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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평점 :
N22122
˝나 또한 어쩌면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기분으로 비교적 태연히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다. 죽을 때까지는 누구든 살아 있을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음이 두렵기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거라면 고민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것도 두려움을 줄여주는 방법일 수 있겠다. 어쩌면 현재의 삶이 소중한 건 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는 소세키의 잡문집이다. 이 작품은 <마음> 집필 이후 네번째 위궤양으로 인해 요양하던 시기에 쓰여졌는데, 소세키가 죽음을 예감해서 그랬던 걸까? 유난히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글이 많다.
[저는 지금 제가 지니고 있는 이 아름다운 마음이 세월이라는 것 때문에 점점 바래 가는 게 두려워 견딜수가 없습니다. 이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멍하니 혼이 빠진 채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면, 그게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P.29
내가 소세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속에서만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고독,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오는 쓸쓸함 때문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체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불유쾌함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는 더 편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상태라고 여길때조차 있다.] P.31
책속에서 소세키는 자신의 비참함을 글로 써달라고 찾아온 여인의 말을 들어주고, 그 여인을 배웅하면서 죽지 말고 살아달라고도 하지만, 그 다음장에서는 ‘죽음은 삶보다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보석처럼 소중히, 그리고 영원히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추억은 그녀를 죽음 이상으로 괴롭히는 처절한 상처 바로 그것이었다. 상반된 이 둘은 마치 종이의 안팎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모든 것을 치유해 주는 <세월>의 흐름을 좇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소중한 기억은 점점 바래 갈 것이라고 탄식했다.] P.33
반면 어린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서 몇명 안남았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이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죽을때까지는 누구든 살아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남이 죽는 건 당연한 듯한데 자신이 죽는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쟁에 나간 경험이 있는 어떤 남자에게 ˝그렇게 옆에서 대원이 하나둘 쓰러지는 걸 보면서도 자기만은 안 죽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있고말고요.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P.85
어떻게 보면 <유리문 안에서>에 실려있는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들은 약간은 상반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점이 더 진실되게 느껴졌다. 만약 소세키가 일관적으로 ‘죽음은 고귀하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강하게만 썼다면 실망했겠지만, 소세키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서 더 인간적이었다. 우리도 그렇지 않는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느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삶이 얼마 안남았다고 느껴질때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