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익숙한 곳,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새장 속에서 벗어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새장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새장 속에 있근 새의 마음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디스워튼의 ‘기쁨의 집‘은 내가 읽은 그녀의 5번째 작품이다.(순수의 시대, 이선 프롬, 여름, 올드뉴욕, 그리고 기쁨의 집) 일단 이 책은 두권으로 나눠진 약 600페이지나 되는 벽돌책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릴리˝의 행동이 너무 매력적이고 너무 안타까워서 술술 읽힌다.
이 책은 미국의 사교계에서 살아가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 ˝릴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릴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사교계를 경험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은 몰락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가진 매력(아름다움과 사교성)을 이용하여 근근히 사교계에 머무른다.
미국의 사교계는 누가 얼마나 과소비를 하는지 과시하는 곳이며, 미혼 남녀에게는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기혼 남녀에게는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의 공개적인 만남을 허용하는 곳이다. 단, 불륜 등 추문에 휩싸이게 되면 추방당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재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러한 추문을 극복할 수 있지만, 그 반대면 쉽게 버려진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릴리˝는 부자들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사랑이 없는 계산적 결혼에 망설이게 되고 이를 거부한다. 결국 돈많은 유부남들의 접근때문에 그녀는 의도하지 않게 추문에 휩싸이게 되고, 점점 사교계의 중심에서 멀어져 간다.
이러한 사교계라는 새장속에 사는 ˝릴리˝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두 인물이 있는데 바로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변호사 ˝셀던˝과 그를 유일하게 걱정하는 친구인 ˝패리쉬˝ 이다. 둘은 그녀가 새장속에서 탈출하기를 원하지만, 그녀가 왜 사교계에 머물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는 ˝셀던˝과의 사랑을 마음속에 품지만 사교계를 떠나서 가난한 그와 결혼하기를 망설인다.
「자신과 너무 판이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에서 진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솔직히 털어놓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150페이지
그렇다고 ˝릴리˝가 결코 계산적인 여자는 아니다. 그는 졸부(로스데일)나 유부남(트레너)의 경제적인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오해를 풀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곤경에 처할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결국 새장의 끝으로 몰린 그녀는 마지막 수단을 이용하여 사교계에 복귀할 수 있음에도 새장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이야기는 끝난다.
그녀가 아예 부자랑 결혼해서 사교계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아님 좀 더 일찍 새장 밖으로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익숙함을 벗어나는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는 한다.
이 책은 19세기경 사치스러운 문화, 난잡한 이성관계, 계산적인 인간관계, 물질 만능주의 등 미국의 사교계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소위 벼락부자들의 유입때문에 미국 사교계는 더욱 타락하게 되는데 이 역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도 그 시절과 크게 다를건 없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나서 자연스럽게 ‘위대한 게츠비‘생각이 났다. ‘위대한 게츠비‘가 남성관점에서 본 사교계의 사치스러움이 부각된 작품 이라면, ‘기쁨의 집‘은 여성관점에서 본 사교계의 난잡함이 부각된 작품이다. ‘위대한 게츠비‘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책도 재미있을거라 생각한다. 다만 ˝릴리˝와 ˝셀던˝의 계속되는 엇갈림을 보면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