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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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에 대해 난 편견이 있다. 이 대구 출신 작가를 좋아한 지도 20년이 넘어 간다. 고등학생 때 읽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라는 시집으로, 대학입학 시험을 치른 날 읽은 <아담이 눈뜰 때>라는 소설로 시작된 오랜 편견. 

10년 만에 내는 소설이라 반가움이 앞섰지만 '우익 청년 탄생기'라는 출판사 홍보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아 좀 묵혀뒀다 주문을 넣었다. 받아보니 랜덤하우스 책 치고는 책의 모양새가 괜찮네. 흑백의 배경에 마젠타색 타이틀, 길게 펼쳐지는 독특한 표지 제본.  

한때는 동성애, 사도마조히즘 등 너무 센세이셔널한 소재들을 소설로 써대서 검열을 당하기도 했던 그. 이번 작품은 그에 비하면 참 온건하다. 그리고 가장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책은 참 쉽게 읽힌다. 안정된 문장에, 인물을 알레고리화하여 묘사하는 능력, 금과 은이라는 주인공들의 운명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떼기가 힘들다. 그리고 간간히 장정일다운 설정(여전한 동성애 묘사 등)도 흥미롭다. 

'구월의 이틀'이라는 제목은 류시화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 속에 묘사된 현대문학 강의 첫 시간. 인간이 긴 인생을 살아가지만 의미있는 시간은 구월 중에 단 이틀이라는, 청년기의 중요성을 압축해서 묘사한 부분에 공감이 갔다. 은의 명석함을 보여주는 데 유의미한 장면이기도 했고. 금과 친구가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금과 은의 '구월의 이틀'은 이제 끝나버린 것이리라. 용광로 속에서 끓어 굳어진 형태로 뱉어내진 이후, 남은 인생은 굳어진 채로 그들은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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