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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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의 장편소설 <모래 바람>은 탐정 진구 시리즈 중 네 번째에 해당한다. 진구는 학자였던 아버지 동료교수의 딸이자 어린시절 친구인 연부와 우연히 만나는데, 연부 주변의 사건과 얽히게 된다. 연부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회장 아들 선기와 사귀는데, 그 가운데 사건이 벌어진다. 이번 편은 수학 천재이면서 남과는 좀 다른 인성을 형성하게 된 진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덤 같은 재미가 있었다.
현직 판사이기도 한 도진기 작가는 고진 변호사 시리즈와 진구 시리즈를 번갈아 내며, 한국 추리소설 계에서 입지를 굳힌 흥행 작가다. 상업적이면서 유치하지 않게 재미있게 잘 쓴다.

 

진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할 수 있다‘가 전부 아닌가? 할 수 있으니까 하지, 해야 해서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할 수 있는데도 하지 말아야 하니까 안 하는 사람, 진실로 있기나 했나?
아니, 해야 한다는 게 대체 뭐지? 왜 자식이라는 ‘남‘을 위해, 다른 개체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걸 요구하는 걸까?
그래야 한다는 이유란 어디에도 없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왜?‘라고 물었을 때 ‘엄마니까‘라는 대답 이상을 들어보지 못했다. 논리는 없다. 도덕이 뭔지는 알겠지만 왜 도덕을 따라야 하는지는 아무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수학에는 그런 억지가 없다. 질퍽대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추태가 없다. 오로지 논리와 이성. 밤하늘의 별처럼 고고히 떠서 차갑게 빛나는 그것을 진구는 사랑했다.
28p

고시원에, 만화방에, 길거리에 공부 잘하는 수재들은 수북이 쌓여 있다. 미켈란젤로를 메디치 가문에서 선택했기에 미켈란젤로가 되었듯이, 수재들은 자본가가 간택했을 때 수재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기껏해야 이곳저곳 보따리 들고 강의실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될 뿐이다. 그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선기, 정확히는 선기 아버지 밑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을 일해도 선기와 같은 부를 거머쥘 가능성은 없다. 선기는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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