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평점 :
사노 요코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유명한 작가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를 남편으로 두었다-는 것은 지금 알았음.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할머니가 된 작가는 "사는 건 별 거 아니야" 하며 시원시원한 필치로 일상과 인생에 대해 써내려간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산문집은 평타는 치는데, 이 책 <사는 게 뭐라고>도 예외는 아니다.
암을 앓고 나서 한국 드라마를 끝도 없이 봐서 목에 병이 왔다는 일화는 웃기면서 슬프고,
간혹 보이는 삶에 대한 성찰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낸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일본 할머니로서의 박력도 상당하다. 어떤 의미에서의 롤모델.
가끔 속시원하게 웃어주며 읽을 수 있는 책.
빵이 다 떨어져서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걸어서 2분만에 도착했다.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셀프서비스용 쟁반을 들고 막다른 곳까지 슬슬 걸어갔다. 작은 테이블 딱 한 자리가 비었고, 벽을 따라 테이블이 5개 정도 늘어서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벽을 등지고 앚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전부 늦은 아침을 먹는 듯했다. 전부 홀몸으로 보였다. 예전에 파리 변두리의 식당에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는 노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목을 앞으로 굽힌 채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씹고, 기이할 정도의 에너지로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중략) 지금 여기,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할머니들은 파리의 노파를 서서히 닮아간다. 13p
옛날에는 모든 할머니들이 그랬다. 쪼그려 앉아 주름진 양손에 고이고이 찻잔을 감싸 들고 조심스레 차를 홀짝였다. 눈 앞에서 제비가 날아가건 장맛비가 내리건 고양이 같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한 녹차를 멍하니 마시고 있을 뿐이다. 105p
<친구> <실미도> <엽기적인 그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의 영화도 보았다. 훌륭하다. 그 나라는 어쩌면 이다지도 정이 두터울까. 그들은 사랑을 믿는다. 일본인은 사랑을 믿으면 촌스럽다고 한다. 영화도 소설도 부유하는 인물뿐이다. 순애보를 비웃는다. 120p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화사한 마음이 생기면 불륜이며, 나 같은 할머니에게는 범죄나 다름없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인식은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부부 생활 중 몇십 년은 몹시도 괴로우리라는 것을.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후 때문이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화사한 마음을 건네받지 못하는 동지끼리 툇마루에서 말없이 감을 깎아 먹고 차를 마실 날을 위해서다. 22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