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에세이다.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적당한 공감, 적당한 위로, 적당한 유머를 만날 수 있다. 읽기에 무난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실망스러운 내용이기도 하다. 읽기에는 편하고 소소하게 재미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도 없고 당장 서점의 에세이 코너에 가면 각종 캐릭터들을 앞세워 나온 시리즈물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범람하는 힐링 에세이들을 헤쳐나가다 문득 몇권이나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피로했던 몸과 마음이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싶다. 늘 그렇듯 자신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말이 그 안에 써있는데.

 

 요즘은 책들도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는 뜻일까, 어찌됐든 그 판에 박힌 내용들이 계속해서 누군가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SNS의 보여지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거나, 어른들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자세, 남에게서 오는 자존감의 한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인간관계 끊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 같은 내용, 간단히 줄여서 써봤지만 아마 익숙한 주제들일거다. 여기에 짧게 나누어진 각 장의 마지막마다 인터넷에서 봤을 법한 유행어 같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장난스럽고 센스있는 마무리를 더했다.

 

 어찌되었든 제목만큼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마음에 들었었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도 제목에 있었다. 남에게 민폐끼치지 않는 진상이 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신경썼던 것들에 좀 지쳐있었다. 얼마 전 개인적인 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큰 마음을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뭘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하는 대답을 해줬다. 조언을 해주면서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생각해보니,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행동을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내 마음같지는 않을테니 가능하면 조심하고 싶어서 작은 일도 이리저리 고민을 키워서 했었다.

 

 혈기왕성하던 시기가 지나고 생각해보니 십년 전 쯤의 나와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다. 책에서는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라고 했지만, 나라는 사람의 근본자체가 확 변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떤 생각이나 행동들은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설정값이 달라지긴 한다. 사람의 마음을 잃는 일이 너무 한순간이고 얻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을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이 컸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산다는게 말은 참 좋은데 정말 쉽지 않다. '조금만 더'라고 생각하는 욕심에서 '무리'를 하게 되는데 이걸 내려놓는 일이 어렵다. '조금만 더'가 항상 '무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뭐를 '조금만 더' 노력할 것인지, 내려놓을 것인지 어렵지만 구분해가는 중이다.

 

 읽다가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 친구 자취방(89)에 대한 내용이었다. 화장실에서 물때를 보고 놀랐다는 어찌보면 별 것 아닌 내용인데 내 눈에는 다른 사람의 집에 있는 흠을 주변에 전달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학교다닐 때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던 경험 때문인데, 친구집에 놀러갔다 와서 뭘 하고 놀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살림살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애가 있었다. 집이 이렇더라, 우리집은 이렇게 하는데 걔네집은 저렇더라, 잘사는 것 같다 못사는 것 같다 등의 내용을 마치 재밌는 이야기꺼리처럼 말하는 걸 보고 놀라 그 뒤로 사람을 집에 잘 초대하지 않게 됐었다. 책에서는 엄마가 항상 집안을 잘 관리해주시는 덕분에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내용으로 흘러갔지만, 어쩐지 마음이 찜찜했다. 

 

 소소하게 짬이 날 때마다 머리를 식히는 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어딘지 익숙한 내용과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봤다. 차라리 흔한 위로와 유머를 버리고 공감에서부터 시작하는 좀 더 내밀하고 진솔한 글을 썼다면 좋았을 것 같다. 상황은 다 공감이 되는데 그게 뻔하게 흘러가서 '괜찮아요'라는 위로로 정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생각해보니 읽었던 에세이들 중 마음에 들었던 책의 공통점은 남들 다 하는 위로와 조언을 늘어놓은 내용이 아니라 솔직한 내용으로 인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에 있었다. 다음에 나올 저자의 책은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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