 사위어감을 느낀다.
까다로운 독자이기 때문에, 라고 하고 어디 뭐 잡을 꼬투리없나 노리고 있는 스타일이라 초반에는 회전문처럼 책에 대한 평가가 몇번이나 오갔다. 누구나 할 법한 말을 포장해놓은 책은 아닐까 색안경을 옆에 준비해두고 봤는데,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차례로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를 상담하기 위해 찾아왔다(44)는 내용이 있는 부분에서 너무 소재거리인데? 싶었다. 책의 정말 초반이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식의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면 이 책이랑 내 마음의 거리는 이대로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들어간 문으로 돌아서서 막 나서는데, 눈에 띄는 내용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 바쁘게 지내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 여기서의 안도감은 그 어떤 성과보다 중요하다. 이 안도감을 얻으려면 전혀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 차순위로 중요한 문제로 도망쳐야 한다. 대부분은 일이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어쨌든 괜찮을거야'라고 생각한다. (47) "
상담자의 상황(아버지 병간호)과 더불어 특히 저 자기위안을 위한 도피적 행동을 인생의 위기가 올 때마다 잘 써먹었던터라 마음을 다시 잡고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보상'이 되기 때문에 바로 그 순간의 자신에게 깊숙이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좀 더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남들과 같은 평범에 속하기 위한 노력을 달리 시도할 것은 아니지만 버릇처럼 '독서'를 현재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자신을 위한 도피처로 쓰고 있는 것에 대해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아는 반성을 했다. 이쯤되니 어쩐지 신뢰도는 올라갔지만 마음이 씁쓸해졌다.
연이어 " 내 마음에 '타인을 재본다'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면 이처럼 해석되지 않을뿐더러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53)" 는 내용에서 누군가가 싫어질 때면 항상 떠올리는 생각 '누군가가 싫은 것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을 연상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주워듣고 이 말이 와닿는 면이 있어 남이 싫거나 험담하고 싶어지면 자제하려고 늘 떠올리는 말이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숨기고 싶은 욕망, 생각이 타인에게서 보일 때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는 생각인데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얘기하고 있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이어지는 감정에 대한 내용은 대체로 평이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은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내용이 주요한데, 화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이 머물렀다.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는 일이 흔하다. 사람들은 함께 공감해주고 공유자가 처한 상황이나 맞선 상대방에게 제대로 사이다같은 결말을 내기를 조언하고 응원해준다. 책에서 나온 상담자도 화를 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개인적 경험으로는 화냈던 일이 그때는 속시원해도 지나고보면 오히려 찜찜하게 남아있는 일이 더 많아 부정적 감정 표출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사랑받을 자격(164)"에 대한 것이다. 대체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는 아무런 의심없이 상대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에 비해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더 잘나고 완벽한 사람이 많은데 나의 무엇을 보고, 왜 하필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나 자신에게만 가진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상대방의 완벽함을 보고 좋아한 적은 없으면서, 반대로 나는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호감의 대상이 된 사실을 어색하게 느낀 것이다.
자신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이런 생각이 정서적 안정감을 잃어버린 탓에 생겨난게 맞는가 궁금해졌다. 정말 책에서 말하는대로 타인과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한 경험이 적었던가, 근데 다들 저런 생각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다만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야 한다(168)고 조언한 부분이 맨 처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정말 정서적 안정감이 잘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할말이 없겠다 싶었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쉽시다.
마지막으로는 관계에 대한 내용도 괜찮게 읽었는데, 프로 단절러의 삶을 살아온 탓에 이제는 관계를 끊지 않고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라 잘 끊는 법에 대해서는 더는 참고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끊지 않아도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아서 끊겨나가는 것이라는 걸 한참 끊고 다닐 때는 몰랐다. 앞으로 생각이 또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생각에는 끊기보다 맺고 이어나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성숙한 인간관계 모델인 것 같으니, 미니멀라이프라든지 나 자신에게 집중 같은 모토를 가지고 싹 다 끊고 정리해버리는 일은 하지 않길 추천한다. 결국엔 미니멀해지고, 코로나시대의 생활상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환경도 만들어줄 것이다.
아직 마음과 금전의 벽을 다 내려놓지는 못한 탓에 언젠가 여유가 되면 심리정신에 대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만 좀 해봤다.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좋을까 나쁠까 궁금해졌다. 예상보다 생각할 것이 많게 읽었다. 불신의 깍지를 끼우고 시작했음에도 재밌게 읽었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럽다거나 남는 시간이 많아 생각도 많아졌다면 기회를 빌어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