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자."
식탁 위에 불을 밝혀둔 긴 촛대 앞에서 엄마가 눈을 감았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이었으니까. 고등학생 때까지교회를 다녔지만 스무 살 이후로는 교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엄마는 신을 통해서 언니의 죽음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극복할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신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을 거라고 은밀히 생각하고 있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잔혹한 방식으로 언니가 죽을 수는없었다. - P47

언니, 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발음했다. 일주일만 지나면 해가 바뀌고 나는 언니와 동갑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일 년 후부터는 내가 언니의 언니가 될 것이었다. 언니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나 혼자 살게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물론 해나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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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에는 ‘미병(病)‘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직병으로 발전하지 않은 상태를 이르는 말인데요. 이 미병 단계에서 잘 대처해 병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는 것을 치료의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등의 긴장을 푸는 것도병을 예방하는 방법이에요.
일단 악화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점점 괴로워져요. 정말지칠 대로 지치고 난 다음에는 치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미병 단계에서 치료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 P113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않고, 방법이 있다
고 알려 줘도 움직이지 않아요. 그래서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이 변하지 않아요. 이처럼 ‘No!‘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불안이나 공포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는 버릇이 든 사람의 특징입니다.
변하고 싶지만 변할 수 없다고요?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정말로 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나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나요? ‘어쩔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사고가 정지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반대로 ‘반드시 변할 수 있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반복하다 보면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답니다.  - P121

 그렇다면 어떤 기분일 때 죽는다고 말하는 걸까요? ‘내 앞에서 사라져라 좀‘ ‘나한테 신경 꺼‘일지도 모릅니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라는 의미일지도 모르지요. 혹은 ‘네가 싫어‘ ‘네가 미워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상대방이 진짜로 죽었으면 좋겠다거나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는 뜻은 아닐 테지요. 그렇다면 죽는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말이 아닙
"니다.
"짜증 나" "죽는다"는 그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런 말들 뒤에는 그때그때 다른 감정이 감춰져 있어요. 그런데 그 감정을 건져올리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짧은 단어로 때우려고 하기 때문에 거친 말이 나오는 거예요. 이는 자신의 섬세한 감정을 하나로 뭉뚱그려 양동이 안에 마구잡이로 던져 넣는 것과 같아요뇌는 감정을 형태가 있는 말로 기억합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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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증은 경쟁 때문에 겪는 학자의 우울증은 아냐. 음악가의미치광이 같은 그것도 아니고, 벼슬아치의 거만한 그것도 아니며,
군인의 야심적인 그것도 아니고, 변호사의 술책적인 그것도 아니며, 귀부인의 뾰로통한 그것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을 합친 애인의그것도 아니라, 온갖 재료에서 뽑아내어진 여러 요소로 되어 있는나의 독특한 우울증인데, 사실 나의 인생 여로의 각가지 명상에서나오는 것이고, 그 여행에 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곧잘 슬픈우울증에 휩싸이고 만단 말이야.
신이구요  - P123

나녜요. 말을 먼저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할 얘기가 없어난처해지면 그 기회에 키스할 수 있잖아요. 훌륭한 웅변가들은 말문이 막히면 침을 뱉는다지요. 연인들이 말문이 막히면 말이지요.
하느님, 우리를 보호해 주십시오! 키스하는 게 가장 좋은 모면책이에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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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인식할 수 있나?지성에 대한














자신은 문학과 조심스럽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본질, 그건 지나간 다음에야 보이는 거야." 알랭이 말했다. 알랭이 정말로 의미했던 건 무엇일까? 베르나르는 이해한 척했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그 모든 말이 베르나르를 짜증스럽게 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종이 한장,만년필 한 자루, 그리고 시작하기 위한 개념 하나의 그림자를 갖는 거예요." 파니가 말했다. 베르나르는 파니를 매우 좋아했다. 그들 부부 두 사람을 모두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제로 말하자면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게 전부였다. 무엇으로 그 마음을 억누를 수 있을까? - P24

알랭은 도둑처럼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호텔에서 베아트리스와 함께 세 시간을 보냈고, 행복감이 부여하는 거리낌 없는 양심으로 당당하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터였다. 그는 파니를 배반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돌아왔다. 파니는 파란색 평상복을 어깨에 걸친 채 자기 침대에 앉아 있었다.  - P66

‘조제‘
그는 니콜을 놓아준 뒤 화가 난 채 셔츠 몇 벌을 집어 여행방 안에 쑤셔넣었다. 조제, 대체 그는 언제 이 이름에서, 이 질투심에서 놓여날 것인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폭력적인 것. =것은 질투심이었다. 그는 자신을 책망했다.
"내게 편지 쓸 거지?" - P69

그리고 기억, 그 탐욕스러운 기억이 깨어나자마자 그의 꿈에까지 가득 차오르고 그의 가슴에 덤벼들었다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행복해진 그는 베아트리스의 벗은 등을 향해 한 손을 뻔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알고 있었다. 잠이 자신의 피부에꼭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유일한 것은 배고픔, 갈증, 그리고 잠이라는 것을. 그녀는 침대의 다른 쪽끝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에두아르는 혼자 남았다. - P84

니콜은 살이 쪄 있었다. 조제는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 사실을 눈치 챘다. 불행은 많은 여자를 살찌게 만든다. 음식이 생체본능으로 인해 그녀들을 안심시켜주기 때문이다.  - P88

조제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 남편이 나를사랑해요.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요. 난 당신에게서 그를 빼앗지 않을거고, 그도 이 상황을 잘 넘길 거예요? 그러나 이런말을 하는 것은 조제에겐 베르나르의 지성을 배반하는 행위로여겨졌다. 또한 니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사형집행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 P91

"내가 아기를 하나 바랐거든요."
니콜이 설명했다.
그녀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제는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도 그걸 알고 있어요?"
"아뇨."
조제는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성서에나 나오는 여자가 바로 여기 있었네. 남자를붙잡아두려면 아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를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속으로 몰아넣는 여자 말이야. 난 결코 그런 여자는 되지 않을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아기가 나오기를기다리는 동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행할 거야.‘ - P92

알랭 말리그라스는 베아트리스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정도로 그와 다른, 그 정도로 폐쇄적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견딜 수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그를 구원해줄 터였다. 게다가베르나르가 없어서 일이 더 많아졌다. 그는 파니의 충고에 따라베아트리스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열정이란 삶의 소금이며, 열정의 지배 아래에서 사람은 소금없이 살 수 없다는 것- 열정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너무나 잘할수 있는 일이지만-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베아트리스를 다시 만나지 않도록 조심했고, 가능한 자주 에두아르를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만족했다. 에두아르게서 보이는 그 모든 행복의 기색에 끔찍스러운 기쁨을 느끼면서. 그는 심지어 이런 상상까지 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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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누가 뭐래도 내 방식대로 행복해지기를,
마흔 넘은 싱글로, 혼자 사는 프리랜서로,
소심하고 게으르고 어리숙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내 방식대로,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네네" 하면서 디제이한테 맞춰주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설득하는 게 어려운 거지. 그래도 욕먹을 때 먹더라도 방송 잘 나오는 방향으로 해야죠.

남자가 연상녀를 만날 때는,
호칭으로 그 사람과 나 사이를 먼저 규정하려 하지.
고로 그 남자는,
그녀와 자신을 ‘여자 - 남자’로 규정한 것이 아니고
‘누나 - 나’로 규정한 거야.
그래도 계속 만나고 싶다면
가볍게 만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나중에 상처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 문자를 고스란히 복사해 전달해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연애에서 뿐만 아니라
‘호칭’은 그 사람과 나를 규정해주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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