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병실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의 초기작 4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관능적이다'라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나 오감을 이토록 정밀하고 관능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특히 이 작품집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러한 문장이 튀어나온다. 

혀와 이와 침이 서로 얽히는 눅눅한 소리가 그의 안쪽에서 들려온다. 대단히 육체적인 소리다. -'완벽한 병실' 

한 모금의 야채주스를 마셨다. 혀의 표면에 거칠거칠한 채소 섬유가 남았다. -'호랑나비가 부서질 때' 

나는 무화과 가지를 꺾어 그 단면에서 나오는 희고 불투명한 즙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으로 만지면 생각보다 훨씬 끈끈해서 손끝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다이빙 풀' 

나는 스케치북 한가운데에 눈짐작으로 2.5센티미터쯤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종이와 연필심이 마주치는 소리가 날 듯한 단단한 선이 그려졌다. -'식지 않는 홍차'

이 문장들은 모두 무작위로 페이지를 펼쳐 뽑은 것들이다. 이러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우리 일상의 시간들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장면들은 '마치 정지된 표본' 같고 '무균의 하얀 병실' 같다. 스토리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서성거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국내 출간된 이 작가 작품은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역시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약지의 표본>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이 책 <완벽한 병실>도 베스트3 안에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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