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영리하고도 상업적인 기치 아래 잘 나가는 7명 여성 작가들의 단편을 모았다.

<82년생 김지영>으로 화제를 불러모은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20대 여성의 독백이자 연애대상이자 결혼상대로 생각했던 현남에게 하는 말이다. 일단 재미있고 감정이입 팍팍 되고 잘 읽힌다.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현남(賢男)'인지, '한남'의 비꼼인지 단순히 '현대 남성'인지 의도는 모르겠으나 제목도 잘 뽑았다.

최은영 '당신의 평화'는 선영의 시어머니가 될 정순, 그 딸인 유진의 이야기다. 정순은 전업주부로 시어머니를 오랫동안 모시고 살며 고단한 삶을 감내해왔다는 피해의식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더(인가?) 며느리가 될 선영에게도 일정 정도 그런 시집살이를 기대한다. 유진은 어릴 때부터 딸인  자신에게만 공감과 위로를 강요해온 엄마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다. 반도의 흔한 이야기지만, 최근 젊은 세대에게는 핫 이슈인 가부장제와 시집살이. 소설 말미, 작가노트에 그런 생각이 잘 담겨있다.

좋아하는 작가인 김이설의 '경년'은 '갱년기(更年期)'를 새롭게 산다는 뜻으로 재해석하여 사춘기 아들을 키우면서 자신 삶의 의미는 잘 찾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누가 이해해 주리? 아들 학교 친구 엄마들, 무심한 남편, 까칠한 아들, 철없는 딸, 싱글로 자유롭게 사는 여동생, 늙어버린 엄마, 그 누구도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에 관심 따윈 없다.

위의 세 편을 이어 읽으면 '현남 오빠에게', '경년', '당신의 평화' 이런 순으로, 한국 여자들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달라져야 하지 않나. 아들보다 딸을 더 우대했던 부모님은 내게 자신감과 자유를 주셨고, 우리 딸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는 작은 소망, 페미니즘이 별 거 있나.

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회사 내 미묘한 기류를 담았는데 너무 색과 힘을 뺀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스릴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각각 시도한 손보미 '이방인', 구병모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김성중 '화성의 아이'는 잘 읽히지 않았다. 페미니즘이라면 현실을 담아 정면 돌파하는 것이 역시 멋지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현남 오빠에게, 38p

언제나 유진이었다. 정순에게 폭언을 퍼붓고 화풀이하는 할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맞섰던 사람은, 그런 이유로 아빠에게 뺨을 맞았던 사람은, 정순과 함께 차례상과 제사상을 차리고 무례한 친척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르던 사람은, ...... 정순의 이유 없는 신경질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독한 말들을 받아줬던 사람은.
전부, 유진이었다.
-당신의 평화, 57p

끼니때가 지나 늦은 저녁을 먹는 남편은 앞에 앉아 있는 나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골라낸 콩이 밥그릇 옆에 지저분하게 굴러다녔다. 아들아이도 콩을 안 먹었다. 아들아이도 남편을 닮아 키가 컸고, 남편을 닮아 비염이 심했고, 남편을 닮아 수학을 좋아하고, 남편을 닮아 이기적이었다.
"물!"
-경년, 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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