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그렇다. 고백하건대 나는  다카무라 가오루의<황금을 안고 튀어라>를 끝까지 읽는 데 실패한 독자다. 그 꼼꼼한 묘사에는 정말 질렸다고밖에, 내 스타일이 아닌 걸 어떡하랴. 이 <마크스의 산> 개정본을 운 좋게도 도서관에서 발견하지 않았다면,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책의 서두는 미나미알프스의 깊은 산속 노동자의 지루한 일상과 술 마시기, 불면증, 그리고 느닷없는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사건의 담당 형사는, 많은 의문을 남긴 채 범인을 송치한다. 그리고 16년 후, 도쿄에서 일어난 살인. 두 사건 사이의 연관관계는 없어 보이나, 그 선을 따라 고다라는 형사는 사건 수사를 개시한다.  

사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고다의 사건 수사 경위에 집중한다. 수사가 시작된 10월 1일부터 10월 19일까지 단 19일간의 기록,이지만 무려 1천페이지에 육박한다. 그러니 '미스터리의 여왕' 다카무라 가오루의 서술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장, 2장...' 이런 식의 구분도 없이 장문의 문장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숨이 찰 지경. 마치 공기 희박한 고산을 오르는 느낌! 

고다의 반대편에는 범인이 있는데, 그것은 이중적이다. '지금 살인을 저지른 범인'과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과거의 범인'이 달리 존재한다. '지금 이 범인'은 어릴 적 미나미알프스에서 부모를 자살로 잃고 혼자 살아남은 청년 미즈사와. 그의 정신세계는 정상이 아닌데, 저 깊은 곳에 '마크스'라는 존재가 있어 어둠과 밝음을 3년 단위로 오락가락한다. 기억력이 하루도 못 가는 그지만 어떤 부분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고, 자신을 도와주는 간호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돈이 있다면 마치코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 유바리메론과 후지산) 미즈사와는 '과거의 그 범인'과 교묘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포일러를 우려하여 여기까지만 쓴다.) 책을 다 덮고 난 후의 감상은, "아 형사라는 직업은 참 피곤한 거구나!"로 요약되려나.

아주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어내고 싶은 책이어서 완독할 수 있었다. 드라이한 묘사의 형사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는 워밍업 시간이 필요하니 최소 한번에 100페이지 이상은 읽는 게 좋다. 이와 관련해 트위터에 끄적거린 구절 : 어젯밤 <마크스의 산2>를 200쪽 정도 읽으면서 독서의 쾌감을 발견.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는 마치 장거리마라톤처럼 "슬슬 달려볼까-달리는 기분이 꽤 괜찮은데-이제 멈추기 힘들어"라는 단계가 있어서 자투리독서로는 워밍업만 하다 끝난다는 사실!  

책의 만듦새는 보통. 번역은 정다유라는 분이 했는데 그다지 좋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단어 선택이 평이하지 않고, 오문도 꽤 많다. 이건 참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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