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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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는 동화책을 만드는 작가.
사노 요코
이 분을 만난 건 이 신비한 동화책 한 권이다.
계속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자 죽기를 바라는 고양이.
백 번 울고 죽었다는 짠한 이야기.
작가가 정말 죽는다.
70세에 유방암에 걸려서 항암을 포기했다.

하지만 유머는 그대로다.

나는 칠칠치 못하고 해야 할 일을 질질 끌며 정리정돈이 서툰 사람이다. 잘 생각해보니 머릿속도 내 방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자주 호통을 쳤다. ˝네 녀석은 똥이랑 된장도 구분을 못하는 게니!˝
그래요, 아버지. 저는 똥이랑 된장도 구분 못한답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면 반드시 설교를 늘어놓았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
아버지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
아낄 돈도 없이 죽은 아버지 역시 불쌍하다.(18-19)

나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구제불능의 바보도 아니다.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멍청한 미인`이 되고 싶다. 얼마 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56-57)

자신이 죽음을 맞으며 느끼는 순간을 재치 가득하게 기록한다.
2년이란 시한부 선고로 주위 것들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주변에 대한 시선.
어떤 염치없는 사람에 대한 스스로 독백이 인상 깊다.
난 왜 얘랑 놀고 있을까? 항상 남에 것 얻어먹기를 당연히 여기고 내 모든 물건에 탐을 내서 시시때때로 ˝달라˝라고 하는
칼 안 든 강도 같은 그녀를..
파렴치한 그녀를 대하는 자신이 가진 선함에 자아도취된 것은 아닌가?
결국 죽음 앞에서 저자 물건을 들고 ˝나 이거 가져도 돼?˝라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미움을 깨끗하게 씻는다.
그래. 사람들은 욕망을 참 잘 가리고 사는데 이렇게 추한 욕망을 내비치는 것도 네 재능이다.
병원에 가는 이유는 내 병이 나아지기 위해보다는 ˝잘생긴˝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간다는 저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신은 절대 죽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며 타인에게 사생활을 떠벌리는 환자.
그리고 집에서 죽었던 두 동생과 오빠에 대한 회상.
이 모든 이야기가 어둡지 않고 유쾌하게 진행된다.
어쩌면 죽는 것도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지은이가 뇌까지 암에 번져 신경외과 의사와 대화를 한다.
이에 대한 대담을 책에 수록했다.
그때 저자는 말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라는 죽음에 대한 유명한 학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단계가 있다는데 자신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이때 의사는 답한다.

그건 사노 씨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 아닐까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시니까요. 결국 인간학이죠. 여러 가지를 제대로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은 확실히 사생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멘털 케어가 힘들죠. 인생이란 이런 거랍니다, 생물이란 이런 거랍니다, 하고 설명해줘야만 하니까요. (116)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구나.

죽음을 떼어 놓고 독서를 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과제가 바로 `죽음`이다. 이에 대해 결국 저자 사노요코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도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가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갓난아기가 태어나고 양로원에서 아흔넷의 미라 같은 노인이 죽는 매일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똥에 진흙을 섞은 듯 거무죽죽하고 독충 같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157)

멋지다. 이 사람.

마지막 객관적인 눈으로 사노 요코를 인터뷰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모두들 동정해줘. 그래도 예전에 걸렸던 정신병 쪽이 몇만 배나 더 고통스러웠어. 주변 사람들은 몇만 배나 더 차가웠고. 순식간에 친구가 한 명도 없어졌어. 하지만 암이 전이됐다면 이야기가 다르지.˝(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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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 0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6-03-06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모두들 동정해줘. 그래도 예전에 걸렸던 정신병 쪽이 몇만 배나 더 고통스러웠어. 주변 사람들은 몇만 배나 더 차가웠고. 순식간에 친구가 한 명도 없어졌어. 하지만 암이 전이됐다면 이야기가 다르지.˝(181)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표지만 보고서 뭔 책인가 했는데 꿀꿀이님 리뷰를 읽고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책한엄마 2016-03-06 19:01   좋아요 2 | URL
매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오히려 이 가벼움 때문에 실망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아무래도 죽음을 앞두신 분이 이렇게 밝게 글을 쓰신 것도 대단한 내공같기도 합니다.
즐거운 주말 저녁되세요.^^

커피소년 2016-03-06 19:10   좋아요 2 | URL
가벼움에 진리가 묻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 분 생각이 저하고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요.

책한엄마 2016-03-06 19:10   좋아요 2 | URL
어머!!저도 그랬어요.^^
반가워요.
제가 쓴 글인줄 알았어요.

커피소년 2016-03-07 00:04   좋아요 0 | URL
같은 생각..ㅎㅎ 예 공감대 형성 되니 기쁩니다..ㅎㅎ

yureka01 2016-03-06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하나..단순 할수록 진리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

책한엄마 2016-03-06 22:00   좋아요 2 | URL
아하!그렇죠.^^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16-03-07 00:05   좋아요 2 | URL
제가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ㅎㅎ유레카님이 하셨군요..ㅎㅎ

비로그인 2016-03-14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꿀꿀이님 좋은 하루되세요.

책한엄마 2016-03-14 20:25   좋아요 0 | URL
네-반갑습니다.^^
멋진 이름이에요.

비로그인 2016-03-14 20:26   좋아요 1 | URL
꿀꿀이님 감사합니다.

책한엄마 2016-03-14 20:41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블루레이] 인턴
낸시 마이어스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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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난 노라 에프론이 좋다.
여성 특유 섬세한 코메디.
그 계보를 잇는 여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신작.인턴.

모범적 샐러리맨이었던 벤.
규칙과 꾸준함이 살아가는 데 동력이었던 이 분.
일이 없어지니 삶이 버겁다.

그는 일부러 사회 일원임을 느끼기 위해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간다.
나도 실은 벤과 비슷한 성향 사람이다.
계획 짜고 항상 똑같은 규칙에 의해 살아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과도 그런 과로 정했건만-너무 안 좋은 점만 봐서 스스로 포기.
(삶이 규칙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혜성같이 나타난 전업 주부 출신 ceo
우리 나라로 치면 한경희씨.

작은 규모 회사가 엄청나게 커졌다.
처음 자신이 하나 하나 손댈 수 있었던 일들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아, 맞다.
가정도 있었네?

그런데 웬 늙은 사람들?
내가 채용하라고 했어?
꼰대가 난 제일 싫은데!

요즘 신입사원.
부모가 독립하라고 하지만 나갈 돈이 없다.
천정부지로 오른 월세.
부모는 자기 시대처럼 생각하니 알리가 없지.
결국 쫓겨난 동기를 받아주는 넉넉한 노인 인턴 벤.

처음 벤을 싫어하던 사장 줄스도 벤을 인정한다.
벤은 회사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너 몇 살인데 나한테 그 따위야?`라는 생각은 집에 고이 접어 넣어놓고 온다.

줄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재빠르게 인정하고 놓치지 않는다.
순간 이익을 제대로 포착한다.

피곤하다는 하우스 허즈번드.
이 때까지만해도 같은 전업 주부 입장에서 공감을 해줬지만-
감독이 이 분을 못된 놈으로 만들어 버렸다.

반면 70세 벤은 회사에서 연애도 한다.
브라보!

줄스는 사원들에게 벤을 본받으라고 일장 연설중.

왜!!굳이 남편을 이렇게 만듦?
보통 집에 있는 남자는 거세된 것 같은 생각에
다른 여자를 통해 남자임을 인정받으려고 한다고 한다.
사실-그래서 헤어진 커플도 많고-

남편 때문에 괴로워 하는 줄스.
결국-일단 용서해 주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일은 중단한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경영인을 도입할 것을 남편이 계속 주장했다.)
내가 눈여겨 본 부분.
미국이라고 어쩔 수 없단 생각을 했다.
벤이 입사할 때 대학을 물어보고
줄스 비서가 벤에게 밀린단 생각이 들 때 흐느끼며 이렇게 외친다.
˝나 유펜 나왔어!˝
(`나 어디 나온 여자야..`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미국도 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내 마지막 학력은 방송대 유아교육과다.
물론 어릴 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나온 대학교도 있다.
그래도 난 방송대 나온 학력이 앞선 학력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늘 내 스스로 참 창피한 일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원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다 방송대 명패를 봤다.그걸 보곤 유아교육을 공부한단 이야기가 오갔고 그 인연으로 난 유치원 운영위원회에 추천됐다.위원장님은 유명대(스카이)교수님. 교수 부부시다.
식사를 하다 내 공부 얘기가 시작됐다.
원장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시며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을 어떻게 들어갔냐고 하셨다.
어색해서 2008년도에 들어가서 10년이 다 된다고 말하니-위원장님이
˝공부가 어려웠나봐요.˝라고 말씀하셨다.(사실 누가 얘기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이 대화가 마치 5살짜리 애한테 참 걸음마도 야무지게 한다 칭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위원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공부 잘 했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아직도 격한 감정이 남아있어 생각해봤다.
도대체 난 뭐가 잘났다고 그 대화에 감정이 상한 걸까?

벤이 인턴으로 일하는 그 곳.
몇 년 전에 자기 사무실 안에 부사장으로 있던 그 곳이었다.
그는 보스에서 사원이 됐다.
하지만 그는 감당한다.
자신이 택한 선택에 만족한다.
난 도대체 뭔가?

나야말로 꼰대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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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3-04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책한엄마 2016-03-04 20:50   좋아요 1 | URL
오!기대됩니다.이번엔 꼭 참가할게요!!

2016-03-05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5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6-03-06 18:44   좋아요 1 | URL
같이 화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시 그분이 많이 긴장하신 것 같았어요.
자신 아기도 백일이 지났는데 계속 돌 지났다는 야기를 하셔서 많이 당황했어요.ㅎ
그냥 오랫동안 공부하고 있다니까 그냥 뒤에 사심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다 하신 말씀같아요.
뒤에 제가 왜 오랫동안 공부를 했는지 개인 사정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2016-03-06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6-03-06 18:57   좋아요 1 | URL
네-^^
그렇게 악한 분은 아니세요.
그래서 제가 창피하다고 썼죠.
만약 정말 명문대 교수로 교만에 차서 그런 얘기를 하셨다면 전 이런 후회도 하지 않았을 테죠.^^

2016-03-06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전에 추천해주셨던 백만 번 산 고양이의 긴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블로그를 통해서 한 편의 시 같은 감상평을 남겨 놓으셨다.

구작가는 어려서부터 열병을 앓아 들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는 커다란 소음에도 아무 반응을 할 수 없다 한다.
그만으로도 큰 시련인데
싸이월드에서 `베니`라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을 즈음 더욱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자신의 시력까지 없어지고 있다는 것.
지금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살고 있는 작가는 일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다 그만 둬라.`라는 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남은 시력 한 부분까지 짜내어 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
베니를 만든 구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부터 실명 선고를 받기 직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듣지 못해 말을 못하는 딸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법을 가르쳐줬던 엄마.
그만둬야만 했던 고등학교.
일을 갖고 싶어 계속 도전했지만 실패만 했던 상처.
결국 싸이월드 스킨 작가가 됐지만 벌이가 안 됐던 그때.
결국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린 스킨으로 돈을 벌게 된 이야기.


싸이월드의 인기 하락 후의 다시 된 어두움의 시작.

두번째 챕터에 적힌 하고 싶은 일들은 사소해서 누군가에겐 별일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작가에겐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소소한 일상의 소원들을 그리고 있다.
김연아 선수를 만나고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들이고 면허증, 소개팅, 살 빼기 등등
정말 일상일지도 모른 이야기들이 담담하지만 뜨겁게 그려진다.

세 번째는 조금 더 큰 이벤트를 해 보는 것.
보통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한 번쯤 겪어볼 수 있는 이벤트를 시력이 있을 때 이루기 위한 일들을 해 본다.
헬렌 켈러는 태어나서부터 앞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헬렌 켈러는 삼 일 동안 눈이 보인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구작가는 그 글을 기초로 헬렌 켈러 대신 그 소원을 이루어 본다.
삶에 한 번쯤 있을 웨딩 사진을 찍어보고 가족여행을 간다.
마지막 꼭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보고 싶은 그림을 본다.



`남을 위한 일해보기.`라는 부분에서 지은이는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청첩장 디자인을 했다.
이 청첩장은 사랑으로 그린 그림이라서 그런지 막눈인 내가 봐도 참 아름다웠다.
어쩌면 진정한 예술은 이기심을 제거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 부분은 시력을 완전히 잃고도 하고 싶은 일들을 담담하게 적어놨다.
들리지 않아도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완성한 베토벤의 가슴 떨리는 음악들처럼
아마도 구작가는 보이지 않으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그림을 계속 그리려나 보다.

그녀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그림은 흡입력이 있다.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다.
빅 히어로에 나오는 마시멜로같이 생긴 로봇보다 예쁘고 좀 더 따뜻해 보인다.
색감 또한 부드럽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을 너무도 예쁘게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싸이월드 스킨이 초반에 많은 주목을 못 받았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다 풀어놓고 그린 누워서 지쳐있는 자신의 마음과 꼭 같은 캐릭터를 올렸을 때서야 사람들과 통했다.

랄랄라님은 내 블로그를 보면서 왜 내 마음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단 말씀을 하셨다.
그게 도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 한참 생각해보다가 비로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른다운 작가인 베니의 창조자 구작가.
이 그림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더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나도 나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한 글을 쓰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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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3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잘 안 읽던 제 동생도 이 책을 저에게 추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책한엄마 2016-03-03 17:39   좋아요 0 | URL
네-진짜 멋진 분이에요.다음 작품인 줄 알고 비슷한 토끼 그림이 있는 책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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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거실에 아이들 둘이 논다. 노곤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며 안방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옆에는 남편이 먼저 누워 쉬고 있다. 이런저런 농담으로 웃다가 이 책 `행복`을 폈다.
요즘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란 책과 영화에 대한 글을 읽은 후 펼친 또 `행복`에 관한 책.
이 책을 펼치면서 난 기억했다.
별것 아닌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다. 잊지 말자. 그렇게.

사실 나는 작년에 팟캐스트에 나온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대부분을 들었다.
게다가 집에 소장하고 있는 `야단법석`이란 책을 대충 다 본 후라서 이 책이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미 어디선가 들었고 어디선가 읽었던 부분이다.
다만 이런 내용을 `행복`이란 카테고리로 따로 만들어서 출판한 것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읽는 말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1. 왜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먼저 이 책에서는 스님이 말하는 삶이 꼬이는 이유에 대해 강하게 얘기해 준다.
우린 우리 기준으로 모든 것을 본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고 내가 옳다는 것을 반대하면 나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릴 때 그 옹졸함을 못 버린 생각일 뿐이다.
미국인이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웃으면서 손바닥을 내밀고 ˝hi˝한다고 못된 놈은 아니다.
다만 못 배운 분 정도는 될 수 있다. ˝우리 문화를˝ 못 배운 분.
이렇듯 내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행복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내 마음대로 세상이 움직일 수 없다. 다 개인마다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내 기준대로 생각하니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2. 감정은 만들어진 습관

 

 


이 불만이 계속되면 감정이 생긴다. 이런 감정은 쌓이면서 병이 된다.
우리는 보통 화를 참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이나 참는 것이나 오십 보 백 보예요. 둘 다 자기 기준을 내세우는 건 똑같고 단지 감정을 드러내느냐 숨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68)
분노라는 것은 그저 습관일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덩어리가 만들어낸 고약한 습관. 그것을 없애려면 내 고약한 기준을 없애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 말로 나를 깎아내리고 모욕 줬다. 그런데 나는 앞에서 말을 못 했다. 내가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그 사람도 말로 똑같이 당해봐야 하는데 말이다.
이기는 방법을 찾아서 대응하다 보면 남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됩니다. 내 가슴에 못이 박히면 내가 깨닫고 뉘우치면 되는데,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하면 내가 참회하고 뉘우친다고 소멸되지 않습니다.(80)
자랑하는 사람을 보자. 이 사람은 왜 자랑을 하고 있나? 그가 자랑하는 반대 면은 자신이 그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은 갑자기 생긴 얼굴 뾰루지에 예민하고 똑똑함을 자랑하는 자는 `이것도 몰라`라는 말에 이성을 잃는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모두 삶의 기준을 타인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삶을 내가 산다는 주인의식 없이, 내 삶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101)

 

 


3.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

 

 


사람들은 다 다르다. 그걸 아는 순간 분노의 절반은 없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그러다가 아쉽고 서운한 것이 생긴다. 결혼 생활이 그렇고, 회사 생활이 그렇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그렇다. 왜 이들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나? 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있을 뿐이다. 내가 그들 덕을 볼 마음 때문에 이만큼 해줬으니 받을 생각에 그리고 내 능력을 과장해서 알린 덕분에(입사하려면 그럴 수도 있을 듯) 그들은 너를 괴롭히게 된 거다. 원인은 다 내 안에 있다.
내 마음에 딱 든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내 기준에 따라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좋거나 나쁜 건 아니에요.(124)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바로 불행이 시작되는 점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재미를 줬다면 그걸로 감사해라. 왜 내 인생을 희생했다 생각하나?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남에게 받은 것보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만 생각하고 분해한다. 그렇다고 `기브 앤 테이크`를 강조하면 그것은 거래지 관계가 아니다. 내가 먼저 사랑과 관심으로 타인에게 손은 건네자.
상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인 줄 안다면, 그 일을 하면서도 상대에게 기대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깃들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끼리 심리적인 거래는 그만두고 이제라도 진정한 관계를 맺어보세요.(158)

 

 


4.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 마라.

 

 


내가 원하는 자리가 있다. 누군가 실패를 맛 보아야 얻어지는 자리다. 내가 불행할 때 남의 절망을 가지고 위로를 얻으려 할 때가 있다.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사람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가 해소되면 더 질 높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그 후에 넘쳐도 계속 갖고 싶다는 잘못된 생각이 들어차게 된다. 그게 바로 탐욕이다. 탐욕이 들어차게 되면 타인이 그로 인해 느끼는 불행과 고통은 보이지 않게 되는 죄악이 생긴다. 그곳까지 가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다.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인생 행복을 깨닫는 지름길이다.
인생은 자기 좋은 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살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지켜야 할 몇 가지 제한은 있습니다.
첫째,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도 되지만, 남을 해칠 자유는 없습니다.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는 거예요. 둘째, 누구나 다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이익을 침해할 권리는 없어요 남의 재물을 뺏거나 훔치지 말라는 겁니다. 셋째, 누구나 다 행복하고 사랑할 권리가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강제로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하지 말라는 거예요. 넷째, 누구나 다 마음껏 말할 자유가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섯째, 술 마실 자유는 있지만 술에 취해 주정하며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술을 먹고 휘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렇게 다섯 가지 정도의 제약을 빼고는 사람은 다 자기 좋은 대로 살면 됩니다.(202)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먹는다고 상담했단다. 그런데 스님은 그 사람을 호되게 혼냈단다.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 사람이 사람을 이용해 먹을 것이란 생각으로 대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었고 결국 사람은 이기적이기에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5.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지는 연습

 

 


사람들은 모두 편견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걸 `사리분별`이라는 멀쩡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그를 용서하거나 상대방 의견을 듣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무릎 꿇고`,나 `내게 이런 사과를 하고`라는 방식을 쓰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 또한 그런 행동을 하기에 자신 입장에서 기준이 있었을 거란 얘기다. 행복은 타인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내 행복을 위해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온다. 우리가 주는 호의는 이 정도다. 두 번 정도 도움을 청하는 것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해 주고 세 번 이상 도움에 의한 후엔 화를 낸다. 혹은 `상대가 도와줘도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며 섭섭해한다. 진정 내 행복을 위한 선행은 그 정도로 저급하면 안 된다.
행복한 삶은 돈에 매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돈을 얼마 더 받고 안 받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쓰임새가 어디에 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면 돈을 내고서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재미와 보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270)
행복은 내가 가진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타인에게 바라는 무엇, 누구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탐욕, 그리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내 스스로 즐거움에 타인에게 베푸는 데서 진정한 행복이 온다. 이걸 깨닫는다면 누구든 해탈, 아니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다 읽고 나서
뻔한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무엇보다 내가 타인에게 섭섭했던 마음이 알고 보면 내가 갖고 있었던 왜곡된 기준에 의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레미제라블` 영화를 봤다. 장발장은 빵 하나 훔쳤을 뿐인데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형벌을 피하려고 도망치고 이를 잡으려는 경간 또한 감옥에서 자란 사람이다. 장발장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 분은 먹을 것을 주고 성당 촛대를 가져가게 한 신부였다. 바로 그 마음이 법륜 스님이 얘기한 `진정한 행복`을 위한 행동에 속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장발장은 촛대 하나로 새사람이 됐지만 그가 구한 사람은 참으로 많았다. 신부가 눈감아준 행동이 결국 몇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삶을 바꿨다.
결국 선은 타인을 위해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다. 내 삶을 위해 내 딸을 위해 더 나아가 밝은 미래를 위한 지혜로운 행동이기에 하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난 계속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 거다. 다만 나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이 잘 되고 내 나라가 잘 되고 지구가 잘 돼야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이 잊어먹고 있는 명제를 똑똑히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니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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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3-03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정말 좋은 말씀이 많더라구요. 꿀꿀이님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책한엄마 2016-03-03 14:40   좋아요 1 | URL
좋았어요.^^
항상 제 마음에 평화를 주는 글이에요.
공기처럼 물처럼 이 말씀이 제게 그대로 흡수됐으면 좋겠어요.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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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앞서 읽었던 책보다 100페이지가 적고 크기도 2/3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책.
이 작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만큼 커진 듯했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렸다.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덮은 적이 없었다.

전에 처음 읽었던 책은 이 작가 처녀작이자 각종 상을 휩쓸었던 책이다.
˝축복 받은 집 ˝ 9편이 같이 있는 단편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이 작가가 표현한 느낌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 다른 번역자 책을 읽고,
결국엔 원서를 찾아 읽었다.
그렇게 나는 이 작가에게 빠져버렸다. 퐁당 퐁당 러브(-_-아 죄송해요.)
만약 내가 영문학을 전공한다면 이 작가 때문일 테고 내가 박사가 된다면 이 작가를 연구할 거다.
그런 그녀가 쓴 이 책.
이 책은 영어책이 아니다.
이탈리아어로 쓴 책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투박하고 화려하지 않다고 한다. 이 작가 영문학 원서도 그렇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 모여 화려한 작품이 된다.
난 영어를 사랑했었다. 그리고 영어 작가가 됐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유명해졌다.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데 분에 넘치는 상을 받아서 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명예로운 일이었지만 상을 받은 게 영 믿기지 않았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그런 찬사가 말이다. 상을 받은 이후 난 유명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 때문에 스스로도 이젠 무명에 가까운 알려지지 않은 견습 작가로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날 숨길 수 있는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내 모든 창작이 나왔다. 그런데 첫 책이 출간된 지 일 년 후 난 내 익명성을 잃어버렸다.(132-133)
이 작가는 초심을 중요시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쓰고 싶어서 쓰는 삶. 돈이나 명예를 따지지 않고 그저 `나`이기 위해 쓰는 삶. 진짜 놀랐다. 영어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가 띄엄띄엄 쓰는 이탈리아어로 책을 썼다. 영어로 글을 써도 유능한 이탈리아 번역가가 잘 번역해 줄 텐데도 굳이 이 작가는 직접 글을 쓰는 일을 택했다. 이게 득될 일보다는 욕먹을 일이 더 큰일이다. 위험해 보였지만 이런 일을 한 저자가 가진 패기가 부러웠다.
언젠가 강신주 박사가 `시`에 대한 강연을 했을 때, 들었었다. 시인들은 모든 사물을 `낯설게` 본다고 한다. 낯설게 봤을 때 새롭게 보이는 그 순간을 포착한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이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어`를 떠나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쓰면서 그런 `낯설게` 보는 도박을 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들은 내 실수를 참아줬다. 잘못된 데를 고쳐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내가 모르는 단어들을 알려줬다. 인내심을 가지고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쳐줄 때처럼. 난 이런 방법으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29)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저자를 보며 전에 읽었던 만화가 생각났다. 마스다 미리의 `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너무 쉬운 영어에 대해 천천히 뜯어보는 모습이 조금 답답했지만 미치코 씨가 낯선 언어를 보고 생각했던 점과 이 책 저자가 생각한 부분이 많이 겹쳐있는 듯했다.
책, 메모장, 사전 몇 권, 펜이 널브러진 소파에 앉는다. 긴장감을 풀어주는 이 열정적인 작업은 시간이 꽤 걸린다. 나는 책 빈 공간에 단어의 뜻을 적지 않고 메모장에 목록을 만든다. 예전에는 단어의 뜻을 영어로 적었다. 이젠 이탈리아어로 적는다. 그렇게 나만의 개인적인 사전, 독서의 과정이 담겨 있는 나만의 어휘집을 만든다. 때때로 메모장을 넘기며 단어들을 복습한다.(41)
내가 평생을 공부하는, 그러나 700점대 성적에 머무르는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이 같이 오버랩된 부분이다. 이렇게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저자 노력이 이 짧고 별것 없는 부분에서 보인다.
창피하지만 나는 계속한다. 다음 수업을 위해 난 다른 글을 준비한다. 실수, 모난 데를 모두 묻어두고 나면 귀중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거칠지만 생생한 새로운 목소리는 더욱 향상되고 깊어질 것이다.(57)
평생 나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저런 활동을 계속한다. 저자는 이제 영어에 있어서는 마스터 수준이다. 그녀가 쓴 글에 대해 ˝엉망이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녀 글이 엉망이라는 생각보다 말하는 사람 인성에 의문을 품을 확률이 높다. 서툰 이탈리아 글쓰기는 그녀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다.
굳이 왜 이런 일을 자행하는가? 이것에 대해 계속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보통 우린 글에 자신을 치장한다. 얼굴 위에 샤넬 복숭아 메이크업 베이스와 랑콤 파우더로 가리고 랩에서 나오는 코롱으로 체취를 가리듯, 글 위에 내 마음을 가린다. 화려한 수식으로 혹은 모호한 미사여구로 지식을 뽐내고 진실을 숨긴다. 이런 글 반대편에 선 작가가 바로 이 사람. 줌파 라히리다. 자신이 와벽 않은 자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뱅갈어를 선택하고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익혔다. 이탈리아어는 스스로 선택한 언어다. 라틴어. 알파벳의 기원. 그러기에 그녀는 이탈리아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소박하고 간결하면서 솔직하게. 남에게 구속받지 않는 모습.
다시 한 번 난 이 작가에게 빠졌다. 아주 단단히.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나를 자극한 것, 날 혼란에 빠뜨리고 불안하게 하는 것, 간단히 말해 나를 반응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을 때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한다. 글쓰기는 삶을 흡수하고 정리하는 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못하면 난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 글쓰기의 용광로에서 변형되지 못한 채 다시 말해 순화되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은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계속 지속되는 말들만이 실제인 듯하다. 실제 하는 말들은 우리보다 높은 가치, 힘이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것은 더 심오하고 자극적인 형식으로 언어를 익히고자 하는 내 방법일 뿐이다.(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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