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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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고딕소설 장르에 해박한 작가라는 평론가의 글처럼 몇 편 읽은 고딕소설 못지않은 책이라 말하고 싶네요. 소설을 쓰고 싶어 하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요. 고딕소설에서 보이는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녹아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인 화자는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네요. 설상가상 자꾸만 이상한 목소리까지 들려옵니다.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곳, 사람들이 몰려들고, 욕심을 부리고, 경쟁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니꼴라 유치원’. 증오, 원한, 미움이 가득한 목소리들이 들리며 힘들어하는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악의’라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려내려는 니꼴라 유치원과 너무도 흡사한 대불호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장이 되면서 조선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인천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생긴 삼 층짜리 서양식 건물이 바로 ‘대불호텔’이었던 거죠.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에서 굳이 하루를 머물 필요가 없어졌고 대불호텔은 ‘중화루’라는 청요릿집 간판을 달게 됩니다. 이곳 대불호텔에서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 셜리 잭슨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는 대불호텔을 떠나지 못하는 유령이 있습니다. 

녹색 재킷이 잘 어울리던 고연주는 중화루 3층에서 숙식하며 숙박업을 하던 프런트 직원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다니며 미국으로 나갈 꿈을 키웠지만 좌절을 맛보게 되지요. 신원을 보증해 줄 미국인이 필요했던 고연주는 3층 대불호텔을 도맡아 영업하며 머무르게 됩니다. 중화루 관리인이었던 라이 가문의 뢰이한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지운의 남편이었습니다. 중국이 고향이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은 인천이었지요. 이곳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안 가족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뢰이한에게도 미국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지만 그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공포 소설을 쓰겠다고 대불호텔은 찾아온 셜리 잭슨은 남편의 권유로 대불호텔을 찾았지만 진척이 없자 돌아가려 했지만 괴이한 소리를 듣고 계속 머물며 연주와 점차 가까운 사이가 되어 가지요. 이들에게는 유령이라는 매개체가 있었습니다. 고연주가 이름 붙인 그 유령은 폭풍의 언덕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였죠. 지영현은 연주의 일을 도와주며 대불호텔에 머물게 되고, 미국으로 떠날 계획을 가진 연주를 보면서 참 많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참 미스터리한 점이 많이 보이네요. 그녀의 정체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진짜 지영현인가, 그녀와 함께 어울렸던 종숙이란 여자인가!!

<대불호텔의 유령>은 박지운이라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딸과 ’나‘의 엄마 학창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박지운이 들려주는 대불호텔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이야기 속 화자인 지영현의 시점으로 대불호텔에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입니다. 해방이 되고, 전쟁을 겪고, 혼란스러운 그 시기를 더욱 힘들어했을 이방인의 대불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원한‘을 바탕으로 절묘하게 얽히고설킨 총 3부의 이야기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래서 처음 만난 작가 강화길의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더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나 합니다.

전쟁의 아픔을 견딘 사람들,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 피폐해진 삶 속에서 누군가 원망의 대상으로 삼아야 살아갈 원동력이라도 되었을 사람들.. 과거 아수라장 같던 그 시간을 살았을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고 온 것 같은 <대불호텔의 유령>이었습니다.

​도서관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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