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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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경화를 앓던 이가 백신을 접종한 뒤 나흘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망자의 십대 때부터 알고 지낸 터라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칠순의 노모는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고 있었고 상주인 아들은 이제 겨우 열여섯이라 막막함은 더했다. 정신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다 황망한 죽음을 맞은 이의 영혼을 떠올리며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떠올린다. 비보를 듣고 상가를 찾았다 오는 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유한한 인생에 물음을 던지며 울음을 삼킨다.

 

   여느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한다. 욕구들에 바탕을 둔 본능을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찰나의 감정에 이끌려 본능대로 행동하다가도 추하지 않은 몸짓이었는지 물음을 던지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천 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철학과 인문학은 자아의 본질을 참구하는 일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언급한 프로네시스는 여러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걸맞은 답을 끌어내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삶을 위해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할 9가지 질문들에 대한 사유는 회한을 낳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경쟁 구도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며 더 높은 데로 오르기 위해 방향을 잡는다. 평준화된 삶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며 살아가는 일은 유별난 일로 비춰져 규격화된 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용기가 있더라도 쉽게 걷지 않은 길을 향해 걸음을 떼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는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까지 흐리게 한다

 

   지식을 암기하여 기술하는 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은 의무교육 과정을 거쳐 입학한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가교로 친구들과 특별한 경험을 쌓을 시간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고전 속 가르침을 새기며 점수에 저당 잡힌 채 마음의 여백을 찾지 못하는 수험생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곁을 내주어 자연의 질서를 음미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피곤하다고 말하며 여유 있게 우정을 쌓을 시간도 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자신을 성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수시전형 접수를 끝낸 학생들은 마감된 경쟁률을 보면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동일한 학교의 학과를 지원한 이들을 누르고 우위를 차지해야 합격선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물음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찾는 해결능력보다는 정답을 쉽게 찾는 방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특정한 기술의 필요성이 커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잘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의문을 품고 그 내용을 질문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일상이 수반되어야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에 함께 서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친부 살해의 비극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신화 속 주인공들 이야기를 통해 기성세대와 다음세대의 마찰과 갈등을 가늠할 수가 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들이 짜주는 틀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부모의 관념을 자식에게 이식하려는 데서 갈등은 점화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부모의 뜻을 좇아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발전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정적인 틀을 깨고 새롭게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가는 일은 나답게 살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

 

   나를 잘 알고 나아가서는 인간을 잘 알고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 인문학적 통찰은 필요하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고, 한 번뿐인 인생이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적 삶을 바로 사는 일은 후회를 줄이는 일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에 물음을 던지며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지만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리기보다는 끊임없이 판단을 중지하는 에포케가 필요하다. 인생의 완급을 조절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속도를 제어함으로써 일상에서 발견하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꿋꿋이 행동하면서도 융통성을 가지고 나은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는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마련해야 한다.

 

  행하는 이 일이 멋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은가?

   되짚어 물으며 가치 판단의 기술을 적용하며 다변화된 시대를 살아갈 때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함을 경험으로 알아차린다.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는 과정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수록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다른 세계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고 대리 경험하여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고전은 한 획을 긋는다. 지나고 보면 어느 것 하나 평탄하지 않았던 인생의 좌표에 독서 경험은 적절한 처방으로 자리한다. 그 어떤 사람들의 위로보다 힘이 되고 평안을 줬던 작품은 인생의 든든한 울타리로 신산한 시간을 버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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