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 읽고 쓰고 만나는 책방지기의 문장일기
구선아 지음, 임진아 그림 / 해의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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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밝은 느낌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느낌이 달랐다. 짧은 꼭지를 여러 개 늘어놓은 형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시작인 '어중간한 재능'의 내용부터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읽기 바로 전에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창비에서 나온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라는 만화를 한 권 읽었기 때문에 고양된 감성과 맞물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첫 내용이 더 깊이있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들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하고 살지'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일부의 재능있는 사람들이나,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사람들을 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이 아주 빼어나거나 탁월하지 못함을 이유로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쓰는 것이 그랬다. 대단하게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좋아하는 정도의 마음과 그래서 조금 더 쓰고, 가끔은 조금 더 잘 쓰는 일들이 생기는 것으로는 글써서 밥먹고 살기는 힘들다.를 넘어서 불가능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럴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 것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에 생각이 옮겨가게 되면서는 안되겠구나 깨달은지 오래다. 이처럼 재능이랄 것도 없는 좋아함을 가진 사람도 그러한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언젠가 기회가 올 것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갈 수도 접을 수도 없는 마음은 또 어떠할까. 어쩐지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때로는 대충 살아도 된다고 해줄만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는 읽으면서 계속 이런 기분일까 좀 걱정됐었다.

 

 "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벌어 두었거나 정력이 좋아서, 진짜 용기가 충만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 그때 해 볼걸......"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서 "이게 아니었네" 혹은 실패했어도 "그래도 재밌었지"라고 돌아보거나 "운이 없었어"라고 핑계를 대 보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멋지게 해낼 수도 있으니까. (38) "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물론 나도 회사를 그만 둔 경험이 몇 번 있지만, 대부분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기 보다는 '아, 더럽다 더럽다 이제는 진짜 더럽고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그 다음엔 전보다는 낫겠지 싶은 곳으로 들어가 또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충고하는 쪽의 마음과 더 가까웠다. 특히나 나도 모르게 '요즘같은 세상에'라는 말이 입에 붙은 것마냥 나왔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사는 것이 정말 좋을까. '그래도 재밌었지' 같은 말이 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그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궁금한 것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길래 책방을 할 수 있을까,이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역시 구매는 인터넷, 그도 아니면 대형서점, 심지어 중고책 마저도 대형서점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들리는데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좋아하는 일'로서의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문득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을 물어보는 일을 그만해야 되겠다 싶어진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 직업 진로 탐색을 해야지, 항상 물어보는 것은 꿈뿐이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현실과 꿈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쓸데없이 상처를 받는다. 어렸을 때 꿈이라고 꿀 수 있는 직업들은 몇몇의 인기 직종이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한정적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커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직업을 만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읽다가 새삼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기다리는 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75)'의 내용이었다. 책방에 와 줄 것이라 믿었던 지인들이 오지 않은 일을 두고 "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마음이 없다(76) " 며 씁쓸함을 남겨둔 글이다. 지인이 개업한 가게를 인사,응원차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직장인으로만 살아봐서 그런지 내가 일하는 장소에 지인들이 찾아오는 일은 고맙지만 썩 편한 상황만은 아니어서 잘 몰랐던 생각이었다. 친구가 연 술집을 일년만에 가까스로 찾아갔던 적이 있어 그 애가 " 척 하지만 진짜 마음을 내어주기는 힘들다(76) "고 생각했을까봐 심란했다. 자신의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 궁금해졌다. " 저도 책방이나 하면서 글이나 쓸까 봐요.(69)" 나 " 손님이 왔는데 책 설명 안 해 주시나요?(53) " 같은 말들을 헤치며 나아가다보면, 이런 손님들은 잘만 찾아오는데 위로가 되줄 친구가 안왔다면 마음이 퍽퍽해질수도 있으리라.

 

 재밌는 건 '시도와 실패(102)'라는 핵심어를 두고 확률 0%의 일을 50%로 올리기 위해 박보검과 사귈 확률에 관한 유명인의 말을 옮겨온 것이다. 멋진 태도이긴 한데, 본능적이라 할 만큼 박보검은 무슨 죄로 나의 성공 확률을 올려주기 위해 고백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어찌되었든 확률은 처음부터 끝까지 0% 아니었던가 싶었다. 무슨 값을 넣든 0만 나오는 자판기에 백번 천번 시도한다고 해서 1이 나올 일은 없는 것 아닌가. 안되는 일은 안되는 일로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 아마 사람 상대하는 일을 오랜 기간 해왔기 때문에 특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되면 되게하라'나 '일단 부딪혀보라' 같은 열정적 시도가 멀쩡한 메뉴얼 대로 일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말려죽이는 행동지침이 됩니다. 본인 인생의 도전은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타인과 엮이는 일에서는 받아들이고 수긍할 줄도 압시다.

 

 현실과 가깝다가도 현실과 멀기도 한 것 같고, 읽는동안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이 책을 좋아해야할까 나랑 안 맞는다고 결론 지어야할까 가늠해보다, 나와 다른 사람이니 내 마음에 차는 글만 이어질 수는 없겠지하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어떤 내용들은 또 공감도 되고 그랬다. 보통 책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완벽하게 정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대충 정해본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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