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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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행복한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보다 더 흥미롭다. 불구경이나 남의 싸움구경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걸까. 톨스토이의 말처럼 행복한 가족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불행의 다채로운 모양을 들여다보는 일은, 남은 어떻게 불행할까 하는 호기심을 채워주고, 나의 불행을 어루만져주는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TV다큐 '동행'을 보면서 가끔 나는 그런 나의 위선을 인식하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김이설의 이 소설집이 불행으로 채워져 있으며, 아주 쎈 내용일 거라는 건 서평과 리뷰를 읽으며 짐작했다. 그래서 사지 않고 버텼다. 그냥 소재로만 활용한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책을 사서 다 읽고 다니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진정성이 있었다. 실제로 작가가 불행한 경험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정도로. 

열세 살
엄마들
순애보
환상통
오늘처럼 고요히


하루

8편의 단편 중에서도 '순애보', '오늘처럼 고요히', '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여자들이 정말 정상일까 싶을 정도로 김이설이 창조한 주인공들은 핍박과 폭력에 시달리며, 그걸 묵묵히 감내한다. 세상이 폭력 투성이라고 포기해 버리고 나면 그렇게 잔잔해질 수 있는 걸까. 태생과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그녀들은 고속도로 갓길에서 서성대며 낯선 트럭에 올라타고(순애보), 노래방 도우미로 뛰다가 집으로 돌아와 갓난아기를 어루만지고(오늘처럼 고요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연극단 팀장의 성기를 입 안에 넣으며(막) 살아간다. 그것이 일상이고 그 일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종양처럼 점점 악화될 뿐.

불행한 인생이 각기 다른 모습이라면, 그 디테일한 모습을 잡아내는 건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취재를 탄탄히 한 것인지 주위에 그런 인생들이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지만, 이 소설집은 그걸 아주 잘 잡아냈다. 그리고 불행이 조금은 해소되기를, 이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절로 생겨나게 만든다. 작가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정작 무엇이든간에.  

이런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내가 편애하는 강지영 작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강지영의 책은 스릴러, 추리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김이설 작가의 책은 정통에 가깝다. 당장 좋아하는 작가에 추가하고 <나쁜 피>를 사볼 생각이다.

양장본을 둘러싸고 있는 겉표지를 벗기면, 진주황의 속표지가 드러난다. 표지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으며 문학동네 책 치고는 디자인의 파격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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