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百(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와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다.

담백한 소설이다.

처음에 읽으면서 말장난인가, 하다가 빠져든다. 점점.

약간 모자란 사람들이 나누는 듯한 대화가 백미.

말로 가지고 하는 여러가지 장난. 말장난. 그런데 뼈가 있음.

 


 

철거 직전의 전자상가를 배경으로 형편 어려운 사람들, 은교와 무재는

작은 어떤 것을 나눈다. 그 둘은 부족하고 모자란 대로 함께다.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있는데

독자가 그렇게 느끼니, 그 바램은 이뤄졌네.


이 책은 친구 흰당이 선물해준 것이다.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책꽂이를 뒤적이고 있으니, 읽어보라며.

그때 제대로 잘 읽고 이야기 나눴으면 좋았을 것을.

인생은 알 수 없다. 부질없고.

 

 

여기 좋은 구절을 남겨둔다.

 

계속 걸었다.

이따금 발밑에서 축축한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무재 씨, 하고 내가 말했다.

섹스 말인데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좋을까요.

좋으니까 아이를 몇이나 낳는 부부도 있는 거고.

글쎄 좋을지.

궁금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여기서 나가면 해 볼까요.

나갈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고 숲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고 싶은데요.

좋아하면 되지요.

누구를요.

나를요.

글쎄요.

나는 좋아합니다.

누구를요.

은교 씨를요.

농담하지 마세요.

아니요. 좋아해요. 은교 씨를 좋아합니다.

-21p


여 씨 아저씨는 단팥과 얼음이 잘 섞이도록 수저로 빙수를 비비며 말했다.

은교는 팥 맛을 아나.

팥은 달아서 잘 먹지 못해요.

별로 달지 않아.

팥이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빙수를 한 수저 먹느라고 잠깐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젊었을 때는 나도 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당긴다고나 할까,

맛이 오묘하잖아. 달다면 달고 담백하다면 담백하고 맵다면 맵고 고소하다면 고소한 와중에 어딘지 씁쓸한 맛도 있단 말이야.

-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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