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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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작년 가을에 구입하고 좀 오래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잘 안 읽힌다 생각했는데 다시 찬찬히 보니 좋은 단편이 많았다.
다소 상업적이고 발랄했던 초기작의 톤이 이번 단편선에서는 좀더 신랄해지고 깊어졌다고 느꼈다.
속물적인 인생-을 들여다보는 느낌. 미세한 뉘앙스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데 능력이 있는 작가다.
다음 단편들 중에서 '밤의 대관람차'와 '안나'가 특히 좋았다.

 

바다는 푸르고 지평선은 머나멀었다. 오후도 좋지만 요코하마는 밤에 참 아름답습니다. 아, 네. 겨울도 좋지만 봄이 가장 좋고요. 네, 그렇군요.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가장 좋은 요코하마보다 조금 덜 좋은 요코하마에 있는 셈이었다. 도달할 데가 남아 있는 겨울 오후. 봄밤에 또 한번 와보셔야죠.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밤의 대관람차. 150p

남편과의 첫 만남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경은 춤을 추다 만났다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부분 네? 하고 되묻고나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경은 자신이 꽤 유니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다. 유니크하다는 게 무슨 의미냐 묻는다면 물론 쉽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건 독특하다는한국어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안나. 194p

안나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언니 감사합니다. 맛있는 밥도 사주시고 제 얘기도 들어주시고. 또 뵈어요.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망하기 위해서, 욕망하기 위해서, 털어놓기 위해서.
-안나. 216p

안나 씨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요?
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나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음, 좋아 보여요.
좋아 보인다?
네, 대체로 그래요.
그리고 안나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간절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하. 내가 정말? 말도 안 돼.
경은 과장되게 웃었다.
내가 되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몰라. 어때요? 우리 한번 바꿔 살아볼래요?
언니도 참.
-안나.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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