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다'와 '알아보다'라는 두 동사는 하천의 비슷한 유황(流況)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발견하다'와 '알아보다'는 '태어나다'와 '늙다'의 차이와 마찬가지다. 내가 강물의 범람이라고 말한 (河床의 밖으로 벗어나는 것) 극대의 순간부터, 바야흐로 엄습해오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알아보다'라는 동사는 낙뢰의 섬광만큼 충격적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매혹된, 그보다 훨씬 더 횡포한 물의 움직임이다. 열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운 신명(神明) 재판*이다. 넘어가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은 행운이 따르든 치명적이든 간에 극단적이기 때문에, 이 넘어가기는 위험 천만이다. * 물, 불 따위의 시련으로 판결을 내린 중세 시대의 재판. -14쪽
간통이 가장 강렬한 관계라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일까? 완벽한 비밀이 거짓말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고 더 밀도 높은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부부간의 부정(不貞)이 인간의 언어에 뚫릴 수 있는 어떤 틈새, 나날의 인간 관계와 교류 그리고 주어진 약속의 완전한 노예로 만드는 거역할 수 없는 인접성에 뚫일 수 있는 틈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을 벽에 뚫린 틈새, 엄밀히 말해서 지속되는 모든 것, 즉 식사 · 밤 · 업무 · 질병 · 낮이라는 매일매일 이루어가는 일상사인 이 산에 뚫린 틈새라고 생각했을까? -19쪽
사랑의 발생은 어떤 목소리에 대한 복종일 수 있다. 어떤 목소리의 억양에 대한 복종.-25쪽
환영의 습격을 받는 것, 여행을 하는 것만이 예술의 본질은 아니다. 되돌아와서 악보를 기록하는 작은 용기가 추가로 필요하다. 열려 있고 벌려진 채 있는 내면의 색청(色聽)*으로부터 악보를 적어내는 일은 작은 용기, 뒤로 한 발 물러서기, 가늘게 눈을 뜨고 보아야 하는 용기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절머리나는 일이다. 모차르트가 로홀리츠에게 했던 매우 단순한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명확하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전체를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파노라마를 구성하는 것이 문제다. 양팔로, 단 한번에 전체를 통째로 끌어안아야 한다. '전체를 한꺼번에' 단번에 기록해야 한다. 전체를 앞지르는 것은 동일한 시간 내에서 그것을 애도함이다. 그것을 영원한 결별 안에서 붙잡아야만 한다.-28쪽
아름다운 텍스트는 발음되기도 전에 들린다. 그것이 문학이다. 아름다운 악보는 연주되기도 전에 들린다. 그것이 미리 준비된 서양 음악의 찬란함이다. 음악의 원천은 소리의 생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듣기라는 절대 행위 안에 있다. 창조 행위에서 이 절대 행위는 소리의 생산에 선챙한다. 작곡이라는 행위가 이미 그것을 듣고, 그것으로 작곡을 한다. 연주가 이미 들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듣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을 솟아오르게 한다. 그것은 의미하기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드러내기도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듣기이다.-60쪽
사랑에 빠진 사람들, 연인들, 부부들이란 동일한 인간을 지칭하지 않는다. 사랑은 성욕과도 결혼과도 대립된다. 사랑은 도둑질에 속하지 사회적 교환에 속하지 않는다. 태고의 어둠 이래로 사랑에 빠진 자는 오래 전부터 그의 가족, 친척들, 그리고 집단이 그에게 마련해준 교환에서 빠져나온 여자 혹은 남자를 가리킨다. 동화들은 도주를 결합에 대립시키는 것과 상당이 유사한 방식으로 사랑과 결혼을 대립시킨다. 옛날이야기에서 사랑은 언제나 세 가지 특성으로부터 정의된다. 즉 이해하기 어려운 쌍둥이와 같은 사랑(낯선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거의 근친상간적인 화합을 발견한다), 한눈에 반하기(갑작스럽고, 예비되지 않았으며, 말없는, 매개되지 않은 홀림), 끝으로 자살이나 살인 혹은 그를 죽게 하거나 그들을 저주받게 만드는 치정 살인이 그것이다. -65쪽
누가,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될 쓸데없는 말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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