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함을 말할 때, 우리가 대부분 연상하는 의미는 비상함입니다. 의자醫者인 제 연상은 다릅니다. 비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비정상이겠구나, 그러니까 아프겠구나, 생각합니다. 비대칭의 대칭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명 현상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비범하다는 것은 어딘가 치우쳤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우침이 곧 병입니다. 이런 이치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학은 많은 경우, 병의 본령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거의 10년 다 돼가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어떤 작가와 우울장애 때문에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예민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장애라는 병명만을 말하고 약 처방을 해줄 뿐, 어떤 양의사도 그가 지닌 우울장애의 기작과 특성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감수성은 이 점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웬 변방 한의사가 우울증 상담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작가답게 실팍한 묘사들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와 마음의 풍경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최근 삶은 신산했습니다. 잘못된 결혼과 경제적 파탄에 이은 이혼까지 지옥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홀로 싸운 나날들도 혹독하였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일에서 거둔 성공은 또 다른 질곡을 몰고 왔습니다. 핍박과 송사에 휘말리면서, 그의 내면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뜨르르한 대형병원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약을 먹었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시간 남짓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매듭지으며,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대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평범함의 부재!”


제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중심시각을 확 풀어버렸습니다. 극히 기민하게 내면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손뼉을 딱! 하고 쳤습니다.


“정확하시네요!”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 그의 사유, 그의 글, 모두가 그에게서 사라진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왜 양의사들이 그 동안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이런 어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의학 너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니까 비범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을 전제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극단의 기계적 교차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동적 중도中道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중도의 역동성은 화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화쟁은 곡진한 소통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곡진한 소통은 평등을 전제합니다. 평등은 평범함에 터합니다. 평범함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 죽어도 버려야 하는 무엇을 지니지 않기에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입니다.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는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상의 세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깨달음만이 유일한 비범함일지 모릅니다.


그가 그런 삶을 얼마나 어떻게 구현해갈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를 신뢰할 따름입니다. 그는 그만큼 영특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하여, 그는 자주 제 기억을 일깨웁니다. 지금 그가 어찌 사는지, 안다고 해서 궁금증이 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름 석 자, 인터넷 검색만 하면 근황이 쫙 뜨겠지만, 삼가는 것이, 그와 제가 지켜야 할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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