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검은 밤 - 상
시바타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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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요시키의 <성스러운 검은 밤>은 BL이 결합된 형사 추리물이다.

범죄자 렌과 형사 아소 two top이 끌고 가는 소설인데, 상/하권 각각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만큼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하고 스토리 구조도 다층적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자 간의 사랑-이라는 금기된 코드를 다루다보니 굉장히 감상적인 장면이나 오글거리는 문장들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범죄와 술과 여자와 조직 폭력의 세계, 가끔 한없이 어두운 감상에 빠지고 싶을 때- 마구 추락하고 싶은 인물의 감정선을 잘 살렸다. 무척 대중적으로 소구될 만한 작품인데 아무래도 여성 취향이긴 하다.

평소에 BL물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약간의 수위 있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고, 그런 데 거부감은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 찾아보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고양이 탐정 쇼타로> 시리즈의 작가다. 여러 풍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인 듯.

 

표지를 보면 BL 느낌이 살짝 난다. 아소는 미중년, 렌은 미청년 정도의.

 

 

사쓰키는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시즈카를 보고 나서 후후 웃었다.
‘당신…… 행복하게 연애한 경험이 별로 없구나. 잘 들어. 남이 아무리 그릇된 믿음이니, 착각이니 옆에서 부르짖어도 진정한 연애에는 아무런 영향도 못 끼쳐. 누군가에게 완전히 푹 빠져서 모든 것을 걸 때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만이 진실인 거야. 그거면 돼. 연애는 그런 법이라고. 연애에 객관적 상황은 존재하지 않아. 연애는 원래 주관적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착각이 연애의 본질이지. 당신은 속고 있으니 제발 눈을 뜨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여자가 남자에게 푹 빠져 있으면 착각 또한 진실이 되는 거야."
상. 176p

렌은 술을 빨리빨리 마셨다.
"뭐 마셔?"
아소가 묻자 렌은 집게손가락으로 카운터 뒤편의 선반을 가리켰다.
"와일드 터키라, 넌 버번위스키를 좋아하는군."
"고상한 술은 별로야. 퍼붓듯이 마셔도 숙취가 없잖아."
"왜 굳이 숙취를 겪어야 하는데?"
"일껏 술을 마셨으니 따끔한 맛을 봐야지."
아소는 웃으며 자신도 술을 한 잔 더 시켰다.
상. 468p

"당신도 마실래?"
아소는 술병을 받아들였다. 버번위스키였다. 병 주둥이에서 나무 탄 냄새가 향긋하게 풍겼다.
"포어 로제스(Four Roses) 플래티너잖아. 사치스럽기는."
"와인에 비하면 껌 값이지. 스와 씨는 미식가랍시고 와인만 마시는데, 어떨 때는 한 끼 식사에 마시는 와인 값만 코스요리 가격의 열 배는 된다니까. 기도 안 차지?"
"스와라는 남자는 고급을 추구하는 모양이군."
상. 517p

"다음번에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
남자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온천 어때? 나 여자랑 온천 가서 맛난 요리를 먹는 게 꿈이거든."
이 남자는 모든 면에서 류타로와 정반대로 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되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이쪽 사정은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한다. 남편이 당직을 서는 밤에도 외박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온천 여행을 가자니 너무 생각이 없다 싶어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남자와 시간을 보낼 때가 제일 편안하다.
하.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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