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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를 읽을 때는 2권짜리 분량에, 시대를 통사적으로 가로지르는 큰 호흡과 정공법의 서사가 큰 재미를 누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단편집 <폐허에 바라다>는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다. 마치 미국판 하드보일드가 일본으로 건전하게 이식된 느낌이랄까. 요코야마 히데오와 비슷하지만 좀더 온도가 낮은 느낌!
그리고 읽게 된 카와쿠보 형사 시리즈, <제복수사>가 단편집이라면 <폭설권>은 장편소설이다. 제복수사에 수록된 단편들도 재미있었지만 폭설권은 사사키 조 최고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3월 히간(춘분과 추분 사이 7일간) 무렵 홋카이도에 찾아오는 폭풍설(暴風雪)을 배경으로 하는데, 도로들이 통제될 정도의 이 극악한 폭풍설 자체가 책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카와쿠보가 부임하기 전 과거, 폭풍설을 뚫고 하교하던 초등학생 7명이 실종되었다가 나무 아래에서 동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실제로 20명의 학생들이 죽은 실화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러한 배경하에 카와쿠보가 시모베츠라는 작은 마을에 부임한 이래 처음으로 맞는 폭풍설. 장편소설이어서인지 카와쿠보의 시점으로만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리는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조금씩 이야기는 전개된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다양한 인물 군상. 그 리얼한 인생사들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폭풍설에 갇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하나하나 거대한 탑을 쌓아올리듯이 작은 이야기들이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팡 하고 몰아서 터뜨리는 힘이 대단하다.
오랜만에 감동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형사소설이다. 사사키 조에 대한 신뢰가 무한대로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