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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편혜영 장편소설, <선의 법칙>은 2015년 6월에 발간된 장편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읽다보면 영화적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순수문학으로 분류되지만, 장르적 문법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래서 난 그녀의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서쪽 숲에 갔다>와 이번 작품이.
가스 폭발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딸인 윤세오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흔하디흔한, 친구 따라 다단계에 빠진 젊은 여성이다.
그와 다른 축에 있는 여교사 신기정은, 어느날 데면데면 별로 안 친하던 의붓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른 한편에 이수호라는 사채회사 직원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한 경험이라고는 없는 찌질한 남자. 늘 침을 뱉고 상사한테 깨지는 캐릭터.
이 세 사람의 교차점은 어디일까, 소설은 그걸 따라나간다.
그 안에서 누가 누구를 죽이려는 의도 같은, 서사 장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점이 이 소설을 순문학이게 만든다.
최선을 다해 '선의 법칙'을 따라 살다 보면 이번 생이 좀더 좋아질 것이다. 좀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14/pimg_7830141331239955.jpg)
흰 표지의 책은 최소한의 디자인만 하여 단정하다.
곧 부서질 것만 같은 인생처럼 연약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일. 신기정은 그것이야말로 트집잡을 수 없는 인생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대답은 몹시 못마땅했다. 동생이 모든 걸 우연과 운에 맡기고 되는대로 사는 것 같아서였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저 삶을 방치한 것이었다. 신기정이 생각하기에 삶은 잡풀이었다. 손대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고 뻗어나가 대지를 잠식했다. 손을 대면 통제되고 다듬어지고 뽑히고 잘만 하면 모양을 갖출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 그렇게 평생 혹독하게 살아왔으면서. 31p
그런 소리로 채워진 아침과 밥, 낮과 밤, 밤과 밤은 아무리 돌이켜봐도 시시하고 단조로웠다. 그럼에도 이제는 아령 들어올리는 소리와 돼지고기 자박자박 구워지는 소리, 트림 소리 같은 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다. 세오야 물 떠와라, 세오야 밥 먹자, 세오야 청소 좀 하자, 세오야 드라마 안 볼래, 세오야 창문 좀 열어라, 세오야 빨래 개자, 같은 세오야를 넣은 짧고 단순한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윤세오는 그런 소리와 문장을 잃었다. 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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