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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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솔직히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책이니 속시원한 까발림?같은 것도 있고, 그 당당함만큼의 벌이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월달 수입 42만원, 2월달 수입 감사하게도 96만원의 선명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이 먼저 텁텁해졌다. 하필 또 오늘, 그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구장창 사마시다가 이때에만 우유와 당분이 들어간 따뜻한 커피를 시켰을 줄이야. 벌컥 시원하게 들이켤 것도 없이 목이 마르고 입이 텁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오죽했으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야 했을까. 인생이 뭐 그렇게 시원시원했으면 이런 글도 없었겠지, 뒤늦은 자각이 온다.

 

 보여지는 삶은 멋졌다. 책안쪽 날개에 실린 압도적인 분위기의 사진도 그렇고, 시상식에 참석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 재능도 많은지 이것저것 하는 일도 다양하다. 작가는 이런 자신을 두고 남들은 하는 일이 많아서 돈을 잘 벌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저것을 하는 것 자체가 슬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능과 용기가 그 안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쑥 들이밀어진 숫자 얘기에는 부럽다는 말도 갈 길을 잃는다. 저 특별함과 돈의 문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반비례하는 것이라면 그 용기도 재능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더뎠다. 사실 나에게도 작가 지인이 있다. 이랑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때로 흘려두는 팍팍함을 주워놓았다 만나서 밥이라도 한끼하고, 차라도 한 잔 할때 조금이나마 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작고 별 것 아니었어서 씁쓸했다. 그도 나에게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 있었겠지 싶고, 어차피 서로 없는 처지에 때로 만나 밥 한 술 같이 하는 것으로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싶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며칠을 머물고, 지방 이곳저곳을 돌고, 서울 어디를 찾아 강연을 하던 그의 바쁨이 책 안에 옮겨놓은듯 그대로 담겨있었다.

 

 읽으면서 전부 다 마음을 씁쓸하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틈마다 비집고 들어선 짧은 만화들은 별 내용이 아닌데도 재밌다. 파란색 입술을 한 사진을 떠올렸을때, 소담하고 아기자기한듯한 만화의 분위기랑 잘 연관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내용이고 짧고 단순한 그림인데도 마음이 간다. 사실 잘 모르던 작가였는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질만큼 괜찮았다. 책의 글들도 매우 솔직하고 인간적이라 예술을 하는 나랑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분명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맞는데, 큰 흐름에서는 공감되는 생활이 묻어나는 점이 좋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요즘 많이 보이는 힐링에세이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이 끼워져있어서 저자의 여러 면모를 조금씩 엿보는 것 같다. 2부의 첫 내용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4부의 어떤 내용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아플일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이렇게 전해듣는 이야기도 그냥 넘기기 어려워진다.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 잘 여미고 살아야지 싶은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20대 후반, 30대를 넘긴 여성이라면 공감할만한 여운이 아닐까 싶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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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권민창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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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제목이 참 괜찮다. 얼마 전에 가수 비가 "무조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나? 치열한 시대에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지" 라고 한 말이 인상깊게 남았다. 생각해보면 참 흔한 말인데, 이 말을 한동안 조리돌림에 가까운 밈으로 다뤄졌던 비가 했다는 것이 큰 가산점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해서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을 가지고 시무20조나, 엄복동같은 단위를 만들어내며 비난하고, 우스갯거리로 소모하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이겨내어 성공하기까지의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비의 태도와 저자 권민창의 에세이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의 제목이 주는 메세지는 요즘 세상을 살아내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가 떠올랐다. 침체된 출판시장에서 역주행 신화를 쓰며 1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일상에서 겪고 들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 전하는 형식의 에세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은만큼 권민창의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역시 비슷한 울림을 전하는 책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거나, 이런 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이 책도 마음에 들 것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꼭지를 몇 개 소개하자면, '사소한 표현의 차이가 만드는 변화(58)'에서 소개한 "토니 로빈스의 변형어휘(60)"라는 개념이었다. 요즘은 혐오표현이 너무 빈번하고 적나라하게 쓰인다. 사소한 불만이나 차이에도 극혐이란 말이나 벌레를 뜻하는 말을 붙여 쓴다. 말이 공격적이고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일에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면 생각과 행동도 똑같이 과격해져갈 것이란 우려를 평소에도 했던 탓에, 이 내용에서 소개된 글과 '변형어휘'에 대한 개념을 읽으며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새롭게 보이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처음엔 유행어라서, 혹은 재밌어서 사용하게 되지만 이내 어휘를 빈곤하게 만들고 감정을 과잉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조심하고 순화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나 '나이브스 아웃', '사랑과 영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등을 잘 녹아내려 쓴 글이나, '여덟 단어', '모든 것이 되는 법', '미움받을 용기', '열두 발자국' 같은 책들을 함께 소개한 글을 보면 여름이 지나는 길고 무더운 시간동안 이 책과 영화들도 하나씩 함께 감상하고 싶어진다. 책 속의 책/과 영화 챌린지처럼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요즘처럼 부정이 만연하고 쿨함이 강조되는 때에, 긍정과 배려를 강조하는 내용의 글을 읽다보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잠들기 전 꺼내 먹는 예쁜 말 처방전"이란 수식이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더위와 장마에 지친 몸과 마음을 책으로 위로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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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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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지사지라는 말을 이렇게 알뜰하게 활용할수가 있을까.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입장이 되어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실제로 체험을 해 본 저자의 입에서 쉴 새 없는 간증이 튀어나온다. 어떤 내용은 공감도 되고, 어떤 내용은 이거 좀 과장된거 아닌가 싶게 절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지 하루의 몇시간 뿐인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교육과정이 달라서 몰랐는데 요즘 애들은 '현장체험학습'이라는걸 한다고 해서 그게 뭔가 싶었는데, 체험이란게 생각보다 큰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구나 깨달았다. 라떼는 그런 거 없이 암기 위주로 공부해서 잘 몰랐지 뭐야.

 

 체헐리즘이라는 말이 생소했는데 막상 그가 체험한 것들은 일상적이었다. 브래지어를 체험해본다는 가장 첫 체험부터, 육아, 노인, 동물구호, 취업준비생, 환경미화원, 집배원, 소방관, 심지어 땡땡이치기, 아무것도 안해보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기 같은 것들도 그의 체험 목록에 있다. 언뜻 하루 체험해본다는 일이 어른판 키자니아 같은 것 아닌가 싶은데 확실히 '어른판'이라 군데군데 맵고 씁쓸한 것들이 심어져있다. 아닌가, 대부분 험난하고 아주 잠깐 숨돌릴 틈이 끼워져있던가? 타인의 삶에서 단 하루를 체험해본다는 것이 다름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꽤 꼼꼼하게 그 하루를 채워넣은 것을 보고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며 읽었다.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체험은 80세 노인의 하루(39)였다. 얼굴 뿐 아니라 몸에도 체험 기구를 달고 하루동안 거리를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저녁에 팔에 생채기가 잔뜩 남은 사진이 담겨있었다. 실제라면 없었을 생채기지만 노년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보여주는 자국같았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늙어 노인이 된다는 것은 내 앞에도 반드시 남겨진 '체험'이 될 것이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분장을 하고 폐지를 줍는 일도 함께 체험했다면 아마 저자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체험만이 구전으로 전해져 ,라는 비극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체험이 고되게 보이는데, 또 버젓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좀 무거운 내용이 될 수도 있는 체험들이지만 확실히 저자가 글을 잘 쓰기도 하고, 곳곳에 웃음코드를 흘려놓아서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다. 육아체험에서 어머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애를 낳지 않겠다고 하시자 '그럼 저는요....'하고(23) 묻거나 취업준비생체험에서 서류가 떨어지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85) 50번 거절당하기(232)는 거절의 목록을 살펴보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저자 개인의 욕망을 체험이라는 핑계를 삼아 마음껏 질러본듯한 느낌이 물씬난다. 그리고 반려견 똘이에게 뽀뽀하기까지 처참히 거절당한다. 아주 솔직해서 재밌고, 매력있는 글이었다. 얼마만큼의 솔직함으로 완성되었는지 궁금할만큼.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어떤 체험을 해보고 싶을까 진지하게 골라봤는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248)나 강아지와 하루를 보내기(275)가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가능하다면 노인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도움이 될 것도 같고, 갈수록 심화되는 세대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더 세심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업적으로는 책에는 없지만 빵공장, 꼭 빵공장 최소 과자공장에서의 하루나 오토바이 배달원의 하루를 체험해보고 싶다. 공장은 힘들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사심이 좀 들어갔고 오토바이 배달은 안전한 속도로 신호지켜서 배달하면 돈도 안되고 배달도 밀리고 고객들도 안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어떤지 궁금해서 해보고 싶다.

 

 책 출간 기념으로 저자가 진행한 유튜브 남형도 기자의 퇴근길 라이브를 봤는데, 생각보다 날씬해서 배신감이 들었다. 그냥 체격이 건장한 것일 뿐 뚱이가 아니었다. 말씀도 잘하셔서 책뿐만 아니라 유튜브도 재밌었다. 성도 남씨라 뭐라도 남길 수 있도록 남기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온몸을 바쳐 전하는 체헐리즘의 정수, 같은 책이니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재미와 감동, 우리사회 톺아보기까지 알차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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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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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에세이다.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적당한 공감, 적당한 위로, 적당한 유머를 만날 수 있다. 읽기에 무난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실망스러운 내용이기도 하다. 읽기에는 편하고 소소하게 재미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도 없고 당장 서점의 에세이 코너에 가면 각종 캐릭터들을 앞세워 나온 시리즈물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범람하는 힐링 에세이들을 헤쳐나가다 문득 몇권이나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피로했던 몸과 마음이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싶다. 늘 그렇듯 자신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말이 그 안에 써있는데.

 

 요즘은 책들도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는 뜻일까, 어찌됐든 그 판에 박힌 내용들이 계속해서 누군가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SNS의 보여지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거나, 어른들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자세, 남에게서 오는 자존감의 한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인간관계 끊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 같은 내용, 간단히 줄여서 써봤지만 아마 익숙한 주제들일거다. 여기에 짧게 나누어진 각 장의 마지막마다 인터넷에서 봤을 법한 유행어 같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장난스럽고 센스있는 마무리를 더했다.

 

 어찌되었든 제목만큼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마음에 들었었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도 제목에 있었다. 남에게 민폐끼치지 않는 진상이 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신경썼던 것들에 좀 지쳐있었다. 얼마 전 개인적인 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큰 마음을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뭘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하는 대답을 해줬다. 조언을 해주면서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생각해보니,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행동을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내 마음같지는 않을테니 가능하면 조심하고 싶어서 작은 일도 이리저리 고민을 키워서 했었다.

 

 혈기왕성하던 시기가 지나고 생각해보니 십년 전 쯤의 나와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다. 책에서는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라고 했지만, 나라는 사람의 근본자체가 확 변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떤 생각이나 행동들은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설정값이 달라지긴 한다. 사람의 마음을 잃는 일이 너무 한순간이고 얻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을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이 컸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산다는게 말은 참 좋은데 정말 쉽지 않다. '조금만 더'라고 생각하는 욕심에서 '무리'를 하게 되는데 이걸 내려놓는 일이 어렵다. '조금만 더'가 항상 '무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뭐를 '조금만 더' 노력할 것인지, 내려놓을 것인지 어렵지만 구분해가는 중이다.

 

 읽다가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친구 자취방(89)에 대한 내용이었다. 화장실에서 물때를 보고 놀랐다는 어찌보면 별 것 아닌 내용인데 내 눈에는 다른 사람의 집에 있는 흠을 주변에 전달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학교다닐 때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던 경험 때문인데, 친구집에 놀러갔다 와서 뭘 하고 놀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살림살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애가 있었다. 집이 이렇더라, 우리집은 이렇게 하는데 걔네집은 저렇더라, 잘사는 것 같다 못사는 것 같다 등의 내용을 마치 재밌는 이야기꺼리처럼 말하는 걸 보고 놀라 그 뒤로 사람을 집에 잘 초대하지 않게 됐었다. 책에서는 엄마가 항상 집안을 잘 관리해주시는 덕분에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내용으로 흘러갔지만, 어쩐지 마음이 찜찜했다. 

 

 소소하게 짬이 날 때마다 머리를 식히는 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어딘지 익숙한 내용과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봤다. 차라리 흔한 위로와 유머를 버리고 공감에서부터 시작하는 좀 더 내밀하고 진솔한 글을 썼다면 좋았을 것 같다. 상황은 다 공감이 되는데 그게 뻔하게 흘러가서 '괜찮아요'라는 위로로 정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생각해보니 읽었던 에세이들 중 마음에 들었던 책의 공통점은 남들 다 하는 위로와 조언을 늘어놓은 내용이 아니라 솔직한 내용으로 인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에 있었다. 다음에 나올 저자의 책은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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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읽고 쓰고 만나는 책방지기의 문장일기
구선아 지음, 임진아 그림 / 해의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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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밝은 느낌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느낌이 달랐다. 짧은 꼭지를 여러 개 늘어놓은 형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시작인 '어중간한 재능'의 내용부터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읽기 바로 전에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창비에서 나온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라는 만화를 한 권 읽었기 때문에 고양된 감성과 맞물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첫 내용이 더 깊이있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들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하고 살지'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일부의 재능있는 사람들이나,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사람들을 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이 아주 빼어나거나 탁월하지 못함을 이유로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쓰는 것이 그랬다. 대단하게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좋아하는 정도의 마음과 그래서 조금 더 쓰고, 가끔은 조금 더 잘 쓰는 일들이 생기는 것으로는 글써서 밥먹고 살기는 힘들다.를 넘어서 불가능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럴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 것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에 생각이 옮겨가게 되면서는 안되겠구나 깨달은지 오래다. 이처럼 재능이랄 것도 없는 좋아함을 가진 사람도 그러한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언젠가 기회가 올 것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갈 수도 접을 수도 없는 마음은 또 어떠할까. 어쩐지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때로는 대충 살아도 된다고 해줄만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는 읽으면서 계속 이런 기분일까 좀 걱정됐었다.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벌어 두었거나 정력이 좋아서, 진짜 용기가 충만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 그때 해 볼걸......"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이게 아니었네" 혹은 실패했어도 "그래도 재밌었지"라고 돌아보거나 "운이 없었어"라고 핑계를 대 보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멋지게 해낼 수도 있으니까. (38) "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물론 나도 회사를 그만 둔 경험이 몇 번 있지만, 대부분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기 보다는 '아, 더럽다 더럽다 이제는 진짜 더럽고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그 다음엔 전보다는 낫겠지 싶은 곳으로 들어가 또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충고하는 쪽의 마음과 더 가까웠다. 특히나 나도 모르게 '요즘같은 세상에'라는 말이 입에 붙은 것마냥 나왔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정말 좋을까. '그래도 재밌었지' 같은 말이 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그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궁금한 것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길래 책방을 할 수 있을까,이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역시 구매는 인터넷, 그도 아니면 대형서점, 심지어 중고책 마저도 대형서점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들리는데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좋아하는 일'로서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문득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을 물어보는 일을 그만해야 되겠다 싶어진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 직업 진로 탐색을 해야지, 항상 물어보는 것은 꿈뿐이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현실과 꿈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쓸데없이 상처를 받는다. 어렸을 때 꿈이라고 꿀 수 있는 직업들은 몇몇의 인기 직종이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한정적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커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직업을 만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읽다가 새삼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기다리는 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75)'의 내용이었다. 책방에 와 줄 것이라 믿었던 지인들이 오지 않은 일을 두고 "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마음이 없다(76) " 며 씁쓸함을 남겨둔 글이다. 지인이 개업한 가게를 인사,응원차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직장인으로만 살아봐서 그런지 내가 일하는 장소에 지인들이 찾아오는 일은 고맙지만 썩 편한 상황만은 아니어서 잘 몰랐던 생각이었다. 친구가 연 술집을 일년만에 가까스로 찾아갔던 적이 있어 그 애가 " 척 하지만 진짜 마음을 내어주기는 힘들다(76) "고 생각했을까봐 심란했다. 자신의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 궁금해졌다. " 저도 책방이나 하면서 글이나 쓸까 봐요.(69)" 나 " 손님이 왔는데 책 설명 안 해 주시나요?(53) " 같은 말들을 헤치며 나아가다보면, 이런 손님들은 잘만 찾아오는데 위로가 되줄 친구가 안왔다면 마음이 퍽퍽해질수도 있으리라.

 

 재밌는 건 '시도와 실패(102)'라는 핵심어를 두고 확률 0%의 일을 50%로 올리기 위해 박보검과 사귈 확률에 관한 유명인의 말을 옮겨온 것이다. 멋진 태도이긴 한데, 본능적이라 할 만큼 박보검은 무슨 죄로 나의 성공 확률을 올려주기 위해 고백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어찌되었든 확률은 처음부터 끝까지 0% 아니었던가 싶었다. 무슨 값을 넣든 0만 나오는 자판기에 백번 천번 시도한다고 해서 1이 나올 일은 없는 것 아닌가.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로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 아마 사람 상대하는 일을 오랜 기간 해왔기 때문에 특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되면 되게하라'나 '일단 부딪혀보라' 같은 열정적 시도가 멀쩡한 메뉴얼 대로 일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말려죽이는 행동지침이 됩니다. 본인 인생의 도전은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타인과 엮이는 일에서는 받아들이고 수긍할 줄도 압시다.

 

 현실과 가깝다가도 현실과 멀기도 한 것 같고, 읽는동안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이 책을 좋아해야할까 나랑 안 맞는다고 결론 지어야할까 가늠해보다, 나와 다른 사람이니 내 마음에 차는 글만 이어질 수는 없겠지하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어떤 내용들은 또 공감도 되고 그랬다. 보통 책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완벽하게 정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대충 정해본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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