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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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집에 가서 낮술을 마신다-는

뻔뻔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집인데, 저자가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다.

사실 요즘은 목욕탕이 흔하지도 않고 낮술 마시는 아저씨가 흔하지도 않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술집, 술 집 안 풍경, 안주, 심리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굳이 사볼 것까지는 없으나 애주가라면 좋아할 책.


일드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매 회 마지막에 음식점 탐방을 하는 1분짜리 코너가 있다.

원래 <고독한 미식가> 속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술을 못 먹는 설정인데,

구스미 마사유키는 애주가인지 꼭 술을 곁들여 마시는데, 그 설정이 이해가 되는 책이다.


지식여행이라는 출판사는 처음 보는데, 책 편집이나 디자인이 조금 아쉽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마셔야지. 봄날의 저녁나절, 활짝 핀 벚꽃에 건배.
돼지내장조림과 뽀빠이가 먹는 시금치나물을 시킨다. 멀쩡한 꼰대가 뽀빠이.
맥주를 다 마신 후에는 사케를 시켜야지. 다음 안주는 이 집에서 손수 만든 고등어가 어떨까. 회도 좋고, 초에 절인 조개도 있다. 붕장어튀김도 괜찮겠네.
이 순간이라면 뭐든 될 수 있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될 수 있다. 나는 자유다.

기본안주로 가다랑어 다타키와 꼴뚜기유채된장식초절임이 나왔다.
가다랑어는 살짝 식초 맛이 나는 간장과 간 생강을 뿌려 풍미가 있다.
나는 가다랑어라면 봄다랑어도 가을다랑어도 다 좋아한다.
다타키도 회도 식초에 절여서 밥에 섞은 회덮밥도 좋아한다.
가다랑어 내장을 소금에 절인 ‘술도둑’도 최고지. 술도둑을 안주로 내놓는 술집은 대체로 좋아한다.

가게 안을 둘러본다. 너덜너덜하다. 기쁘다. 왜 그럴까.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가격으로도 여태까지 버텨낸 그 역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만 너덜너덜한 분위기에 맛이 없으면 그 가게는 거의 백퍼센트 망한다.
무너지지 않았던 배경에는 오랜 시간 가게를 꾸려온 주인의 한결 같은 ‘오늘’이 있었다. 이 가게가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번뜩이던 젊은 시절의 욕망이 다 빠져나간 다음의 여유로움도 있다. 맛에도 서비스에도 한눈에 보기에도.
나는 만화나 음악을 대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일에서 ‘멋’, ‘돈’, ‘지혜’를 바라서는 재미없다고.
만화잖아. 노래잖아. 읽는 순간, 듣는 순간 잠시 즐기면 그만이잖아.

오, 노렌의 디자인 감각이 상당히 근사한 내장구이 ‘도리카츠’다.
오래된 듯하다. 꽤 후줄근하다. 그러나 이 또한 믿음이 가는, 기대할 수 있는 후줄근함이다.
술꾼은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지. 사랑받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후줄근함을.

"어떻게 할까?"
나도 시치미를 뚝 뗀다. 당장이라도 마시고 싶은 주제에. 그래서 이쪽으로 걸어아고 있소만.
"어쩐지 좀."
점잔 빼며 운을 띄운다.
"그러게요."
구리 짱도 무슨 말인지 뻔히 알면서 은근히 견제한다. "마시자"는 말이 내 입에서 먼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어디 문 연 가게 없을까?"
이윽고 내가 속내를 드러낸다. ‘마시자’거나 ‘술’이라는 말을 바로 내뱉고 싶지는 않다.
술꾼이란 늘 이렇다.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로라도 돌진하면서. 솔직하게 마시러 가자고 말하지 못하는 멍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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