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경욱 작가의 변신,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한 권의 단편집을 읽었고 다른 책들은 살짝 들추어 보기만 했지만, 김경욱 소설의 인상은 '현대적이고, 지적이고, 난삽한' 어느 지점에 있었다. 그런데 연애소설을 쓰자 작정한 듯 보이는 이번 작품은 말랑말랑하고 직설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이 변신에 꽤 만족한다. 

대학 시절 노래패에서 만났다가, 사회인이 되어 재회한 백장미와 김명제. 그들이 재회할 확률은 김명제의 계산에 의하면 몇만분의 1이었던가. 아무튼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사이가 틀어져 이혼을 하고, 다시 만나고, 또......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얼마나 우연에 의존하며 찰나적인가. 대학 시절 엠티에서 밤에 손을 잡은 '그, 혹은 그녀'는 누구인가-라는 에피소드는 참 공감 가는 이야기다. 또 백장미가 김명제를 소개시키려고 아빠의 치킨집에 데려가 하는 3가지 테스트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뼈를 끝까지 발라 먹는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키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들을 통과하는 데 작용했던(후에 밝혀지는) 우연의 겹침.  

그들의 연애 이야기지만, 나는 자꾸 나의 이야기들과 겹쳐 보여서 때론 눈 앞이 흐려졌다가 슬며시 웃었다가 했다. 작가가 1971년생이어서 그런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나 문화적 장치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편안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더 마음에 드는 소설 <동화처럼>은 쉽게 읽히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연애소설이다. 대중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얼음 공주'와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를 차용하여 영리하게 유치해지는 면을 피해간 측면도 있다.

민음사 발간인데, 양장본 치고 판형은 좀 기름한 듯 크고, 겉표지는 속과 좀 잘 분리되는 느낌이 있지만, 속표지는 깔끔한 흰 색으로 재질이 마음에 든다.  

   
 

라이프니츠는 말했다. 이 우주는 선택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신이 고른 최선의 세계다. 라이프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을 명제는 이제 하나 더 갖게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연인과 키스를 하고 나서 그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126쪽

 

 

 

   
 

비와 눈과 별에게는 죄가 없다. 죄는 비와 눈과 별을 핑계 삼는 인간들에게 있는 법. 비가 와서 그립다고, 눈이 내려 심란하다고, 볕이 좋아 쓸쓸하다는 인간들에게. 기별은 잊을 만하면 날아왔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볕이 좋은 날. 읽은 메일을 지우지는 않았다. 메일 보관함에는 비와 눈과 볕이 쌓여 갔다.  -182쪽 

 
   

 

 

 

명제는 한서영을 들쳐 업고 바에서 나왔다. 온 세상의 라일락 향을 짊어진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명제가 짊어진 것은 가 보지 못한 세상의 모든 길일지도 몰랐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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