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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기억들 ㅣ Medusa Collection 4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선의와 악의가 있다. 악의는 끝도 없이 선의를 덮치려고 꿈틀거린다. 사람 속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악의가 자리잡아 자라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밤의 기억들>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걸작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에서 친구가 추천한 책이라며 언급한 걸 보고 이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심문>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이제야 손에 든 바로 그 <밤의 기억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나는 작가가 구축해놓은 마치 인셉션 같은 가상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폴 그레이브스는 케슬러라는 악당을 뒤쫓는 슬로백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소설을 쓴다. 첫 장면에서 그는 소설 속 슬로백을 죽이는 엔딩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시리즈는 반복되고 악당은 강해지고 형사는 점점 노쇠해진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실에서 그는 혼자 생활한다. 철저히. 그 이유는 책을 읽다보면 드러난다. 과거의 아픔. 무덤처럼 묻어둔 기억. 그런 그에게 리버우드의 어떤 부유한 여성이 50년 전 살인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 단, 진짜 사건 해결이 아닌 '소설가로서 그럴 듯한 범인을 창작해 내라'는 주문사항. 탐정이 아닌 소설가에게 사건을 의뢰한 이유는 그것이다. 이 주문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는 짐을 싸서 리버우드의 오두막으로 들어가고, 과거 사건의 퍼즐 맞추기에 몰두한다.
나중에 알게 된 5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은 참으로 추악하다. 그 작업은 그의 과거의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고- 그는 엘리너라는 다른 여성과 사건을 추적하면서 점점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의 과거의 진실. 왜 그는 자신의 누나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는가? 라는 부분이 밝혀지는 대단원. 정말이지, 놀라운 반전이다. 너무나 끔찍한 진실을 담고 있는 그 반전은 인간의 악의에 대해 끝도 없이 반추하게 만든다.
소설적인 재미도 풍부해서 밤마다 이 책을 조금씩 읽었던 시간은 참 행복했다. 토머스 H. 쿡은 정말 최고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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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레이브스가 생각해도 슬로백은 이제 중년의 나이였고, 아이도 없이 혼자였다. 무거워져 자꾸 땅으로마 가라앉는 몸뚱이는 살과 피가 그득한 자루에 불과했으며, 정신은 소름 끼치는 장면과 섬뜩한 비명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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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그레이브스는 이웃 사람들이 집에 드나들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산다는 데 평온함을 느꼈다. (중략)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가 느끼고 싶은 것은 단지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불침번을 서듯 그를 지켜보고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끔찍한 악마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고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9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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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있을 때 실험을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느 방에 가면 탁자가 하나만 있다더군요. 엄마와 딸을 서로 마주 보고 앉게 한대요. 각각 의자에 묶은 다음 몸에 전선을 연결하는 거죠. 딸은 한쪽 손을 놀릴 수 있어요. 전기 스위치를 만질 수 있죠. 명령을 내리면 딸은 스위치를 당겨야 해요. 그러면 엄마한테 전기가 흐르죠. 만일 딸이 명령을 거부하면 대신 딸의 몸에 전기가 흘러요. 이게 실험이에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딸로 하여금 친엄마에게 어떤 짓을 하게 하는지 보는 거죠."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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