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수수바의 가을바람 불어라 나의 수수바 3
조미자 지음 / 핑거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노란 코트를 입어야지.

은행잎이 하늘 가득 떨어지는 날에는

내가 제일 커다란 은행잎이야. "


 가을에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라 '수수바의 가을바람 불어라'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전에는 자주 동화책을 읽곤 했는데 요즘은 때때로 시간을 내어 청소년 도서를 몇 권 찾아보는 정도로 관심의 폭이 줄어든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더이상 아이도 청소년도 아니면서 왜 굳이 다른 연령을 대상으로 한 책을 읽으려고 하냐면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감동과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좀 더 간결하고 쉬운 말로 되어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온전히 읽어내면서 새로운 자극을 갖게 되는 점도 좋다. 그래서 가을을 맞은 수수바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수수바의 가을바람 불어라'의 그림은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다. 내 어린시절에 봤던 동화책 그림같았다.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3D로 만들어져서 특유의 배경과 따로 노는 느낌, 입체감이 들어 2D 만화 세대인 나에겐 좀 어색하다. 단어도 3D 애니메이션과 2D만화로 구분지어 불러야 될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동화책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전판의 수요가 있기도 한데 수수바를 보면서 반가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수바의 그림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옛날 느낌이란 것은 아니다. 알록달록한 가을색도 가득하고 살짝 거친 표현도 귀여워서 새로운 독자들의 마음에도 들 것이다.


 수수바의 이야기를 지금은 계절별로 만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다양한 소재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각각의 얇은 책이 아닌, 하나의 책으로 모아 묶어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한권의 책 안에 다채로운 색과 이야기를 담은 수수바 시리즈가 나온다면 아주 매력적인 책이 될 것 같다. 비와 바람이 거센 11월의 초입부터 떨어져버린 단풍이 아쉽다면 수수바의 책장안에 담겨진 가을바람으로 단풍을 맞이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근육을 키우는 중입니다 - 14살부터 시작하는 회복탄력성 수업 마음이 튼튼한 청소년
실라 라자 지음, 김인경 옮김 / 뜨인돌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매일 이 규칙을 지키지 못해도 걱정하지는 마세요. (29) "


 '마음 근육을 키우는 중입니다'는 청소년을 위한 도서이지만, 성인인 나도 책소개글을 보고 관심이 갔던 이유가 '잠'과 '삶의 방식'이라는 주요단어들 때문이었다. 회복탄력성,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은 요즘 의식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언젠가부터 친구와 오랜만에 안부를 묻게 될 때면 잘 지냈는지 대신 요즘 잠은 잘 자는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지나가는 말로 밤에 잠이 잘 안와서 늦게 잔다, 그래서 낮에 힘들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했었나보다. 나이를 먹으며 피곤이 쌓이는 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친구의 안부인사를 떠올리니 옆에서 보기에도 염려될 정도라면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싶었다. 왜 피곤할까, 왜 잠이 잘 오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는게 맞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몸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평생에 걸쳐서 하듯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도 청소년, 어른 모두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로 책의 초반 동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 관심은 가더라도 내용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로는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1부의 내용은 이 책에 대한 그런 예상을 바꿔주었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눈길이 가는 곳은 사진으로 찍어두는데, 수시로 사진을 찍어두게 되어 조금 귀찮았을 정도다. 기대감을 변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책이 강압적이고 확고한 어조를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태도로 독자를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초반부에 " 회복탄력성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17) " 고 안내해 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달성하기 위한 목표로 성공, 실패로 셈하지 않고 한번 이렇게도 해봐야지 시도해봐도 된다는 접근 방식의 변화가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1부의 내용들이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고 있는 '일상의 규칙'이라는 주제와 겹쳐서 더 몰입이 잘 됐다. 청소년기에는 주위 어른들이나 학업 과정을 통해 관리/도움을 받을 수 있던 음식, 수면, 운동, 생활습관 같은 것들이 모두 자신의 책임과 관리 아래에 놓이게 되면 자유롭지만 흐름이 흐트러지기 더 쉽다. 그래서 오히려 어른들이 이 책을 더 실감하고 필요로하지 않을까 싶었다. 책 안에 "식사와 운동 습관 기록하기(36)" 목록이 있는데 네개의 질문으로 네번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것들이었다. 몇 대 맞았나 생각해보자.

1 일주일 동안 어떤 채소를 먹었나요?

2 일주일 동안 먹은 가공식품(과자, 사탕, 탄산음료 등)을 써보세요.

3 일주일 동안 패스트푸드를 몇 번이나 먹었나요?

4 일주일 동안 운동(체육 수업, 요가, 빨리 걷기 등)을 얼마나 했는지 써보세요.

 

 " 우리는 전체 공개로 게시물을 올리고 '좋아요'를 받는데 집착하는 문화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에 참여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41) "

 그 뒤로 이어지는 소셜미디어 의존 부분에서도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 서평을 쓰는 알라딘에도 전체공개와 좋아요 기능이 있지 않은가까지 생각이 미치면 중독이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의 내면에서도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 자신에게 하는 말에 관심을 가져 보면, 그 말들이 대개 과거나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가끔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너무 신경 쓰느라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놓치기도 해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순간이데 말이죠.(66) " 

 지금을 놓치고 있다는 것, 도전을 포기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마치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는 척하는게 쉽고 익숙하지만 아무 도움은 되지 못한다는 걸 되새겨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전에 제대로 못했었는데, 혹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큰 두려움이 되는 사회지만 조금씩 한번 해보니 이렇다는 걸 알게됐어, 실패할수도 있는데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하고 도전해보게 되도록 조금씩 생각을 바꿔 '경험'을 시도하는 문턱을 낮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살짝 다른 이야기지만 소셜미디어 중독과 함께 생각해보면, 여행이나 특별한 경험을 할 때의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때도 있지만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 눈으로 보기 보다 사진과 영상을 남기려고 렌즈나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간이 더 길지 않았나? 이런 질문들이 책을 읽으며 수시로 떠올랐다. 

 

 이 뒤로도 1부에서 "마음 챙김 취미 활동(74), 마음 챙김 식사(75)" 같은 주제가 나오면 멈추지 못하고 관심이 쏠린다. 게다가 단어 사용마저 청소년보다는 2~30대 성인들의 관심에 더 적합한 느낌이라 책의 1/3을 읽으면서도 대부분의 내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빠져들어 읽게 되는 것이다. 다만 2부와 3부의 내용은 좀 더 청소년의 나이대에 맞는 조언을 담고 있어서 큰 흐름을 훑어보듯 읽었다. 아무래도 그 시기의 정서적인 부분은 좀 더 예민하고 또래 집단의 영향이 큰 편이라, 이제는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3부의 "합리적 사고방식 기르기(203)" 문항들은 인상적이다. 4부에서 나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자신보다 타인에게 적용하려 노력하는 중이라 집중해서 읽었다. 타인의 실패를 경험으로 말해주고 타인의 실수를 공감해주려 하는데 쉽지 않다.  


 청소년 도서 중 문학작품이 아닌데도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애초에 어른스럽고 성숙한 삶의 규칙과 태도를 가지고 생활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배움은 끝이 없는 것이니까.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 하는 자기 반성과 함께 생활 습관, 태도, 생각을 좀 바꿔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자. 읽기 편하고 공감되는 내용이 1부와 4부에 특히 많다. 경우에 따라선 2부, 3부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귀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른들은 일부러 바닷가 절벽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6) "


 처음부터 의심하면서 읽었다.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라니, 사실 마법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일부러 전당포가 있는 절벽에 가지 않고 아이들의 상상을 지켜주는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벌써 간파해냈지' 하는 기분으로 저 문장을 가장 먼저 꼽아놓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또 다른 감상이 마음 속에서 생겨났다. 그래서였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어서.


 " "납득한 게 아니에요. 그 애의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도 있어요. 단지 저나 모두가 알고 있던 정답을 말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탁 말해버리다니 멋지다고, 나중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점점. 감기가 아니라 주말만 돼도 만나지 못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져요."

 인터뷰가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리카는 어색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저는 당신도 그런 상대가 있지 않을까 하고, 그걸 알려줬으면 한 거예요."

 마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에게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어.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

 "어, 그런가요?"

 "그래. 왜냐하면 우리 마법사는 생명이 영원하거든. 그래서 지금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어. 너희 인간이 누군가를 정말정말 만나고 싶어 하는 까닭은 언젠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날이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43) "


 사실 얼마 전 가만히 누워 한결 시원해진 바람을 맞다 문득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을 거리에서 지나쳐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과거에 알게 되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은 적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반이 달라지거나, 졸업을 하고 난 뒤로 이렇게 평생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이별한 적이 있었나 짚어봤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테지만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인연들이라 생각하니 모두에게 조금 더 잘할 걸 싶었다. 그때는 그런 걸 알수도 없고 또 알았다하더라도 이런 식의 후회를 할 거라고 생각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요시노 마리코의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도 그런 만남과 헤어짐, 기억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깊이있게 누군가를 사귀고 이어지는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마음과 태도의 중요성을, 지우고 싶은 쓴 기억이나 즐거웠던 기억 또 아무리 사소하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도 자신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임을 추억 전당포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조용히 비추어준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되겠지만 막상 천천히 책을 읽으며 리카와 하루토의 성장을 지켜보고 나면 마지막에는 감동하게 된다. 이렇게 순수한 감동을 준다는 점이 좋아서 청소년 도서를 읽는게 좋다.


 창을 닦는 달팽이와 차를 내어주는 다람쥐, 쓰다듬을 받는 갈매기 같은 동화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법에 걸린 사랑'이란 디즈니 영화를 몇번이나 반복해서 볼 정도로. 표지에 있는 다람쥐를 보고 처음에는 인형이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집안일을 돕는 야무진 모습으로 등장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어른이더라도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를 읽었다면 그 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 나라면 어떤 추억을 맡길까 고민하다 잠들었을테다. 물론 지금도 그러긴 한다. 독후활동으로도 아주 좋은 주제가 여럿 나올 책이라 읽어보기 참 좋을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자. 나라면 어떻게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왔어도 한낮을 지독하게 울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다보면 여름이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올 여름은 확실히 각별하다. 코로나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떼어 여행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이제는 가족들도 각자의 생활이 있어 가족 여행을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전부는 아니어도 거의 모두가 3일에 걸친 여행을 함께 떠나 힘들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오래도록 함께 이야기 할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흡족한 한편, 확실히 가족 여행은 힘들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보니 마음에 더 와닿는 부분이 많고, 제목마저 더 내 이야기 같은 공감이 됐다. 수채로 연하게 그려진 그림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글로 써진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하나하나 다정하고 애틋하다. 엄마와 할아버지 장의 여름에서, 엄마와 세티에게로 이어지는 추억들은 단단한 고리가 되어 가족을 하나도 강하게 묶어주는 듯 하다. 


 여행의 마지막에 그토록 꼼꼼히 챙기던 우산을 잃어버리고 돌아온 탓에 세티가 종종 모자를 찾는 부분에서 책장을 멈춰 분실물 센터를 한참동안 뒤적였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우산이 분실물이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니. 우산을 키워드로 한 3일간의 습득물 신고 내역을 둘러보는데도 500개 이상의 목록을 훑어야 했다. 그 많은 우산들 중에 내 우산은 없었다. 나도 우산이 필요했던 다른 여행자에게 내 우산을 선물했다고 생각해야 할까.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 오랜만이라 마음이 헛헛하다. 이 여름의 유일한 아쉬움이 될 듯 하다.


 책의 마지막은 아이가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나의 여름은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닌 나의 감상보다도 함께한 짧은 시간이 올해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해주었고, 어떤 여행이었는지 부모님의 감상이 궁금한 시간이었다. 분명 모든 것이 다 좋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함께해서 아름다운 여름'이었다고 여겨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는 책이다. 그런데 그 매력이 다 드러나지 못하고 끝나버려서 책 읽고 나서 아주 아쉬웠다. 유명 관광지엘 가면 한동안 경성 콘셉트로 옷을 맞춰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시기를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화 감성으로만 향유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지만 어쨌든 그 때의 시대적 배경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1931 흡혈마전'의 배경도 딱 그 시기이다. 거기에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서로만의 서사를 쌓아간다는 관계성까지, 책을 읽기 전에 기대가 컸다.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희덕이 어째서 특별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용기있고 착한 마음을 가진 인물인 것은 알겠지만 흡혈귀들의 힘이 왜 희덕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왜일까, 왜일까하며 읽었다. 왜 이 점에 주목하는가 하면 계월의 존재나 외모가 굉장히 특별하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희덕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상을 주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희덕의 그 단한가지 특별함이 너무나 평범한 희덕을 계월에게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계월에게 절대적인 인상을 주는 인물이 되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또 '로맨스'를 떠올릴만큼 끈끈해진다. 모두가 날 기억에서 지우는데 단 한 사람만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니. 로맨스물이었다면 '이게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면 난 친구없어'가 되는 것이다. 
 
 계월이 만주로 떠나는 길을 희덕이 함께 나섰으니 이 뒤에 또 함께할 모험이 있을 것 같아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게다가 처음 이 둘의 어색하던 호흡이 백작과의 사건을 함께 이겨내면서 다져진 뒤라 앞으로의 관계 변화가 기대되는 참이었다. 이번 이야기동안 학교 안에서의 적응, 일본과의 갈등,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 대한 자각이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전통적 여성관을 강요하는 가족과의 갈등, 새로운 땅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이 색다른 재미를 주지 않을까. 다음편 주세요. 
 
 아니면 슬쩍 흘리듯이 나온 계월의 과거. 정리하듯이 짧게 나왔는데 이정도 서사면 계월과 백작의 관계편도 애증 서사 맛집이 아닐리 없다. 계월이 처음 마신 피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계월의 마음이 변했을 때 백작한테는 과연 아무런 심리적 타격이 없었을까. 둘이 함께 한 70년 동안 서서히 절대적 존재로 여겼을 백작에게서 벗어나게 되는 계월의 의식 변화도 그려냈으면 재밌었을텐데. 희덕과 계월도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쌍방구원이지만 백작과 계월도 첫만남부터 구원서사였다. 흡혈귀한테 어떤 의미로는 죽음이 저주받은 삶을 마감하는 구원이기도 하니까 둘 사이도 흥미진진 맡아놓은 내용이니 전편도 주세요.
 
 이렇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더 파면 팔수록 큰게 나올 것 같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뭔가가 피어날 듯 피어날 듯 채 피어나지 못한 느낌이 좀 아쉬웠다. 사건 해결도 생각보다 단순하게 끝나기 때문에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었다가 맥없이 풀려버린다. 해리포터처럼 한 사건으로 2-3권 정도의 분량 전개가 되어야 좀 더 끈끈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큰 규모로 책을 낸다는 건 모험이겠지. 그러니 이 책 인기가 많아져서 더 많은 희덕과 계월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신선한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영어덜트 장르문학에 도전해보시길.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