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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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요시다 아키미 만화 원작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는데

일본의 풍경(사람과 일상을 포함한)을 저렇게 우아하고 산뜻하게 묘사하다니 감탄했다.

그 전에 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펑펑 울었다.

병원의 실수로 친자가 뒤바뀐 것을 초등학생 때까지 키우고 난 후에야 알게 된 가족 이야기다.

<아무도 모른다>도 보았는데 무책임한 엄마 없이 살아가는 4남매 이야기.

<어쩐지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걸어도 걸어도>는 위시 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이 문학동네에서 발간되었는데

제목은 <걷는 듯 천천히>.

제목이 그의 영화 철학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그의 영화 세계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구절들도 있었고

출연 배우들에 대한 잡담 같은 느낌의 글들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왜 그가 그런 담백한 영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19p

예나 지금이나 내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TV 다큐멘터리로 이 일을 시작한데다,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모델이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찍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
34p

어떤 가정에든 다른 집과는 구별되는 그 집만의 약속이나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욕조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든지, 수박이나 딸기를 먹는 방법이라든지. 딴 집에서 보면 ‘엇? 그런 식이야?’ 하고 놀라는 경우도 자주 있다. 우리 가족만의 남다른 가풍은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다. 고레에다 집안에서는 옛날부터 밖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남의 차 앞에서 찍는다고 정해져 있었다. 물론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는 않는다. 그러고서 마치 자가용인 양 자세를 잡고 찍는 것이다.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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