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라의 돼지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그 전에 읽은 <인체모형의 밤>, <오늘밤 모든 바에서> 모두 특이했었던 작가 나카지마 라모의 76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출간되자마자 구입하고는 읽지 못했다. 프롤로그 부분에서 잘 안 넘어가길래 그냥 던져둔 것. 그러다가 어느날 손에 잡았는데, 몇 페이지 안 되는 프롤로그는 건너뛰고 시작하니 효과가 있다. 무척 재미있어서 엄청 빠른 속도로 읽히는 책이었던 것! 

아프리카 주술 문화를 주로 연구하는 오우베라는 대학교수(민속학자인 듯)가 중심인물인데 어설프고 술에 절어 사는 중년남자인가 싶지만 어느 순간은 예리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아름다운 아내 이쓰미, 아프리카에서 잃은 딸 시오리, 아버지와 농담따먹기가 되는 중학생 아들 오사무가 그의 가족. 1부는 이쓰미가 이상한 종교에 빠져들면서 곤경에 처하는데 이를 오우베와 그의 조수 도만, 마술이나 기적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미라클맨이 해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미스테리/스릴러/공포물/모험소설 등이 결합된 혼성 장르의 성격이 강한 이 소설에서 이 파트는 사회파 미스테리 같은 느낌일까.

2부는 방송국의 기획취재로 오우베 일가와 도만, 숟가락 구부리는 초능력 청년 기요카와, 방송국 스태프 등이 아프리카로 떠나고 거기서 겪는 여러가지 모험담이 펼쳐진다. 그들은 아프리카 주술 문화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바키리라는 흑마술사 분위기의 주술사를 만나고 그와 운명적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쓰긴 그렇고) 바키리의 키시투(주술 도구 같은 것)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 밝혀진다. 이 파트는 스릴러 장르의 느낌이 강하다.

바키리를 피해 도쿄로 들어온 일행. 그러나 바키리의 손길은 여기까지 미치고, 오우베 일행에게 불행이 하나둘 닥쳐온다. 그리고 방송국을 배경으로 오우베와 바키리의 운명적인 대결이 펼쳐진다. 전반적으로 이 파트는 공포물의 분위기가 강하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교수 오우베와 카리스마 넘치고 음험한 아프리카의 대주술사 바키리 두 주인공의 캐릭터 조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느낌이다. 오우베 일행이 바키리를 만나러 가서 문답하는 장면은 참으로 박진감 넘친다. 작가의 유머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인물들의 대화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일본의 사이비 종교 문제는 꽤 심각한 모양으로, 관련된 소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나카지마 라모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프리카 주술문화와 일본의 종교문제, 초능력의 진위 등 다양한 학술적 주제를 꽤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철저한 자료조사 탓일까. 무척이나 지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재미도 확보한 소설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었고 매력을 많이 느꼈던 작품이다. 그 전까지 희미했던 작가에 대한 인상이 확실히 굳어졌다. 완전히 반해 버렸다! 

   
 

도만은 기요카와에 대한 인상을 수정했다. 이 스무 살 넘은 청년 안에는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남아 있다. 그것이 현실과의 관계를 나쁘게 하고 있다. 어른들의 현실에 끼어들기 위해 어린 그는 숟가락을 구부려서 내밀었다. 그러나 구부러진 숟가락은 어른 사회에서는 판독할 수 없는 언어다. 기요카와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바깥쪽에서 어린아이인 채로 숟가락을 계속 구부리고 있다. -249p

 

 

 

   
 

"언어야말로 모든 것이 아닌가.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뜯어 밖으로 내던진다. 그게 바로 '말'이다."  

오우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일본어에서도 '말하다'는 활에서 화살을 '놓다'와 같은 말이지." 

"그래서, 아들이 아내에게 푹 빠져 어머니를 홀대하게 되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저주를 건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렇게 말하지. '네 일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되리라.' 이는 아이가 한 명도 자라지 않고 자식을 남기지 못하리라는 뜻이다. 이 한마디를 입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 바로 '저주'다." 

-392p 

 
   

 

 

 

오우베는 미네랄 워터를 컵에 따라 울대뼈를 요란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단숨에 마셨다. "술 깨는 물은 정말 맛있어. ...... 술보다도 맛있을지도 몰라."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그러면 차라리 술을 끊고 물만 마시는 게 어때?" "술을 끊으면 물맛이 없어지잖아." -4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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