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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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를 이제야 발견했네-라는 느낌? 읽다보니 한국소설에서는 여자 작가들 책을 더 선호하는 취향인지라, 남자 작가는 김영하, 백민석, 박민규 정도만 읽고 있다. 여기에 간혹 윤대녕. 이기호의 소설은 의뭉스러운 분위기는 성석제를 닮았지만 루저들에 대한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는 박민규와도 비슷하다.  

이 발랄한 소설집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과 '원주통신', '당신이 잠든 밤에'(아줌마가 아침에 길거리에 내던진 쪽파의 행방에 주목하라!)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큭큭큭...'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이야기들, 그러면서 루저들에 대한 짠한 여운을 남기는. 어쩜 작가는 그리도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그것도 잘 완결된 이야기로 포장하여. 

작가 후기에서 그는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자전적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할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라는 작품에서 그는 많은 이야기들이 글을 모르는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흘러나왔다고 내비친다. (이는 <굿바이 파라다이스>의 강지영과 같은 고백임에 주목해본다.) 세상의 할머니들은 참 위대한 것 같다.  

   
 

30) 지상에 올라와 흙을 먹다보니,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게 참 우습게만 여겨졌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직장생활을 하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과,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저녁 반찬을 준비하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기 위해 코피 쏟으며 공부하는 세상 모든 자식들,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열중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그저 덧없고 허망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고, 아껴 쓰고, 공부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다 '밥' 때문이잖아요. 굶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밥을 사두기 위해, 보다 질 좋은 밥을 사먹기 위해, 그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잖아요. 밥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밥을 탐하니까요(분단도 결국 '밥' 때문이 아닌가요?). 한데, 만약 그 밥이 주위에 무한정 널려 있다면, 그냥 삽으로 대충 몇 번 파헤쳐서 해결될 수 있다면, 그러면 그 노동들은 다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굶어 죽는다, 그렇게 게으르면 평생 고생하면서 산다, 뭐 이런 말들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거죠. 괜찮아요, 전 그냥 흙 파먹고 살래요. 이런 여유가 없는 것이죠. 아아,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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