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예약을 한 뒤,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상담 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 적어 보내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우자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줄 몰랐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사를 판단해 걸핏하면 사표 내고, 막말 하고, 이혼하자 달려들었습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해 사소한 데서 자존심을 내걸곤 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어서 불평불만을 일삼았습니다. 자주 격분에 빠져들어 조절 불가능한 상태로 날뛰었습니다. 급기야 만취된 어느 날, 귀신과 대화한다며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인내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부부상담도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매번 나온 결론은 이혼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해서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니, 뾰족 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를 공감·지지하는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대화·협상의 기본 원리를 확인하고, 다른 데서는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스 고전 수사법. 남녀 성차를 고려한 대화법. 전체 맥락을 잡고 제압하는 대화법. 최후 발언과 문맥 차단을 통한 대화 정리법. 정신장애 요소를 지닌 성인에게 하는 아동 상대 대화법.


무엇보다 제가 그에게 재삼 강조했던 것은 맨 마지막 대화법입니다. 모든 정신장애에는 발달장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정신의학적 전제에 입각한 것으로서 한 가지 원칙,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됩니다. 한 가지 원칙: 함께 내린 결론은 반드시 관철한다. 3가지 규칙: 2인칭 어법, 금지 어법, 두괄식 어법을 금한다. 그리고 팁: 관계에 기대게 하지 않는다. 팁의 팁: 호칭은 관계 호칭 아닌 고유명을 쓴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진심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드디어 갈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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