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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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지사지라는 말을 이렇게 알뜰하게 활용할수가 있을까.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입장이 되어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실제로 체험을 해 본 저자의 입에서 쉴 새 없는 간증이 튀어나온다. 어떤 내용은 공감도 되고, 어떤 내용은 이거 좀 과장된거 아닌가 싶게 절절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지 하루의 몇시간 뿐인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교육과정이 달라서 몰랐는데 요즘 애들은 '현장체험학습'이라는걸 한다고 해서 그게 뭔가 싶었는데, 체험이란게 생각보다 큰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구나 깨달았다. 라떼는 그런 거 없이 암기 위주로 공부해서 잘 몰랐지 뭐야.

 

 체헐리즘이라는 말이 생소했는데 막상 그가 체험한 것들은 일상적이었다. 브래지어를 체험해본다는 가장 첫 체험부터, 육아, 노인, 동물구호, 취업준비생, 환경미화원, 집배원, 소방관, 심지어 땡땡이치기, 아무것도 안해보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기 같은 것들도 그의 체험 목록에 있다. 언뜻 하루 체험해본다는 일이 어른판 키자니아 같은 것 아닌가 싶은데 확실히 '어른판'이라 군데군데 맵고 씁쓸한 것들이 심어져있다. 아닌가, 대부분 험난하고 아주 잠깐 숨돌릴 틈이 끼워져있던가? 타인의 삶에서 단 하루를 체험해본다는 것이 다름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꽤 꼼꼼하게 그 하루를 채워넣은 것을 보고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며 읽었다.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체험은 80세 노인의 하루(39)였다. 얼굴 뿐 아니라 몸에도 체험 기구를 달고 하루동안 거리를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저녁에 팔에 생채기가 잔뜩 남은 사진이 담겨있었다. 실제라면 없었을 생채기지만 노년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보여주는 자국같았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늙어 노인이 된다는 것은 내 앞에도 반드시 남겨진 '체험'이 될 것이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 분장을 하고 폐지를 줍는 일도 함께 체험했다면 아마 저자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체험만이 구전으로 전해져 ,라는 비극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체험이 고되게 보이는데, 또 버젓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좀 무거운 내용이 될 수도 있는 체험들이지만 확실히 저자가 글을 잘 쓰기도 하고, 곳곳에 웃음코드를 흘려놓아서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다. 육아체험에서 어머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애를 낳지 않겠다고 하시자 '그럼 저는요....'하고(23) 묻거나 취업준비생체험에서 서류가 떨어지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85) 50번 거절당하기(232)는 거절의 목록을 살펴보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저자 개인의 욕망을 체험이라는 핑계를 삼아 마음껏 질러본듯한 느낌이 물씬난다. 그리고 반려견 똘이에게 뽀뽀하기까지 처참히 거절당한다. 아주 솔직해서 재밌고, 매력있는 글이었다. 얼마만큼의 솔직함으로 완성되었는지 궁금할만큼.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어떤 체험을 해보고 싶을까 진지하게 골라봤는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248)나 강아지와 하루를 보내기(275)가 좋아보였다. 하지만 그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가능하다면 노인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도움이 될 것도 같고, 갈수록 심화되는 세대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더 세심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업적으로는 책에는 없지만 빵공장, 꼭 빵공장 최소 과자공장에서의 하루나 오토바이 배달원의 하루를 체험해보고 싶다. 공장은 힘들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사심이 좀 들어갔고 오토바이 배달은 안전한 속도로 신호지켜서 배달하면 돈도 안되고 배달도 밀리고 고객들도 안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어떤지 궁금해서 해보고 싶다.

 

 책 출간 기념으로 저자가 진행한 유튜브 남형도 기자의 퇴근길 라이브를 봤는데, 생각보다 날씬해서 배신감이 들었다. 그냥 체격이 건장한 것일 뿐 뚱이가 아니었다. 말씀도 잘하셔서 책뿐만 아니라 유튜브도 재밌었다. 성도 남씨라 뭐라도 남길 수 있도록 남기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온몸을 바쳐 전하는 체헐리즘의 정수, 같은 책이니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재미와 감동, 우리사회 톺아보기까지 알차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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