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는 동화책을 만드는 작가.사노 요코이 분을 만난 건 이 신비한 동화책 한 권이다.계속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자 죽기를 바라는 고양이.백 번 울고 죽었다는 짠한 이야기.작가가 정말 죽는다.70세에 유방암에 걸려서 항암을 포기했다. 하지만 유머는 그대로다. 나는 칠칠치 못하고 해야 할 일을 질질 끌며 정리정돈이 서툰 사람이다. 잘 생각해보니 머릿속도 내 방처럼 어질러져 있었다.아버지는 자주 호통을 쳤다. ˝네 녀석은 똥이랑 된장도 구분을 못하는 게니!˝그래요, 아버지. 저는 똥이랑 된장도 구분 못한답니다.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면 반드시 설교를 늘어놓았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아버지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 아낄 돈도 없이 죽은 아버지 역시 불쌍하다.(18-19) 나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구제불능의 바보도 아니다.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멍청한 미인`이 되고 싶다. 얼마 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56-57) 자신이 죽음을 맞으며 느끼는 순간을 재치 가득하게 기록한다.2년이란 시한부 선고로 주위 것들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주변에 대한 시선.어떤 염치없는 사람에 대한 스스로 독백이 인상 깊다.난 왜 얘랑 놀고 있을까? 항상 남에 것 얻어먹기를 당연히 여기고 내 모든 물건에 탐을 내서 시시때때로 ˝달라˝라고 하는칼 안 든 강도 같은 그녀를..파렴치한 그녀를 대하는 자신이 가진 선함에 자아도취된 것은 아닌가?결국 죽음 앞에서 저자 물건을 들고 ˝나 이거 가져도 돼?˝라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미움을 깨끗하게 씻는다.그래. 사람들은 욕망을 참 잘 가리고 사는데 이렇게 추한 욕망을 내비치는 것도 네 재능이다.병원에 가는 이유는 내 병이 나아지기 위해보다는 ˝잘생긴˝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간다는 저자.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신은 절대 죽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며 타인에게 사생활을 떠벌리는 환자.그리고 집에서 죽었던 두 동생과 오빠에 대한 회상.이 모든 이야기가 어둡지 않고 유쾌하게 진행된다.어쩌면 죽는 것도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다.지은이가 뇌까지 암에 번져 신경외과 의사와 대화를 한다.이에 대한 대담을 책에 수록했다.그때 저자는 말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라는 죽음에 대한 유명한 학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단계가 있다는데 자신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이때 의사는 답한다. 그건 사노 씨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 아닐까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시니까요. 결국 인간학이죠. 여러 가지를 제대로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은 확실히 사생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멘털 케어가 힘들죠. 인생이란 이런 거랍니다, 생물이란 이런 거랍니다, 하고 설명해줘야만 하니까요. (116)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구나. 죽음을 떼어 놓고 독서를 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과제가 바로 `죽음`이다. 이에 대해 결국 저자 사노요코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도 내일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며 비가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갓난아기가 태어나고 양로원에서 아흔넷의 미라 같은 노인이 죽는 매일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똥에 진흙을 섞은 듯 거무죽죽하고 독충 같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157) 멋지다. 이 사람. 마지막 객관적인 눈으로 사노 요코를 인터뷰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모두들 동정해줘. 그래도 예전에 걸렸던 정신병 쪽이 몇만 배나 더 고통스러웠어. 주변 사람들은 몇만 배나 더 차가웠고. 순식간에 친구가 한 명도 없어졌어. 하지만 암이 전이됐다면 이야기가 다르지.˝(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