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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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을 여럿 읽어봤지만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선머스마 같은 이미지의 여자애였다.

그즈음 아는 선배는 김애란과 술자리를 가졌다며 자랑해댔다. 치사하게-

 

<침이 고인다>,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에 비해 별 느낌을 못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의 단편집 <비행운>을 읽었다.

적나라한 인생을 경쾌하게 그리는 데 성공한 이 작품집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조금 눈물났고 조금 웃겼고 조금 공감했고 조금 재미났다. 한마디로 죽여줬다.

 

 

한국소설은 문장 읽는 맛이 아무래도 더 나서 좋은데 작가층이 참 얇다.

읽고 싶어도 읽은 책이 없어서- 물론 내 편협된 취향 탓도 있지만- 못 읽는다.

그래서 이렇게 읽을 만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소설이 나오면 참 반갑다.

나의 경우 읽다보면 비슷한 정서를 가졌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작가가 몇 명 있는데

권여선, 김이설, 오현종, 강지영에다가

천운영, 은희경, 심윤경, 그리고 김애란을 넣어야겠다.

적고보니 모조리 여성작가, 확실히 편향된 취향이네.

 

 

여기 실린 단편은 전부 8편이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녔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 그때의 난 아웃사이더였고 발견을 기다렸던 여자애였다. 이 단편의 결말은 기가 막히다. 순정으로 시작해 개그로 마무리지을 줄 아는 작가의 솜씨. 문득 나의 대학시절을 기억하는 이를 만나고 싶어진다.
벌레들 -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단편소설로서 너무 전형적이다.
물속 골리앗 - 요것도 나한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며 책장을 넘긴 단편.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용대가 명화를 만났다. 명화는 조선족이고 용대는 택시기사 아저씨. 스토리는 말할 수 없고, 이런 인생 참 지랄맞다 싶어 눈물이 났다.
하루의 축 - 인천공항 청소용역업체 직원 기옥씨의 이야기.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세 편 중 하나. 우리는 청소부를 그냥 없는 걸로 치며 지나친다. 우리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도 그들의 인생이, 구질구질한 인생이 있다. 작가는 희화화에 능력이 탁월하다.
큐티클 - 네일숍에 가본 적이 있는가. 나도 한두 번 가봤는데 갈 만한 데가 아니더라. 요것도 재미있게 읽었다.
호텔 니약 따 - 두 절친의 여행기. 맞아맞아 손뼉을 속으로 치며 읽었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지. 소설로서의 완성도보다는 개인적으로 그냥 호감이 가는 단편.
서른 - 이 책에서 최악의 세 편 중 하나. 말하려는 소재에는 공감이 가나 전달방식이 재미가 덜하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마음에 참 안 든다.

일본 엽기 소설 같은 느낌-이어서 책의 분위기 전달에 실패한 것 같아.

 

 

다음은 책 속에서 발췌-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13p

 

20년 넘은 보일러는 따로 독립된 공간이 아닌 부엌 한쪽에 설치미술처럼 걸려 있었다. 그게 거기 있음 안 되는데, 그게 거기 있음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동정하고 나무라는 식으로, 난해하게. -하루의 축, 173p

 

"왜,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이란 소설 보면 주인공이 국화빵을 처음 먹고 놀라는 장면이 나오잖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래요?"

"그래.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그때 걔가 엿이나 꿀과 다른 팥앙금 맛을 뭐라 표현하냐면, 그건 서울의 감미, 대처의 추파였다, 뭐 이런 말을 해."

"......"

"근데 난 요새 우리 세대 도시의 감미는 이 커피가 아닐까 싶어. 에스프레소나 아이스모카 같은 거. 카라멜마키아토나 아이스그린티 블렌디드 같은 거 말이야."

선배는 광고 회사 직원답게 감각적으로 말했다. -큐티클, 239p

 

다빈은 두 사람과 더불어 국문과 삼총사라 불리는 친구 중 하나였다. (중략) 자신의 꼭짓점이 두 사람보다는 좀 먼 곳에 놓여 있어, 세 사람의 관계가 어여쁜 정삼각형을 이루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빈이 울적해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호텔 니약 따,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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