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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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탐정이 주인공인 하드보일드 소설은 드물다. 바로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탐정 시리즈가 그 중 하나. 우리나라에는 묘하게도 완결편인 <다크>가 먼저 출간되었고, 이번에 기리노 여사의 데뷔작이자 미로 탐정의 탄생을 알리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출간된 셈이다. 기리노 여사의 작품들 중에 최고로 꼽는 <아웃>, 그리고 <다크>. 나는 이 작가의 하드보일드한 서술법이, 그런 여자 주인공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작품 초반부에 미로는 아버지가 탐정이고 어머니는 없는 30대 초반 여성으로 묘사된다. 직장은 그만두었고 하는 일은 딱히 없다. 그러던 중 친구 요코의 행방불명을 알게 되고, 요코가 거액을 들고 튄 덕분에 야쿠자로부터 덩달아 의심을 받는다. 1주일 안에 1억엔을 되찾아올 것-이라는 뻔뻔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응한다. 그 과정에서 요코의 애인 나루세와 같이 행동을 하게 된다. 작품 끝에서 미로는 드디어 탐정 비슷해진다. 

사건을 해결하다보니 그녀는 터프하고 제멋대로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고 사건의 핵심을 향해 잘도 달려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때론 위험에 빠지기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탐정인 것이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걸까. ㅎㅎ 

요코라는 행방불명된 여성의 캐릭터도 참 오묘하고 멋지다. 그녀의 화사한 매력이 미로의 무덤덤함과 대조되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출세를 위해 어떤 쇼맨십도 마다않는 르포라이터 요코. 그녀 주변에는 시체애호가, 나치주의자 같은 위험 인물이 그득하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돈을 갖고 튄 걸까. 아니면 살해당한 걸까.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은 풀리리라. 

<다크>보다는 좀 연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미로의 탄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역자 후기에는 기리노 여사가 미스터리 장르을 쓰는 것의 어려움을 도시락 만드는 것에 비유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장르 규칙에 얽매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들이 전형적인 장르소설에서 벗어난 것이 많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 공감이 가는 게, 본격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좀 갑갑증을 느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점을 벗어난 순수유희로서의 추리물에 대해서는, 뭔가 좀 아쉬울 때가 있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출간 리스트

  • 1993년 9월 : 얼굴에 흩날리는 비 
  • 1994년 6월 :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 1995년 10월 : 물의 잠, 재의 꿈 
  • 2000년 6월 : 로즈가든 
  • 2002년 1월 : 다크 
   
 

"기리노 나쓰오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도시락 같은 것이라 체재를 정돈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잡지 인터뷰에 응했는데......(하략)" 이에 대란 기리노 여사의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귀한 미스터리를 도시락 따위에 비유했다고 화를 내고 있다.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도시락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5년간 매일 아침 도시락을 쌌다. 지금도 싸고 있다 (중략) 도시락이 어떻다는 것인가. 불평을 하려면 도시락을 싸보고 나서 하기 바란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남자는 도시락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407쪽,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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