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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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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해서 꾸준히 쓰고 있는 작가 김이설. 이번 소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을 둔 식당에서 일하는 아기 엄마가 주인공이다. 동동거리며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고, 서울에서 경기도로 봉고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백일 된 갓난아기에게 젖도 줄 수 없는 여자. 아버지는 암으로 누웠고 두 동생은 돈만 축내고 열일곱 살 때부터 집을 위해 일했던 여자. 그런 여자의 삶은 TV 프로그램인 동행에 나올 만하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질 뿐이고, 인생은 함정 투성이지만 주인공은 말미에서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라고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선택한다. 여자의 생활력은 곧 생명력으로 이어질 것처럼 강하고 질기다. 그리하여 재투성이지만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역설 같다.

작가는 물가를 배경으로 한 단편 두어 편을 함께 엮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었노라,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그러게, 200페이지가 좀 못 되는 분량이 아쉽긴 하다.  

아름다운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진 유화풍의 표지는, 소설의 내용보다 미화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소설 속 여자가 벌어먹고 사는 도구인 '짧은 치마'를 상징하는 듯하다. 겉표지를 벗기면 드러나는 황금색 속표지가 단정하니 더 마음에 든다. 마치 발현되지 못하고 감춰진 여자의 고귀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뜨거운 죽 한그릇을 앞에 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뜨거운 이걸 잘 먹여야겠단느 생각뿐이었다. 크게 한술 떴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아이를 먹일 때는 호, 호, 호, 세 번씩 불어 식혀 먹였다.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 한 번, 나 한 번. 아이는 죽 그릇이 다 빌 때까지 입을 쩍쩍 벌려,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손톱보다 작은 이가 박힌 아이의 붉은 입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분명 내 가슴을 열어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는데, 내 손으로 먹을 걸 떠먹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 잘 먹었다. 빈 그릇을 보여주자 아이가 맑게 웃었다. 자알 머거따! 저도 나를 따라 혀 짧은 소리를 냈다. 먹을 걸 주니 이제야 엄마로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나에게 웃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덥혀졌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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