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 2016년 제6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채원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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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6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베를린 필>에 실려 있는

권여선의 단편 '삼인행'은 이혼 직전의 부부와 그들의 친구가 떠나는 짧은 강원도 여행 이야기다.

40대 정도로 돼 보이는 그 오랜 친구들은, 여행을 가서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가장 골몰하고

술을 마시며 다투고, 그 비슷한 쓸데없는 다툼이 예전에도 늘 그렇게 있었을 것 같이.

그러면서 다음날 또 멀쩡하게 서로 커피를 타 준다.


그들도 젊은 시절에는 좀더 형이상학적인 고민들을 했을 것 같아

그 지점이 서글프다.

나이를 먹으면 노회해지고 세상도 좀 알겠고 그렇게 변하는데,

그만큼 더 세상에 기대가 없어지고 사소한 것들이 중요해진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그 지점에서 출발, 뭔가 더 나은 삶을 살아야지 각오하지 않으면

금방 스르르 녹아 뭉개지는 것이 매일의 삶인 것이다.

 

 

 

왜 안 된다는 거야?
저녁에 대게 뺨치게 맛있는 홍게를 먹어야 하거든. 규가 말했다.
저녁은 저녁이고, 지금 좀 먹으면 어때서?
안 돼. 햄버거는 포장해가서 밤에 맥주랑 먹기로 계획이 다 잡혀 있어. 여행 와서 먹고 싶을 때 제멋대로 먹다가는 정작 맛있는 건 하나도 못 먹고 가게 된다고. 1박 2일 동안 몇 끼나 먹을 수 있나 한번 따져보라며 규는 오른손을 펼쳤다. 봐라, 오늘 끽해야 세 끼. 내일 끽해야 두 끼. 도합 다섯 끼밖에 더 먹겠냐 하고 손가락 다섯을 꼽더니, 그중 한 끼는 이미 먹었고, 한 끼는 포장했고, 하며 몹시 아쉽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따져보니 이번에도 햄버거를 사기 위해 22킬로나 우회한 셈이었는데, 훈은 그렇게 오래 만나왔으면서도 규와 주란에게 이토록 이상한 식탐과 기계적인 계획성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게 놀라웠다.
70p

너도 진짜 지겹다. 훈아.
나도 너희들 지겹다.
나도 나도! 나도 너희들 지겨워. 너도 독재. 나도 독재. 주란도 독재. 알고 보면 우리 다 독재다. 그러니까 우리의 그 무엇이냐, 그 뭐냐, 여행을 하면 알게 된다는 그런 거,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 너무 싫다! 너희들 그런 거 너무 싫다!
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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