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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노스탤지어의 작가'라 불리는 온다 리쿠
그녀다운 혼성 장르의 소설 <달의 뒷면>은 미스테리, 연애, 휴먼, 호러 등 다채로운 색깔을 띄고 있다.
느긋한 음악 프로듀서 다몬이 물의 도시 야나쿠라에서 펼치는 모험담인데
차분한 사색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다양한한 층위의 책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물 속에 사는 어떤 이상한 존재-일본 민담 속 갓파(河童)-가 있다는 가정하에
1955년 발표된 미국 SF소설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이 소설은 외계인 신체강탈이라는 소재로 공산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공포를 풍자했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정치적 함의를 지우고 생명의 본성에서 볼 필요도 있겠다. 서평 참조
이 잭 피니의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1956년 돈 시겔 감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신체강탈자의 침입)'
1978년 필립 카우프만 감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우주의 침입자)'
1993년 아벨 페라라 감독 'Body Snatchers(바디 에일리언)'
2007년 올리버 히스비겔 감독 'Invasion(인베이전)'
이 중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바디 에일리언'을 예전에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고치가 되어버린 인간(자신의 가족)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고발하는, 단체로 지르는, 끔찍한 비명.
어느날 가족이 외모는 같은데 뭔가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일일 것이다.
왜 주변 사람들이 사라졌다 돌아올까, 그리고 돌아온 그는 이전의 그가 맞는가.
작가는 이러한 소재를 차용하지만, 단순히 모험소설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다몬과 그를 둘러싼 주인공들의 고민이나 그들간의 심리적 거리, 치유 등을 잔잔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온다리쿠표 소설(네크로폴리스 같은 모험소설 계보의)이었다.
예전에 쓴 온다 리쿠 소설의 계보
표지는 너무 평범해! 소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디자인한 것 같은 밋밋한 그림이 실망스럽다.
오른쪽 귀퉁이에 작게 적은 일본어 제목과 초승달 모양이 가장, 마음에 든다.
"선배는 <바디 스내처>라는 소설 본 적 있어?
난 고등학교 때 읽었거든. 지하실에 들어가면 딱 누에콩처럼 생긴 꼬투리에 생성중인 인간이 들어 있는 장면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매년 누에콩 철만 되면 콩을 깔 때마다 그 소설이 생각나." -120p
책 읽기를 좋아했다. 물론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방황하는 청춘'과 '감정적인 갈등'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알기 위해서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알고 싶어졌다. 이윽고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들을 '읽는' 쪽이 더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눈앞에서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이들을 '읽는' 편이 훨씬 복잡하고 스릴 넘쳤다. 당연히 금방 다 읽히는 인간도 있고, 책장이 영 넘어가지 않는 인간, 아무리 읽어도 다음 장이 읽는 인간 등 가지각색이었다. '읽는' 데 관해서는 탐욕스러운 나는 이내 '읽는 보람'이 더 있는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더 긴 책, 더 재미있는 책을. -126p
열려 있던 도서관 입구로 흡사 투명한 비닐 융단을 깔듯 두께가 대략 5센티미터 되는 물의 막이 소리도 없이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끈끈한 물엿처럼 말린 끄트머리가 도서관 내부의 조명을 반사했다.
다몬은 갑자기 스티브 맥퀸이 나온 영화가 생각났다. 그가 젊었을 때 출연한 B급 호러영화다. 우주에서 온 물컹한 아메바 같은 물체가 점점 인간을 집어 삼킨다. -140p
"남자는 말이지, 가끔 따로 노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는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잔뜩 맫ㄹ려 있거든. 하지만 여자는 방향이 다른 화살표가 잔뜩 매달려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자기 화살표하고 여자 화살표의 방향을 맞추려고 하는데, 여자 화살표는 방향이 전부 같은 게 아니니까 어느새 다른 화살표하고 정면충돌한다든지 입체적으로 교차하고 그래." -14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