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는 책이다. 그런데 그 매력이 다 드러나지 못하고 끝나버려서 책 읽고 나서 아주 아쉬웠다. 유명 관광지엘 가면 한동안 경성 콘셉트로 옷을 맞춰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시기를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화 감성으로만 향유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지만 어쨌든 그 때의 시대적 배경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1931 흡혈마전'의 배경도 딱 그 시기이다. 거기에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서로만의 서사를 쌓아간다는 관계성까지, 책을 읽기 전에 기대가 컸다.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희덕이 어째서 특별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용기있고 착한 마음을 가진 인물인 것은 알겠지만 흡혈귀들의 힘이 왜 희덕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왜일까, 왜일까하며 읽었다. 왜 이 점에 주목하는가 하면 계월의 존재나 외모가 굉장히 특별하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희덕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상을 주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희덕의 그 단한가지 특별함이 너무나 평범한 희덕을 계월에게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계월에게 절대적인 인상을 주는 인물이 되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또 '로맨스'를 떠올릴만큼 끈끈해진다. 모두가 날 기억에서 지우는데 단 한 사람만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니. 로맨스물이었다면 '이게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면 난 친구없어'가 되는 것이다. 
 
 계월이 만주로 떠나는 길을 희덕이 함께 나섰으니 이 뒤에 또 함께할 모험이 있을 것 같아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게다가 처음 이 둘의 어색하던 호흡이 백작과의 사건을 함께 이겨내면서 다져진 뒤라 앞으로의 관계 변화가 기대되는 참이었다. 이번 이야기동안 학교 안에서의 적응, 일본과의 갈등,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 대한 자각이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전통적 여성관을 강요하는 가족과의 갈등, 새로운 땅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이 색다른 재미를 주지 않을까. 다음편 주세요. 
 
 아니면 슬쩍 흘리듯이 나온 계월의 과거. 정리하듯이 짧게 나왔는데 이정도 서사면 계월과 백작의 관계편도 애증 서사 맛집이 아닐리 없다. 계월이 처음 마신 피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계월의 마음이 변했을 때 백작한테는 과연 아무런 심리적 타격이 없었을까. 둘이 함께 한 70년 동안 서서히 절대적 존재로 여겼을 백작에게서 벗어나게 되는 계월의 의식 변화도 그려냈으면 재밌었을텐데. 희덕과 계월도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쌍방구원이지만 백작과 계월도 첫만남부터 구원서사였다. 흡혈귀한테 어떤 의미로는 죽음이 저주받은 삶을 마감하는 구원이기도 하니까 둘 사이도 흥미진진 맡아놓은 내용이니 전편도 주세요.
 
 이렇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더 파면 팔수록 큰게 나올 것 같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뭔가가 피어날 듯 피어날 듯 채 피어나지 못한 느낌이 좀 아쉬웠다. 사건 해결도 생각보다 단순하게 끝나기 때문에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었다가 맥없이 풀려버린다. 해리포터처럼 한 사건으로 2-3권 정도의 분량 전개가 되어야 좀 더 끈끈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큰 규모로 책을 낸다는 건 모험이겠지. 그러니 이 책 인기가 많아져서 더 많은 희덕과 계월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신선한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영어덜트 장르문학에 도전해보시길.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