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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 희곡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9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지음, 김보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우리 모두는 장님들과 같은 어둠속에 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어둠의 장님들이다.˝
희곡 좋아하시나요? 저는 희곡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희곡을 좋아하게 될거 같아요.
이 책은 스페인 희곡 작가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흐˝의 희곡 <타오르는 어둠속에서>, <어는 계단의 이야기> 두 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일단 두 편의 이야기가 모두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희곡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읽어도 완전 잘 읽히고, 이해가 되는걸 보면 이 책은 희곡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오르는 어둠속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모여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곳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장애를 인지하지 않고 일반 사람들과 같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그나시오˝라는 한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면서 이 학교는 전과 달라지게 된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자신의 실명을 큰 장애로 인지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불가능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 즉 당연하게도 앞을 보고싶어한다!
기존에 있던 학생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걸 장애라고 인식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일부 학생들은 그의 말과 행동 때문에 내적 혼란을 겪게 되고, 학생들과 선생님은 현재를 지키려는 집단과 현재를 불만으로 인식하는 집단으로 구분되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이 점점 고조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전개된다.
이 작품은 장님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장님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는 장님일 뿐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제한된 세계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일반 사람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꿀 수 없는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기 보다는 거기에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꼭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는 것만이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다.
<어느 계단의 이야기>는 한 연립주택의 네개의 호실과 이 방들이 연결된 어느 복도와 계단을 배경으로, 1919년의 1막, 10년 후인 1929년의 2막, 20년 후인 1949년의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스폐인판 하위호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엮여 있지만 일단 사랑이야기만을 중심으로 풀어보면,
1막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페르난도˝와 ˝카르미나˝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둘의 주위에 페르난도의 친구이자 카르미나를 좋아하는 ˝우르바노˝, 페르난도를 좋아하는 돈많은 집의 딸 ˝엘비라˝가 등장한다. 정리하자면
1. 페르난도 : 잘생김. 카르미나를 좋아함
2. 카르미나 : 페르난도를 좋아함
3. 우르바노 : 페르난도 친구, 카르미나를 몰래 좋아함
4. 엘비라 : 돈 많은 집안. 페르난도를 대놓고 좋아함
하지만 2막에서는, 사랑보다는 돈을 택한 ˝페르난도˝는 ˝엘비라˝와 결혼하고, 둘은 아들을 갔게 된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잘생겼지만, 게으르고 무능했으며, 사랑없는 결혼을 한 그 둘은 애정이 없는 생활을 이어간다.˝페르난도˝에 버려진 ˝카르미나˝는 결국 ˝우리바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1. 페르난도 : 엘비나와 결혼, 그러나 불행함
2. 엘비라 : 페르나도와 결혼, 남편을 무시함
3. 카르미나 : 우르바노와 결혼, 페르난도를 약간 못잊는것 같음
4. 우르바노 : 카르미나와 결혼, 페르난도를 증오함
마지막 3막에서는 두 부부의 아들과 딸인 ˝아들 페르난도˝는 ˝딸 카르미나˝가 1막의 그 둘 부모와 같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부모들은 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만나지 말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아들 페르난도˝는 ˝딸 카르미나˝에게 1막에서 그의 아버지인 ˝페르난도˝가 ˝카르미나˝에게 했던 사랑고백을 똑같이 한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얼마나 행복할까!˝ 179페이지]
부모와 같은 사랑의 운명을 그 자녀들은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맞기고 있다.이번에는 꼭 사랑을 선택해서 운명에 맞서길 바래본다.
만약 <타오르는 어둠속에서>, <어는 계단의 이야기> 두 작품의 내용이 소설로 쓰였다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희곡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과 함축적인 대사가 너무 잘 어울려서 이야기의 절정을 극대화한다.
특히 맹인이라는 특수 상황과, 계단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희곡말고는 답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희곡 특유의 엿듣고 엿보는 상황 연출은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것 같다.
희곡이 이렇게 재미있는 장르였다는걸 알게 해준 작품. 앞으로 주 1회는 희곡을 한편씩 읽도록 해야겠다. 이 책을 소개해준 ˝잠자냥˝님께 깊은 경의와 존경과 땡쓰투를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