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와 제 삶을 이렇게 묘사하곤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조건에 휩쓸리는 바람에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다.’ 제가 휩쓸린 비범함은 거의 대부분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었습니다.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 제게 일깨운 삶의 진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육중함 때문에 잃어버린 경쾌한 평범함, 실로 무량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 무량한 아쉬움을 다독이며, 마음 아픈 사람들의 동무로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각성과 함께 했기 때문에 경쾌한 평범함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1등으로 점철된 비범한 시간 위에 군림했습니다. 켜켜이 쟁여진 1등의 삶이 단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그의 이름은 우울증이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을 때, 그가 한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1등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그를 이런 황폐함으로 내몬 힘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죄책감이 아닙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숨결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작의를 따라 빚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똑같은 어머니들인데 딱 이 지점에서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새끼는 달라.’ 자기 아이 만큼은 특별하면서도 건강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 친족 가운데 그의 가족은 유난히 학력에서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석 입학했으니, 그에게 거는 친족의 기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울증으로 휴학하기 전까지 친족의 공부 판단 기준은 단연 그였습니다. 휴학 이후 그 기준은 의전 다니는 사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도리어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와 삶다운 삶을 숙의한 2년 가까운 나날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폐허에 불쑥불쑥 피어난 망초 꽃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초로의 이단 한의사와 우울증에 던져진 젊은 수재가 허름한 변방 구석에 마주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말입니다. 쓸쓸함을 넘어 어쩐지 궁상맞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바로 향 맑은 평범함의 지성소였습니다.


그의 정서와 가족의 이해가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드디어 평범한 삶의 길을 모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공무원 그것이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긴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수험 공부를 하면서 그림도 그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그림으로 봉사활동 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공유하면서도 긴장을 느끼는 삶의 태도 때문에 어머니와 이따금 부딪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흐름을 탈 무렵 서서히 숙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그가 궁금해지기는 하겠지요. 그 궁금증도 저와 그의 평범한 삶만큼이나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 것이기에, 훗날 오가다 혹 만나면 반갑게 안부 묻는 기대 정도로 남겨두겠습니다.


“별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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